달날, 물날 5학년 학생들과 수학 공부한다. 이야기로 놀이로 지루하지 않은 수업 준비하려고 하지만 마음만큼 준비하지 못할 때 있고 또 기본적으로 (무려 3명 앞에서!) 늘 긴장하며 수업에 들어가게 된다. 어느 날은 한 학생이 문제가 어려운 게 마음까지 어렵게 만들었는지, 갑자기 공책을 책상 아래 자기 허벅지에 놓고는 기운이 쳐진 채로 문제를 풀고 있었다. 자기 빼고 다 잘하는 것 같은, 비교되는 마음이 들었던 걸까. 자기 속도에 맞게, 자기 수위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이야기하는데도 그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 모습 지켜볼 때 이해가 되면서도 또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두 마음이 함께 올라온다.
수업하면서 자주 하는 말. 문제의 답을 아는 것보다, 어느 지점에서 내가 틀렸는지 이해하고, 다음에 틀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돌아보면 내게 어려운 말, 내게 뱉는 말이기도 하다. 말하고도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만 원리를 적용한 문제를 풀기 시작하니 집중력이 떨어진다. 충분히 풀 수 있는데도 단순 계산에서 틀린다. 그러면 혼내려는 마음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에서 꾸중 섞인 말을 한다. 사실 나는 옆에서 나무랄 뿐, 아쉽기는 자기가 더 아쉬워야 할 텐데, 어쩐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더 속상하다.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구하고자 하는 문제가 뭐였지?’ 까먹는 실수도 한다. 넓이 값을 구하는 문제였는데, 길이 값을 구한다.
삶도 마찬가지. 제대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 치는가 하면, 과제를 풀어가는 순간 집중력 없는 무기력한 몸과 맘의 상태일 때는 무엇이 문제인지 헷갈려, 내가 뭘 하려고 했었던지 까먹고는 엉뚱한 위치의 답을 내놓을 때가 있다. 문장에서 주어를 잃기 쉬운 것처럼, 삶에서도 내 위치, 내 입장, 내 이유를 잃어버리기는 너무나 쉽다. 그 모든 순간 부끄럽지만, 부끄럽자고 위축되자고 비교하자고 시작한 공부, 또 삶이 아닌 것을. 모르는 걸 떳떳하게 묻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걸. 부끄러운 마음, 멈추고 싶은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 틀려도 담담하게, 책상 위에서 당당하게, 옆 동무들에게 물으며 책상에서 공부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받는 관계. 학생들과 그런 관계가 되고 싶다.
동무의 생일날에는 모든 학생이 아침부터 생일이 주인공인 친구에게 편지를 쓰느라 바쁘다. 생일 주인공인 학생과 같은 또래인 동무들, 그리고 이전 생일 주인공인 학생이 함께 준비하는 생일 축하 공연도 있다. 생일 며칠 전부터 축하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느라 움(교실을 움,이라 부른다.)에서는 비밀 작당으로 소곤거리고 북적거린다. 생일날 먹는 오후 새참은 생일 주인공이 먹고 싶은 차림으로 준비한다. 그리고 둘러앉아 정성껏 꾸며 쓴 편지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또박또박 읽는다. 너를 보며 느낀, 너와 함께 지낸 시간들을 떠올리며 적어낸 이야기들. 꾸밈없는 솔직한 이야기의 난장이다.
“넌 공기도 잘하고 철봉도 잘하고 바느질도 잘해.”
“넌 참 잘 웃어. 그래서 나도 널 보면서 웃게 돼.”
“나는 모르거나 틀리면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데 너는 안 그래.”
쏟아지는 칭찬에 괜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건 나뿐이다. 아이들은 칭찬을 할 줄 알고, 칭찬을 들을 줄 안다. 기분이 좋으니 싱글벙글 웃는다. 동무가 가진 부러운 점을 칭찬할 줄 알고, 그 부분을 배우고 싶어 하며 가르쳐 달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 그리고 마지막 말은 “우리 앞으로 더 친해지자.” 그런 아이들과 나도 더 친해지고 싶다.
불날 오후에 몸놀이 수업하러 한신대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학생들이 먼저 발견했고, 몸놀이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 모습 그대로 쓰러져있는 걸 보았다. 고민을 하다 다른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전에도 학생들과 같이 가서 묻어준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 있는 학생들과 같이 다녀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앞 다투어 앞장섰다. 모종삽, 박스, 장갑 등 챙겨 들고 고양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흩어진 흙과 함께 박스에 고이 담아 3학년 학생들과 산으로 갔다. 깊이 팔 수 있는 만큼 땅을 파고, 또 팠다. 둘레에 있는 흙들 다시 모아 쌓은 뒤에는 주변에 흩어져 있던 나뭇가지, 도토리, 나뭇잎, 꽃 등 한 가지씩 가져와서는 돌아가며 건네고 마음을 모아 기도 했다.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사람들이 모르고 밟아버리지 않게, 너무 눈에 띄어 나쁜 사람들이 파보지 않게. 적당한 모양 정성 들여 갖추는 아이들의 손길. 숲 산책하며 오갈 때마다 아이들은 떠올릴 것이다. 작은 생명이 흙과 함께 썩어지고, 그 흙이 다시금 우리가 농사짓는 땅의 흙으로 닿는다는 걸. 네 죽음이 내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