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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눈 Oct 01. 2017

장면들.

 





장면1.

얼떨떨한 기분으로 시작한 하루, 한주, 한 달이 속사포처럼 지나갔다. 보통은 9시 출근, 5시 퇴근. 당번인 날은 8시 출근, 6시 퇴근. 설렌 맘 반, 긴장된 맘 반 섞여 초반 며칠은 7시 30분 출근, 7시 30분 퇴근이 흔했다. 감나무 배움터라는 공간도, 동료 선생님들도, 배움터의 학생들도, 마을에서 지내며 여러 계기로 만나온 접점들은 있었지만 일터로 또 앞으로 꾸준히 관계할 장으로 여기니 떨리는 거다. 배움터 곳곳의 물건, 책상, 책장, 교구, 그 사이를 오가는 선생님들, 학생들.. 모두 아직은 어색하고 낯설어 함께 있을 때는 몸 움직이기를 머뭇거리게 된다.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선생님들도 자리를 비우시면, 배움터에 아무도 없을 그때라야 구석구석을 더 들여다보며 여유 있게 공간을 쏘다닌다. 새로운 장이고, 또 모든 게 새로울 것이라고 전제하니 추측하고, 예상하는 일이 잦다. 대범하게 제 할 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무엇이라도 일단은 해야, 그걸 기준 삼아 ‘맞는지, 아닌지, 다른지’를 소통하며 조절해갈 수 있을 것이다. 배움터에 분리수거통, 빗자루, 쓰레받기가 필요해서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구매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각자의 취향, 실용성, 적정 가격에 대한 기준이 다를 거라 여러 고민하고 물으며 구매했다. 택배 도착해서 받은 도구가 다행히 쓸 만했다. 알아보고 결정하면서 스스로 많이 긴장하고 있구나, 싶었다.      





장면2.

5, 6학년 하늘땅살이(농사) 수업에서 함께 공부한다. 지난 학기 때 날적이 삼아 썼던 공책 다 써서 새로 공책 만든단다. 두꺼운 종이 8장, 반으로 접고 접선 위에 압정으로 다섯개 구멍 뚫는다. 뚫린 구멍에 무지개 색깔 실 끼워 공책 만든다. 이미 익숙한 학생들의 손놀림 곁눈질하며 처음으로 공책이란 걸 내 손으로 만들어 보았다. 아! 뿌듯해! 배움터에서 지내면서 연필, 펜 잡는 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학생들의 다양한 글꼴 보며 멋지다, 생각했다. 다시 회복할 감각이라고 여기면서는 과목 별로 공부 공책 더 애써 챙기게 되고, 글씨 쓰는 공 들인다. 스무 살 이후로 대학 다니고 졸업하고 일하면서, 내내 컴퓨터로 글 쓰고 프로그램 만지는 일이 잦았다. 쓰고 지우기 쉬운 컴퓨터 글쓰기 해오다가, 볼펜으로, 아니 연필로 쓰려니 시간도 몸의 힘도 더 든다. 쓰고 지우기 쉽다 보니 그만큼 쉽게 말하고 쉽게 바랐다. 몸의 힘닿는 만큼 쓰고, 그만큼 다짐해야지.





장면3.

6학년 학생들과 역사 수업으로 만난다. 방대한 역사 지식 습득보다 내 삶의 기억들, 기록으로 잘 담아내는 게 방점이다. 가을학기 동안 내 기억 지도 만들고, 동무와 마주이야기 나눈 것 기록하고, 가까이 부모님 중 한 사람, 마을에서 만나는 이모 삼촌 중 한 사람의 인생길 기록하는 작업하기로 했다. 지난 수업 때는 동무에게 물을 질문 다섯 가지씩 가져와서 공통질문으로 여덟 가지 추리고, 짝꿍 정한 뒤에 흩어져 서로 마주이야기하며 기록하는 시간 가졌다. 질문할 때 느낀 점, 질문받아볼 때 느낀 점 공책에 적은 것 읽어보니 재미있다. 6학년 학생들은 중학교로 가기 전 마지막 학기라 그런지, 오름식(졸업식)날 나눌 졸업 소감을 걱정하고 떠올리는 요즘이다. 헤아릴 수 없는 자기들의 추억, 관계 수업 동안 더 깊이 쌓이길.     





장면4.

쇠날에는 감나무 배움터에서 나가 산에서 들에서 배우는 날이다. 하루는 구름언덕으로 짧은 나들이를 갔다. 5명씩 모둠 이루어 숲길 거닐었다. 가는 길에 만나는 자연물 주워 모아 빙고 놀이하기로 했는데,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푸른색, 흙색 나무 숲 사이에서 학생들은 별의별 돌, 나뭇잎, 열매, 곤충 허물, 씨앗을 찾아냈다. 다른 쇠날은 북한산 대동문까지 등산했다. 꼭대기 올라 점심 밥상 나누고 오후에 곳곳에서 음식 잔치 벌어졌다. 다양한 돌 갈아 치즈가루, 흑임자가루, 갈색설탕, 쌀가루 만들고 나뭇잎, 열매, 풀 뜯어다 재료 공수하면 부엌에서 케이크, 김말이, 부침개 등으로 한상 차린다. 다람쥐, 새, 숲 속 친구들 초대해서 같이 노래 부르며 밥상 누려야 할 판이다. 정성껏 차린 밥상이다. 발견하는 눈, 이름 붙이는 입, 소중히 여기는 손, 모두 아름답다. 이 다채로운 시선들, 소중하다. 지켜주어야지. 꼭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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