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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Jan 10. 2020

스웨덴 목요클럽, 한국도 가능할까

진심으로, 천천히 만들어간 노사정 대화

“스웨덴의 안정과 발전의 밑거름이 된 ‘목요클럽’ 같은 대화모델을 살려 정당과 각계각층 대표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겠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7일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한 말이다. 북유럽식 제도며 관례며 도입은 많았지만 왜 한국에서는 안되느냐, 성공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급해하지 말고, 진심으로.


2주에 한 번 재무장관 주재로 노사정이 만나다

목요클럽의 공식 명칭은 ‘수출과 생산 증대를 위한 협력기구’다. 1946년부터 23년 동안 스웨덴을 이끈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가 시작했다.


한국처럼 대기업 중심 수출 위주 경제인 스웨덴에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가 있었다. 에를란데르는 총리로서 각종 기념행사, 포럼, 회의 등에서 여러 단체의 대표를 만났지만 그때뿐이었다. 1년에 한두 차례 기업 총수와 노동조합 대표를 만나는 공식 모임은 대부분 성과 없이 끝났다. 단체마다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을 요구할 때가 많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권을 흔들어 좌초시키려고도 했다. 그렇게 첫 임기를 보낸 에를란데르는 1948년 선거에서 승리하자마자 열매 맺는 대화의 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목요클럽을 조직했다.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목요클럽은 재무장관 주재로 경제인연합회, 농업인연합회, 도매인연합회, 무역협회, 중소기업연합회, 노동조합총연맹, 사무직노동조합총연맹 대표가 참석했다. 주요 경제정책과 현안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으며 참가자는 물론 총리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0년대 중반, 정부와 대기업의 관계가 악화되자 목요클럽도 시들해졌다. 에를란데르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는 총리의 하프순드 별장으로 경제계 대표를 초대해 자신이 직접 주재하는 하프순드 회의를 시작했다.


에를란데르는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매일의 다짐을 일기로 남겼는데 “정치권력을 대표하는 사람은 경제권력을 가진 이들과 끊임없이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썼다. 정치권력은 '대표'하는 것이고 경제권력은 '소유'한 것이라는 표현이 인상깊었다. 대표하는 권력,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대표한 권력이기 때문에 정치 권력은 더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


하프순드 민주주의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이어진 하프순드 회의는 목요클럽보다 참가자의 폭이 넓었다. 개별 기업 대표, 금융인, 이익단체 대표, 각 부처의 고위 관리자, 노동조합 관계자 등을 회의 이후에도 수시로 만났다. 하프순드 별장에는 호수가 딸려 있는데 에를란데르는 손님과 함께 작은 보트에 올라 손수 노를 저었다. 수행원 없이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그 배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에를란데르는 일기에 “이번 상황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듣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그들 역시 왜 우리가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를 듣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하프순드 회의를 다녀온 당시 경제인연합회 회장이 한 인터뷰에서 “무척 효과적이고 유쾌한 토론”이었다고 한 걸 보아 양쪽 모두가 만족한 모임이었던 모양이다. 에를란데르 일기장의 하프순드 일정에는 “이번 회담은 무척 잘 진행되었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목요클럽과 하프순드 회의는 사라졌지만 정부와 각 단체가 수시로 만나 협의하는 문화는 남았다. 전통적으로 기업가와 부유층을 대변하는 보수연합이 집권했는데도 어떻게 파업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2013년 당시 스웨덴의 재무장관은 지난 1년 반 동안 노동조합을 350번 만났다고 답했다.


노동환경 개선과 증세를 주장하는 사민당 대표인 에를란데르가 총리직에 올랐을 때 재계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에를란데르는 일기에 여러 차례 괴로움을 털어놓으며 “재계는 나를 민간 기업을 말살하려는 네로처럼 여긴다”고 썼다. 목요클럽과 하프순드를 거치며 에를란데르에 대한 평가는 합리적이고 말이 통하는 정치인으로 변했고 노사정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화의 끈을 이어갔다.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때 “오페라와 샴페인 이야기를 하는 경제인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에를란데르의 솔직한 고백이 “효과적이고 유쾌한 토론”으로 변하기까지, 23년이라는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고뇌와 노력이 녹아 있을지 정치의 무게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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