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놈놈놈은 어디에나 있다. by TJi
글 by TJi, 제목 배경 사진 출처: Pixabay
며칠 전 우연히 눈에 띈 페북의 링크를 통해 "How Swedes were fooled by one of the biggest scientific bluffs of our time." 글을 접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무엇에 속았는지 호기심에 글을 읽어봤다. 해당 글은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Dan Katz가 2019년 봄에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한 글로 사람의 성격유형을 4가지 색으로 나누는 DISC 행동평가를 기반으로 쓰인 Surrounded by Idiots 책과 관련된 추문을 다루고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스웨덴의 베스트셀러로 천만 유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책, Surrounded by Idiots의 영향으로 수많은 기업들과 기관들이 성격유형평가를 진행하고 심지어 그 결과를 인사에 적용하기까지 했다. 자연스레 저자인 Thomas Erikson은 TV나 신문 등 대중매체에 심리학자, 행동과학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등으로 자주 등장했다. 대중적 유명세 덕택에 그의 강연은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동시에 Surrounded by Idiots는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스웨덴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의 경제 잡지 Forbes는 2019년에 의사소통 방식을 변화시켜 사회성 향상을 도울 7개의 책 중 하나로 선정하기까지 했다.
역사적으로 성격유형으로 사람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종종 있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MBTI 성격유형검사는 칼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MBTI의 유명세 덕택에 대학시절 대학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한 MBTI 성격유형평가를 나도 경험했다. 당시 테스트 결과는 객관적 시선으로 본인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대체로 참고사항으로 여겼지 자신의 성격유형에 대한 해석을 100% 신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때 혈액형별 성격유형이 일본을 통해 한국에 유입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관련 도서나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혈액형별 성격유형을 진리로 여기는 사람들은 없었다. 혈액형별 성격유형은 별자리 운세나 띠별 운세 등과 같이 재미로 여겨졌으며 참고하는 정도로 취급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스웨덴은 무슨 이유에서 사람을 4가지 색깔 유형으로 나누는 성격유형검사와 관련 책의 저자인 Thomas Erikson을 신봉하게 되었을까?
4가지 색으로 나눠지는 성격유형에 도가 지나친 국가적인 반응에 머리만 긁적이던 심리학자들 중 몇 명은 사회적 오해를 바로잡고자 행동에 나섰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른 성향을 보이며 행동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성격유형으로 단순하게 사람을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현재 학계의 주요 견해이다. 이것이 성격유형에 기반을 둔 책이 과학적일 수 없는 주요 이유다. 학자들은 Erikson이 책과 강연에서 언급한 주장의 오류를 학문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며 그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음을 설명했다.
유사과학임에도 불구하고 책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했다며 본인을 행동 전문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묘사한 Erikson에게 학자들은 그의 과학적 지식의 배경을 알고자 그의 학력에 대한 문의 메일을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학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그의 학력을 확인하고자 스웨덴의 모든 대학에서 사용하는 학생관리시스템인 Ladok에서 그의 기록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Erikson의 알려진 경력은 Nordea은행을 시작으로 영업사원 교육 사업까지 영업 분야 경력이 전부였다. 따라서 학자들은 Erikson이 고졸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결과, VoF (Vetenskap och Folkbildning-스웨덴 회의론자 협회)는 Erikson을 2018년의 사기꾼으로 지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rikson의 명성은 잦아들지 않는 듯하다. 여전히 강연자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Surrounded by Idiots은 물론 그의 다른 책들도 계속해서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다만, 한국어판은 아직 없는 듯하다. Erikson은 학계의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심리학자나 행동과학자라는 수식어는 빼버렸지만, 자신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내세우며 언론에 여전히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는 영업 실전에 있어서는 확실한 전문가이지 싶다.
최근 들어 Surrounded by Idiots의 어이없는 유명세 덕에 정부 기관에서 상당기간 동안 이루어진 Erikson의 강의와 성격유형평가, 평가의 결과에 기반한 인사로 야기된 세금 낭비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들이 눈에 띄지만, 그의 행보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아직 미지수로 보인다. 문득, 2018년 PD수첩의 특정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대학 교수에 대한 방송이 떠올랐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본인의 생각을 교수라는 직책을 바탕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전문가 이미지를 굳혀왔던 그 분과 Erikson이 겹쳐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