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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Jan 22. 2020

미래를 고려해 결정하자

컴퓨터 덕후의 감탄에서 발견한 핀란드스러운 태도 by TJi

제목 배경 사진 출처: Unsplash



아파트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가 바뀐다는 안내서


어제는 T회사가 보낸 우편물을 받았고, 오늘은 아파트 관리회사에서 안내서를 받았다. 둘 다 같은 내용으로 아파트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가 E 회사에서 T 회사로 바뀐다는 안내였다. TJi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000년대 초 철저한 도시계획으로 생성된 지역에 있는 아파트로 건물마다 기본으로 인터넷 연결이 되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렌트에 포함된 인터넷은 다운로드와 업로드가 같은 10 Mbit/s의 속도이다. TJi와 같이 살고 있는 컴퓨터 덕후인 M은 이 속도를 참지 못했다. M은 업로드 속도는 그대로이지만 다운로드 속도를 높인 100/10 Mbit/s 서비스를 신청하여 매달 15유로를 추가적으로 내고 있다.


어제와 오늘 연이어 받은 안내서는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인 T회사가 빠른 인터넷 다운로드 속도를 원하는 입주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M을 의아하게 만든 것은 가격이었다. 한 달에 48 센트 추가로 50/10 Mbit/s를, 98센트 추가로 100/10 Mbit/s를, 거의 공짜에 가까운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더 빠른 다운로드 속도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15유로를 내고 있는 서비스가 회사를 바꾼다고 고작 1유로도 안 되는 요금이 청구된다는 설명에 M은 사기이거나 미끼 상품 같다며 투덜댔다. 아파트 관리회사가 규모가 있으니까 입주자를 위해 좋은 거래를 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가정을 제시했지만, M은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거두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공공기관이 쉽게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데, 10년 넘게 거래한 E 회사를 T 회사로 바꾸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믿어도 될 것 같다고 M을 달래는 것으로 인터넷에 대화는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TJi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헬싱키 시립 아파트로 헬싱키 산하 시립 아파트 관리회사인 Heka가 관리합니다.


아파트 관리회사가 보낸 안내서 일부



과거 누군가가 내린 결정에 대한 컴퓨터 덕후의 감탄


컴퓨터 덕후인 M에게 어제오늘 온 우편물은 꽤 큰 파장이었다. M이 다시 인터넷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히도 서비스 제공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파트 건설 당시 누가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감탄이었다.  2004년에 완공된 아파트 건물 내 이더넷 케이블이 기가바이트라서 앞으로도 당분간 새로운 케이블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라면 100메가바이트 케이블을 깔았어도 문제가 없었을 텐데 누군지 몰라도 좋은 선택을 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덕택에 우리 집 내에 무선 인터넷 연결이 큰 문제없이 서로 대등하게 빠르다고 하는데, M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 흘려들었다. 오히려 케이블 차이에 대해 물었더니, 사실 큰 차이는 없고 케이블 안에 선이 두 개가 더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하는 김에 제대로 그리고 조금 더~


M의 투덜거림, 감탄, 설명 등을 100% 이해할 순 없었지만, 문득 중고등학교 시절 살던 집이 떠올랐다. 인터넷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기가바이트 케이블과 100메가바이트 케이블과는 약간의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다. 집장사가 지었던 그 집은 수도관을 원래 설계보다 얇은 관을 설치하는 바람에 수압이 약해서 아랫집이 물을 쓰면 윗집이 물을 쓸 수 없는 집이었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살면서 시시때때로 불편했던 집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엉뚱한 데서 절약해서 불편을 초래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가 한국 사회에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핀란드에 살다 보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상황에 맞는 최상의 선택을 하려고 애쓴 흔적이  눈에 띈다. 특히, 미래까지 고려한 누군가의 긴 안목은 매우 존경스럽다. 때론, 미래의 대한 예측이 틀려 헛된 일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래에 닥쳐서 바로 잡는 것보다는 처음에 조금 더 수고하는 것이 비교적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지지를 받는 듯하다. 16년 전에 설치된 아파트의 이더넷 케이블이 그렇고, 지하철역 공사를 할 때 훗날을 위해 역 하나를 살포시 하나 더 만들어 놓는 태도가 그 예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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