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안 배워도 됨
12월 6일은 핀란드 독립기념일입니다.
핀란드는 아픈 역사가 많은 나라입니다. 과거 북유럽 십자군 전쟁 이후 650년가량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지금도 스웨덴어가 제2의 공용어예요), 이후 100년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17년 독립해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독립하면 다 좋아질 줄 알았지만 독립 이후 권력을 누가 쥘 것인가를 두고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핀란드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적군과 왕정을 옹호하는 핀란드 원로원이 이끄는 백군으로 이렇게 적백으로 나눠 싸웠습니다. 핀란드 남쪽에서 세력을 키운 적군 지지세력은 대부분이 노동자였고, 백군 지지세력은 농민과 중상류 계층으로 이루어져서 이 전쟁을 계급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전 기간 동안 3만 명이 넘는 핀란드인이 목숨을 잃었는데 당시 핀란드 총인구가 3,000,000명이었으니 무려 인구의 1%에 해당하는 인명피해를 가져온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습니다. 결국 백군이 승리했지만 현재 핀란드는 사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이고 심지어 주변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이 왕정을 유지하는데 반해 왕정도 해체했습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핀란드는 여러모로 참고할 지점이 많아요.
한국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여러 도전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튼, 지난번에 북유럽 행복 포럼 모신 후에 뻬까 메쪼 핀란드 대사님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또 보 자시길래, 대사님의 4개 국어 하는 앵무새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래,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 하시더니 핀란드 독립기념 만찬에 초대해주셨어요.
핀란드 대사관저는 성북동길을 멀미가 나기 직전까지 굽이굽이 돌아가면 나오는데 한적하고 널찍하고, 대사관저가 다 그렇듯 자국 작가의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기간이라 인원을 나눠 날짜를 달리해 여러 차례 독립기념행사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제가 갔을 때도 손님은 15명 정도였어요. 명부도 작성하고 밥 먹을 때 말고는 마스크도 쓰고, 음식 덜 때는 일회용 장갑도 끼고요.
핀란드 대사관에서 온 초대장의 발신인은 The Ambassador of Finland
Mr. Pekka Metso and Mr. Jerzy Kotwica 예, 두 분의 Mr입니다. 배우자인 제르지는 그날 주한 대사 배우자 김치 담그기 행사에 다녀왔다고. 보통 언론에서 주한 대사 부인 김장행사라고 쓰는데 뉴질랜드와 핀란드의 사례가 있으니 이제 새로운 명칭을 고민해야 할 듯.
뭐부터 먹을까 고민을 하자 근처에 있던 핀란드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꼭 먹어야 한다고 권해준 요리가 있었습니다. ‘karjalanpiirakka 카랄랸피라까’라고 통밀로 만든 반죽에 곡물을 넣어 굽는 핀란드의 전통음식이래요. 핀란드 사람들이 즐겨먹는 거라고 하길래 저도 하나 집어왔습니다. 한 입 먹고 나서는 정말 한 개만 가져온 걸 후회했어요. 가져오지 말걸...ㅡ.ㅡ;;
혹시 기회가 되면 꼭 드셔 보세요! 이렇게 맛없는 걸 혼자 먹을 순 없어!!!! (나=정 많음)
만찬이 파할 무렵에 제르지가 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앵무새를 데려와서 인사를 시켜줬는데, “안녕”하면서 앵무새를 쓰다듬었더니 두 분이 깜짝 놀라며 원래 얘가 낯선 사람이 쓰다듬으면 잘 무는데 신기하다면서, 저처럼 겁 없고 대범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졸지에 장군감 됨 ㅡ.ㅡ;;
핀란드 전통음식을 비롯해 세계 커피 소비 1 위국답게 저녁이었는데도 진한 커피를 커다란 보온병 가득 준비해놓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번 행사는 소규모로 테이블도 거리를 둬서 세네 명씩 네 테이블로 나눴어요. 식후에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앉은 테이블의 주제는 코로나(what else?!)와 국제화였는데, 맥주를 좋아하는 핀란드 참사관이 그 나라 특산물은 그 나라에서 만 먹을 수 있을 때가 더 멋졌다고 하자 농업담당관이 호가든은 벨기에에서 먹을 때도 맛있겠지만 한국에서 파는 호가든은 OB에서 OEM으로 제조하는데 핀란드산 몰트를 쓴다고 따라서 핀란드의 향취가 담긴 호가든은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달래주었습니다ㅎㅎㅎ
4개 국어 하는 그 앵무새가 보고 싶으시다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