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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Mar 10. 2018

A팀장은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지 않나?

이렇게 좋은 자리에 여자를 왜 보냅니까?

#1. A 팀장은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지 않나?

친구  A는 유명한 공대에서 석사를 했다. 한 때 주말이면 텔레비전에 게임 중계를 켜 놓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고 트랜드에 민감하다.  IT기업에 취직을 했다.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지만 개발이나 전략 부서 핵심 인력 중에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 제품 논의를  위한 회의가 있었다. 참석자 중 여성은 A 하나였다. 회사 중역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 애가 그 게임을 좋아하던데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면 어떤가?”

실무진이 듣기에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이었으나 누구 하나 나서 토를 다는 이가 없었다. A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건 이 제품과 맞지 않아요. 개발해 상용화하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A 팀장은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지 않나?”


이후 회의 시간 내내 A의 머릿속에는 그 말이 맴돌았다. 

A는 서른에 결혼했고 4년 만에 이혼했다. 아이는 없다. 같이  산책을 하다 아이를 보면 눈을 못 떼는 친구다. A를 한동안 힘들게 했던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른다’는 말은 싱글 남성에게도  해당되는 말일까?



#2. 이렇게 좋은 자리에 여자를 왜 보냅니까

몇 년 전 청와대에서 일했던 선배를 만났다. 청와대는 두 부류의 사람으로 구성된다. 각 부처나 국회에서 꼽혀 청와대로 발령 온  사람들(늘공:늘 공무원)과 필요한 영역의 전문가로 외부에서 영입한 별정직(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각  부처에서 보낸 사람들이 죄다 남성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고시 출신이고 외무고시 합격자의 성비를 보면 여성이 제법 있는데 어째서  부처에서 보낸 에이스는 예외 없이 다 남자인가? 어느 날 술자리에서 왜 그런지 물었다.


“청와대 온다는 건 각 부처의 명예를 걸고 오는 겁니다. 그만큼 출중하다는 뜻이지요. 거기다 여기서 만든 인맥이 대단하지요. 나중에 다들 한 자리씩 할 사람들이니까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도 앞길이 보장됐다고 봐야지요. 이렇게 좋은 자리에 여자를 왜 보냅니까?”

이렇게 좋은 자리에 여자를 왜 보냅니까…라.


#3. 통역이 몸종?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 B는 외국어를 잘한다. 회사 중역 여럿이 유럽으로 출장을 가는데 통역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모든 공식일정 통역은 물론, 식사 중에도 통역을 해야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출장 일정 마지막 날 반나절 시간이 났다. 일정표에 자유시간이라고  나와있었다. 대표이사가 마지막 날 일정 좀 짜보라 주문했다. B가 물었다.
“자유시간인데 왜 일정을 짜야 하나요?”
돌아온 대답은 “자유시간? 넌 몸종으로 가는 거야.” 였다. 대표이사는 남자였고 남자 비서가 따로 있는 상황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오셨나? 통역이 몸종이라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한국에서 여성은 열심히 살면 살수록 힘들다. 

더구나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주변에  끊임없이 미안한 일이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것이 미안하고, 아이의 학교 숙제를 챙기느라 소리를 죽여 통화하는 것도 미안하고, 늦게  들어가는 날은 남편에게 미안하고, 잠든 아이를 보면 아이에게 미안하다. 싱글은 싱글대로 아이를 안 낳아본 것도 미안하고, 부리기 쉽지 않다는 소리를 들으니 또 미안하다. 여기서 ‘미안하다’가 때로는 ‘화가 난다’가 되기도 한다.


나는 북유럽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내가 경험한 북유럽 일터에서 성 역할에 따른 차별은 없었다. 포클레인을 운전하는 여성과 커피를 들고 일정을 챙기는 남자가 얼마든지 있다. ‘추진력 있는 남자’ 또는 ‘친절한 여자’가 아닌 ‘추진력 있고 친절한 사람’을 뽑는다. 유교문화에서 백안시하는 똑똑한 여자, 자기주장이 강한 여자가 북유럽에서는 유능한 동료다.


차별은 늘 약자를  찾아 다닌다.

직장 내 성평등이 중요한 까닭은 차별이 또 다른 차별을 낳기 때문이다. 차별을 경험한 자가 남을 차별한다. 차별은 늘 약자를  찾아 다닌다. 성별이든 나이든, 지역이든, 외모나 신체 조건이든, 개인의 취향이든 다수 또는 강자가 자신의 패러다임을 강화하고 힘으로 지배해 기존의 불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성차별이 심한 직장은 관료주의 성향이 짙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고, 직무  별로, 기수 별로, 경력인지 공채인지 가지가지로 나눠 가며 차별한다.


나는 2014~2015년까지 근 2년간 한 기업의 대표이사 비서팀장으로 일했다. 대표이사에게 올라가는 결재서류를 미리 요약해  보고하고, 회의에 배석하고, 대표이사 명의로 나가는 말씀자료를 작성했다. 여성이 맡은 적이 거의 없는 자리다. 힘들었고 책임감도 컸다. 내가 잘해야 다음 번에도 여성이 이 일을 맡을 수 있다는 부담을 갖고 일했다. 임기를 마칠 무렵 50대 중반의 대표이사가 식사자리에서 반가운 말씀을 주셨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자네와 일하면서 남녀가 정말 평등하다는 것을 깨달았네.”


한국 사회는 오랜 역사와 문화의 날실과 씨실로 짜여있다. 스위치를 껐다 켜듯 갑자기 남녀 평등 모드로 전환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윗 세대는 살아온 시절이 달라 남녀가 평등하게 일한 경험이 별로 없고, 경쟁에 치인 젊은 세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을 하며 사느라 불평등에 극도로 예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 남성이 받는 임금의 평균을 100으로 할 때 한국 여성은  63.4를 받는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일을 해도 5개월을 더 일해야 남성만큼 벌 수 있다는 소리다. 직장 여성이 마주한 불평등은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대우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똑같이 대우받기를 원한다. 나는 그 차이가 없어질 때까지 유능하고 사려 깊은 동료로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차별로 힘들어 하는 동료가 있다면 그게 여성이든 남성이든 손을 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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