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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Mar 28. 2019

일이 뭐가 힘들어, 사람이 힘들지

직장생활 15년 차, 나를 힘들게한 상사의 유형이 있었다

직장생활 15년 차, 긴 시간이었다.

모 기업의 공채로 입사한 나는 보통 2~3년 단위로 다양한 부서를 돌며 여러 가지 일을 경험했다. 일에 따라 재미있는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고 상시적으로 일을 챙겨야 하는 부서도 있고,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리는 부서도 있고 그렇다. 나는 관리하는 일보다는 성과가 나오는 일을 좋아했다. 약간의 스트레스와 마감도 즐겼다. 내 역량이나 경력에 비해 과한 일이 주어졌을 때는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간을 지나고 나면 부쩍 성장한 게 느껴졌다. 일을 또 상대를 대하는 내 태도에 자신감과 여유가 늘었고, 전에는 지나갔던 지점이 눈에 들어오고 더 촘촘하게 일을 하게 됐다.


일보다 힘든 건 사람이었다.

일이야 힘들어도 할 수 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쓰고 속 타는 기다림이라고 읽는다)하면 되니 밤을 새우건 밥을 굶건, 물리적으로 힘든 일은 그 시기를 지나거나 조정을 하면 되는데 사람과 안 맞아서 힘든 건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대부분 혼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이끌어내는 PM으로 일을 했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 특히 윗사람과의 케미, 북한 스타일로 하면 궁합이 잘 맞느냐가 일이 힘드냐 안 힘드냐를 좌우했다.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상사 중에는 회사를 떠난 지금에도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만날 정도로 가까운 분도 있고, 인생에 다시는 마주치기 싫은 사람도 있다. 지금 와서 그 유형을 가만히 복기해보니 내 경우에는 '능력이 없는데 권위적인 상사'와 안 맞았다. '무능력+권위적' 이것은 못난 상사가 되기 위한 더블콤보 필요충분조건이다. 


무능력한 상사에겐 대인배가 되자

둘 중에 하나라도 괜찮으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가 있었다. 능력이 부족하면 내가 채워주면 된다. 어차피 잘리지도 않을 회사, 결과물이야 팀이 내는 것이고 나에 대한 평가가 좋으면 다른 부서로 옮길 때 대접받고 갈 수 있으니, 능력이 부족한 상사를 만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대인배의 자세로 일하면 된다.


남들이 칭찬을 해도 "다 저희 부장님 덕입니다. 부장님이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하고 답한다. 그래, 나는 나를 이겼어! 스스로 대견한 기분이 자주 든다. 사람들 다 안다. 내가 일 다한 거. '**씨는 된사람이네' 아니면 '그나마 부장이 성품은 괜찮은가 보구나'한다. 평소 칭찬을 들어본 적 없던 무능력한 상사가 감복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상사가 사람들한테 내 칭찬을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능력이 뛰어난데 권위적인 사람? 사실 능력이 진짜 뛰어난데 인간성 별로인 사람 거의 없다. 겉모습이 까칠하거나 리더십이 강해 시간낭비 하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나 있는 결핍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달리 보인다. 진심으로 대하면 그 사람이야 말로 진짜 내 편이 된다.


최근에 무능한 상사와 일한 적이 있었다. 상사가 해야 할 일까지 내가 다 했다. 팀원 관리며 보고서 중간 점검, 공정 관리, 대외 업무 심지어 대표이사 보고가 있으면 대본까지 시전 했다. 일은 내가 했어도 보고는 상사에게 양보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부분 강조하시고요. 여기서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이 대표이사 관심 사항입니다.”


사랑과 감기는 숨길 수 없다지만 사실 능력도 그렇다. 내가 아무리 꽁꽁 감춰도(뭐 일부러 감춘 적은 없습니다) 같이 일하다 보면 실세(?!)가 누구인지, 누구 의견을 들어야 하는지는 자연스레 알게 된다. 때로 대표이사가 따로 불러 칭찬을 해도 나는 “저 혼자 한 거 아닙니다. 팀이 같이 한 겁니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사가 인격도 별로라는 점이다. 어느 날부터 상사가 나를 뺀 TF를 만들고, 내 일은 보고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나의 결과물을 비아냥거리고 내가 볼 때 그저 그런 사람의 결과물을 과장해 칭찬했다. 여기서 그저 그런 사람은 상사가 데려온 사람으로 상사와 같은 지역 출신에, 하루에 서너 번씩 상사와 담배를 피우고, 상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폭소와 “어머 정말?” 하는 추임새로 반응하는 사람, 능력보다 리액션과 처세술로 여기까지 왔으니 보통사람은 아니다. 난 정말이지 그 사람의 웃는 낯에 ‘그게 웃긴가요?’라고 묻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회식 따돌림, 이 정도는 보통인가요?

미운 시누이같은 그저 그런 사람 얘기좀 해야겠다. 이 사람은 툭하면 “담배나 한 대 하시죠.” 하며 사람들을 몰고 나갔고, 맥주나 한 잔 하시죠 하면서 흡연 가능한 곳으로 장소를 잡았다. 하필 나 빼고 다 흡연자다. 처음에는 민망해하던 사람들도 몇 차례 그렇게 되니 자연스레 나를 빼고 갔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깔깔대며 들어왔다. 분열을 조장하고 은근히 따돌리고 험담하는 사람, 나쁜 사람!


나(+나와 가까운 동료 1인)만 모르는 회식도 여러 차례였다. 아침 10시가 되도록 사람들이 출근을 안 해 물으니, 어제 회식을 늦게 마쳐 실장이 10시까지 오라고 했다나? “저도 어제 야근했는데 부르시지 그랬어요?” 하고 물었더니 우연히 만났단다. 퍽도 우연히 만났겠다.

나만 모르는 회식, 나만 제외한 회의, 나를 뺀 단체 톡방이 생겼다. 사무실 안에 나만 모르는 웃음이 돌 때는 좀 힘들었다.


그러다 누구에게 들었다. 대표이사가 내 상사에게 “**씨가 낸 결과물 말고는 그 부서에서 맘에 드는 결과물이 없다.”고 했다고. 의도적 고립이 딱 그 무렵부터인 걸 보니 상사가 나를 괴롭히는 이유가 그거(말고도 물론 더 있겠지)였던 거다. 아니 나의 결과물은 어떻든 상사의 관리감독 아래서 만들어진 것이니 본인에 대한 칭찬으로 들으면 될 것을, 옹졸한 질투에 불타서 나를 배제하기 시작했던 거다. 못난 놈. 실장의 전 직장 평판을 조사해보니 힘이 있는 이에게는 평가가 좋고, 실장보다 직급이 낮았던 이들은 그가 떠나서 다행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더 몬난놈.  


실장은 그렇다치고 나머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쉽게 따돌림에 동참한걸까? 처음엔 민망한 내색이라도 하더니 한 달 정도 지난 무렵에는 당연한 듯,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멋모르는 십대들의 잔인한 따돌림 같달까. 개인과 집단의 도덕률이 다른 걸까? 개인으로는 하지 않을 일도, 집단이 되면 거리낌이 없어지는 모양이다. 서로가 잔인함을 부추긴다.


버티는게 이기는 거?

가까운 분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더니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하신다.

"일 안 주면 좋지 뭐. 인생사 새옹지마, 그 사람 자리가 영원할 거 같아? 실장이 못난 놈이지. 나머지 사람들은 실장이 능력있는 너보다 자신들을 인정해주니까 우쭐한거야. 능력이 없으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거든. 맘에 찔리는게 있어도 결국은 무리에 가담할 수 밖에 없어. 폭력가정 아이들이 어릴 때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 편을 든다는 거 알아? 그래야 자기가 사니까."


다 미워할 것 없다. 주동자 한 놈만 미워하자. 나머지는 약자일 뿐. 그러고보니 그동안 나 말고는 누구도 실장에게 “잠깐만요. 전 다르게 생각하는데요.”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다들 시키는대로만 했다. 실장이 무슨 말을 해도 비굴하게 웃으면서. 직장에서 능력은 자유의 지렛대다. 그덕에 난 그나마 자유를 누렸지만 또 그 때문에 미움을 샀다. 그동안 회사에서 코피가 후드득 쏟아지도록 일했다. 당분간 6시에 퇴근하자. 퇴근길 하늘이 환할 수 있다니!


여러분, 2019년 7월 16일 자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발효했습니다. 막말, 따돌림, 업무배제, 반복된 트집, 근무시간 이외 업무지시 모두 해당됩니다. 사례를 차곡차곡 모아 사장에게 이메일을 보내십시오. 만약 상사가 사장과 가까운 인물이라 주저된다면 다른 채널이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상담센터 (국번없이 1350), 담당 감독관(02-2250-5805)

정의당 노동상담 채널 비상구 1899-0139
https://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html?bbs_code=JS79

아니면 평소 눈여겨 보았던 국회의원실(구글에 검색하면 연락처 나옴)에 제보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생각을 정리할 겸 약국 대신 근처 맛있는 빵집에 가세요. 뺑오쇼콜라와 아몬드 크루아상에 드립커피 한 잔 하면서 스스로 강해지기로 다짐을 합니다.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에요. 스트레스는 모든 병의 원인이고, 참으면 암 됩니다. 직장에서 괴롭힘에 시달리는 분이 있다면, 그런데 신고할 만큼 간이 크지 않다면, 남몰래 이직 준비하세요. 준비하는 동안 아무 내색도 하지마세요. 그리고 이직이 확정되는 날 조용히 사직서 내고 부처님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거에요. 월급이 좀 줄더라도 스트레스 받으며 버틸 필요 없어요.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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