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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Aug 22. 2018

지난 여름 이야기: 핀란드 슈퍼마켓에서 하룻밤을

소소하지만 눈에 띄었던 지난 이야기 by TJi

제목 배경 사진은 Töölönlahti (또올온라흐띠, 헬싱키 중심가에 위치한 또올오만은 바다인데 육지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호수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있다.)에서 만난 백조 가족, Nokikana (노끼까나, 물닭) 가족, 북극제비 갈매기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유유자적하는 모습이다. 



기록적인 더위


지금이야 언제 더웠냐는 날씨이지만, (글 쓰고 있는 지금 15.7°c, 8월 20일 오후 2시 50분) 올해 5월 부터 수상한 징후가 보였다. 지난 5월은 핀란드 기준으로 더운 날씨인 25도가 넘는 날씨 (더위를 싫어하는 TJi와 같은 기준)가 13일 동안 지속되었다. 이는 1984년의 12일 연속보다 하루 많은 날로 34년 전과 같은 기록이다.[1] 지난 달, 7월에는 더운 날씨가 27일이나 되었다. 이는 30일의 더운 7월을 기록했던 2010년의 최고 기록에는 살짝 못 미친다.[2]

1961년부터 2018년까지의 7월 평균 기온 그래프, 출처: Finnish Meteorological Institute


7월 17일은 급기야 낮 최고 기온이 31도까지 치솟았다. 안타깝게도 17일 일기 예보는 캡쳐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날인 18일의 예보를 캡쳐했다. 아래 이미지처럼 날씨가 맑고 기온이 높은 날은 일몰 시간 늦어서 늦께까지 따뜻했다. 한국은 더 더웠지만, TJi에게는 올해 핀란드의 여름이 한국의 여름날을 떠오르게 하는 더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1981에서 2010년까지 헬싱키의 7월 평균 기온은 17.7도인데 올해의 평균 기온은 21도였다.[3]


2018년 7월 18일 일기예보, 두번에 걸쳐 캡쳐하여 합성한 이미지, 출처: Finnish Meteorological Institute



냉장고가 고장난 슈퍼마켓


7월 18일, 장을 보러 간 동네 슈퍼는 냉장 선반과 직접 구운 빵을 제공하는 곳이 텅텅 비어 있었다.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있었지만, 안내문을 이해하지 못한 TJi가 냉장 선반에 물건들을 진열하기 시작한 직원에게 영문을 물었다. 전 날인, 17일에 냉장고가 고장나서 냉장 식품들을 다 폐기했다고 했다. 같은 건물에 세개의 슈퍼마켓이 있는데, 그 중 올 초에 새로 문을 연 곳만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가장 최근의 냉장시스템일텐데 운이 없었던 것 같다. 더운 날씨에 음식이 빨리 상할 수 있기에 전량 다 폐기했다고 하지만, 그 식품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두 슈퍼마켓에 양해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 다른 곳들은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을까? 버리지말고 나눴다면 어땠을까? 여러가지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동시에, 보험처리를 위해서는 전량 폐기가 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의 비어있는 선반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슈퍼마켓에서 잠을 자고 싶다!


무더운 여름이 드문 핀란드는 에어콘이 설치된 집은 매우 드물며, 심지어 선풍기도 없는 집들이 꽤 된다. 더위에 약한 TJi도 유학와서 선풍기 없이 4년째 되던 2010년 전까지는 무탈하게 보냈다. 기록적으로 더웠던 2010년은 모든 가게의 선풍기가 동이 나서, TJi는 결국 헬싱키로 여행오는 친구에게 선풍기 배달을 조건으로 숙박을 제공했다. 당시 핀란드가 항상 더운게 아니라, 선풍기를 재입고할 계획의 없다는 점원들의 말이 꽤 야속하게 느껴졌다. 역시 더웠던 올 여름도 선풍기는 진즉에 다 팔렸다. 간간히 선풍기를 다시 들여온 가게들은 입소문을 타고 제품들이 날개 돋친 듯이 다 팔리는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핀란드는 대체로 여름이 지나치게 덥지 않아서 음식점이나 상점들도 에어콘이 없는 곳들이 많다. 밥을 먹으러 갔다가 더위를 먹을 수도 있어서 TJi는 여름에 함부로 외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양한 냉장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의 냉장 선반 앞은 마치 냉장고 안에 들어간 듯이 시원함을 넘어 춥기까지 하다. 사건의 발단은 진심 섞인 농담에서 시작되었다. 헬싱키의 한 슈퍼마켓 페이스북 페이지에 일부 고객들이 시원한 슈퍼마켓에서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희망 사항을 표현했다. 그 지점의 점장은 이러한 고객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신청자가 많아서 선착순 100명의 고객만이 슈퍼마켓의 하룻밤 행사에 초대되었다. 물론 이 행사를 위해 점장은 안전과 위생에 관련된 문제들을 미리 점검했다. 초대된 고객들은 자신의 슬리핑백이나 매트리스를 들고 와서 자리를 잡고 시원한 잠을 청했다.[4] 

A cool store sleepover, 출처: https://youtu.be/tBvesqWZCe8



이사가는 알또대학교, 그 와중에 득템!


지난 여름을 기점으로 알또대학교 아라비아 캠퍼스 (예술대)가 아라비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오따니에미 캠퍼스로 이사가면서 가져가지 않은 물건들을, 특히 가구들을 7월 16, 17일 양일간 직원들과 학생들에게 나눔을 했다. 업무용 의자가 부서져서 사야한다고 1년 넘게 말만 하던 TJi네는 TJi의 짝이 직원인 관계로 이번 기회를 학수고대했다. 운좋게 비가 내리진 않았지만, 제일 더운 날이었던 16, 17일에 우리는 학교로 향했다. 뚜뻑이인 관계로 바퀴달린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들만 주어올 수 있었다. (의자 3개, 책상서랍 2개, 바퀴와 문이 달린 책장 1개, 모니터 여러개. 모니터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우리의 여분으로도 챙겼다. 의자와 책상 서랍도 다 바퀴가 달려있어서 집까지 얌전히 밀고 끌고 왔다. TJi는 아라비아 캠퍼스에서 5분에서 10분 거리에 산다.) 일부 사람들은 차까지 빌려서 학교를 정말 털어갔다. 벽에 고정되어 설치된 책장을, 도구를 가지고 와서 다 분해해서 가져가는 열정적인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학교에서는 친절하게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이사 업체 직원들을 상주시켰다. 가장 탐났지만, 집에 놀 곳도 없고, 들고 올 수도 없었던 물건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이었다. 의자를 밀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대놓고 도둑질하는 느낌이었다. TJi가 다녔던 학교지만 전공 공간만 왔다갔다해 구석구석 가보지 못했던 공간을 이번 기회에 다 훑어봤다. 이사가고 가구들이 버려진 공간을 바라보니 맘이 참 이상했다. 돌이켜보니 더워서 사진 찍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이런 의자를 주어왔다, 출처: https://www.kinnarps.fi/Tuotteet/istuimet/tyotuolit/


월식을 보고 싶다구!


7월 27일 밤 11시 부터 개기월식을 볼 수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이 계속되었기에 당연히 볼 줄 알았다. 그 전날 산책하면서 큼직한 달을 봤기에 더더욱 믿음이 갔다. 핀란드에서 보여지는 달은 가끔 한국에서 보는 달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왠걸 월식이 있는 27일 하늘을 두터운 구름이 다 가렸다. 구름 뒤에 있을 그 빨간 달을 보고 싶었건만, 결코 보이지 않을만큼 구름만 무성했다.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에는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달은 끝끝내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References


1. https://yle.fi/uutiset/osasto/news/warmest_may_in_more_than_30_years_13_days_of_25-degree_celsius_highs/10227115

2. https://yle.fi/uutiset/osasto/news/july_heat_shatters_finnish_record/10332559

3. http://en.ilmatieteenlaitos.fi/statistics-from-1961-onwards

4. https://yle.fi/uutiset/osasto/news/supermarket_sleepover_helsinki_grocery_invites_customers_to_cool_off_saturday_night/10336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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