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유럽연구소 Sep 12. 2018

깔싸리깬니, 핀란드스러운 휴식

과도하게 소비된 휘게와 라곰에 질린 사람들을 위하여 by TJi

제목 배경 사진 출처: Pexels



Miska Rantanen (미쓰까 란따넨)은 누구인가? 25년간 기자로 살아왔으며, 틈틈이 책을 집필하여 7권의 책을 출판한 작가이다. 현재 북유럽 최대 신문사 Helsingin Sanomat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그의 책들의 다양한 버전을 읽어본 그의 비공식(?) 편집자인 아내와 최근 대학 입학으로 독립한 20살 딸, 그리고 곧 14살이 되는 아들이 있다. 자기소개에서 포켓몬고 레벨이 36 임을 매우 강조한 그는 올해 출판된 ‘Kalsarikänni’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책 ‘Kalsarikänni’는 러시아어와 에스토니아어를 시작으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등 13개의 언어로 번역될 예정이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심각한 내용을 다룬 이전 책들과 달리 유머를 바탕으로 쓴 책에 대한 폭발적 관심에 다소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북유럽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덴마크의 휘게와 스웨덴의 라곰을 거쳐 핀란드를 향하고 있는 상황에 세계행복보고서의 결과까지 힘을 실어준 시기에 출판된 ‘Kalsarikänni’에 대한 이야기를 그와 나누었다. 



깔싸리깬니 (Kalsarikänni):

핀란드가 제안하는 휴식 방법, 어원의 발달 배경과 의미 변화


핀란드 외무부가 운영하는 this is Finland 웹사이트에 따르면 깔싸리깬니는 ‘drinking alone in your underwear with no intention to go out’ (외출할 생각 전혀 없이 속옷만 입고 혼자 술 마시기) 의미한다. Kalsarikänni와 Kalsarikännit는 단수와 복수지만 의미에 있어서 차이가 거의 없어 구분 없이 쓸 수 있다.


깔싸리깬니에 대한 나의 해석은 죄책감이나 거리낌 없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핀란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일 중독자들이 많다. (미쓰까의 생각입니다. TJi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시간 일한 뒤에도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깔싸리깬니는 자신만을 위해 일을 잠시 잊고 여가를 즐기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접근이다. 효과적인 휴식을 의미하며 잠시 누워서 쉬는 것일 수도 있다. 혼자 또는 누군가와 함께 자신을 위한 질적인 시간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만족스러운 깔싸리깬니를 위해서는 마실 것, 먹을 것 (간단한 스낵), 볼 것 (즐기고 싶은 것)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가족이 있는 경우는 가족들이 잠든 후에 깔싸리깬니를 즐길 수 있다. 어린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하루 일과 뒤, 안도감과 함께 TV를 보는 시간이 깔싸리깬니이다. 깔싸리깬니는 거창할 필요 없이, 출장을 가서, 메마른 호텔방을 나의 아늑한 공간으로 선언하고 맥주 몇 캔과 안주를 준비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잠깐 동안은 인터넷을 확인해도 되겠지만,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일종의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나를 돌보는 시간인 것이다. 

깔싸리깬닡 (Kalsarikännit) 이모티콘, 출처: https://finland.fi/emoji/kalsarikannit/


여러 책을 살펴본 결과, 깔싸리깬니가 핀란드에서 발전된 이유를 경제적인 배경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핀란드는 경제적으로 항상 성공적이지 않았다. 요즘에야 전자, 소프트웨어, 무역과 같은 다양한 산업들이 존재하지만, 100년 전의 핀란드는 제재소와 숲만 있는 곳이었다. 오랜 기간 레스토랑 문화가 발전된 프랑스와는 달리 핀란드는 생생한 레스토랑 문화가 50년 전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다양한 레스토랑 문화는 기적이다. (TJi 생각에는 핀란드의 레스토랑 문화는 10년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핀란드의 고립과 어둡고 추운 겨울이 깔싸리깬니를 부추겼고, 선택의 여지가 부족했던 레스토랑 문화도 거들었다. 1990년대 초에 나타난 매우 평범한 단어가 깔싸리깬니이다. 초기에는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술에 찌든 패배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Aki Kaurismäki (아끼 까우리스마끼) 영화와 비슷했다. 술 중독을 지칭하기도 했을 정도로 어두침침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아주 부정적인 의미였다. 지금은 과거와 정반대로 긍정적인 의미로 변했다. 젊은 세대가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의미를 더하면서 단어의 의미를 뒤집어버렸다. 친구들이랑 깔싸리깬니를 했다고 한다면 스파클링 와인 몇 잔과 스낵을 먹고 프렌즈나 비버리힐스를 같이 보았다는 의미이다. (미쓰까의 나이를 가늠할 수도 있을만한 발언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래의 의미가 아닌 반전을 일으킨 혼자 또는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일종의 말장난으로 남성적인 뉘앙스도 없어졌다. 단어가 긍정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25년 정도의 시간이니 빠른 변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깔싸리깬니의 의미 변화는 젊은 세대의 음주 감소와도 관계가 깊다.


TJi의 노트:

핀란드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아끼 까우리스마끼에 대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자.

https://www.indiepost.co.kr/post/5891



'Kalsarikänni' 책에 대하여


내 편집자가 꼭 읽어보아야 한다며 내게 휘게 책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마이크 비킹 저, Little Book of Hygge by Meik Wiking)을 건네주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휘게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특별히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20쪽 정도를 봤을 때 수년간 읽은 책 중 최고의 풍자적 책이라고 생각했다. 곧 책이 농담이 아니고 진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코펜하겐에 있는 행복연구소는 또 무엇인가? 편집자가 덴마크의 휘게처럼 핀란드도 무언가를 내세워야 할 때라 했고, 깔싸리깬니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Norra Haga Party Central (노르라 하가 파티 센트랄)을 만들어 책의 공신력(?)을 더했다. Norra Haga는 우리 동네 Pohjois-Haaga (뽀효이쓰-하아가)를 일컫고, Party Central은 TV 쇼에서 따왔다. 행복연구소를 모방해서 노르라 하가 파티 센트랄을 만든 것이다. 깔싸리깬니 책은 많은 통계를 포함하고 있는데, 실제 통계인 경우, 출처가 명시되어 있다. 노르라 하가 파티 센트랄에서 제공한 통계는 농담으로, 책을 읽을 때 통계의 출처를 챙겨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풍자와 농담적 접근으로 책을 시작했지만, 깔싸리깬니가 실제적 현상이기 때문에 핀란드의 철학을 포함한 책이 되었다. 책이 현실과 농담, 철학을 포함하고 있기에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매우 영리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휘게 책이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렸다고 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내 책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영문 번역본을 읽어봤는데 재미있게 짜임새 있게 잘 써졌다고 느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책은 우선 깔싸리깬니의 개념을 설명하고 무엇인지를 풀어나가며 깔싸리깬니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나누었다. 마지막으로는 음주가 없는 깔싸리깬니로 명상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경지에 대해 논의했다. 책 전반에 걸쳐서 친척 중 누군가가 술중독을 경험하는 등 유전적으로 중독의 가능성이 높거나 술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너무 자주, 특히 낮시간에 술 한잔이 생각이 난다면 조심해야 한다. 유행 지난 과음을 의미하는 깬니라고 불리는 단어를 적당한 음주로 바꾼 것이 나의 숨은 의도다. 도입부에는 이미 유명해진 휘게와 라곰을 깔싸리깬니와 비교했다. 스웨덴의 라곰은 너무 얌전해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철 지난 잉그리드 버그만의 영화처럼 너무 청교도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 휘게는 너무 예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디즈니 만화 같다. 수천 개의 초와 벽난로, 기교를 너무 부렸다. 깔싸리깬니는 이미 널리 알려진 스칸디나비아의 안락함과는 좀 다르다. 휴식을 취하는 빠른 방법이자, 혼자 쉽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미쓰까가 쓴 '깔싸리깬니' 책과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책들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그리고 나


핀란드 사람들한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할 것 같다. 세계행복보고서의 결과는 개인의 행복에 대한 감정이 아닌, 의료, 복지, 부패 여부 등 사회 기반 구조에 대한 판단일 것이다. 사회환경이 개인을 얼마나 지지하냐에 대한 결과이다. 누군가 행복할 때 주변 환경이 잘 돌아간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지루한 이야기이지만 의료, 복지, 속이지 않는 문화, 약속대로 잘 운영되는 사회간접자본 등 기본적 것들이 모여 개인의 행복에 기여를 하고 있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199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주의해서 길을 걸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하수도 뚜껑을 훔쳐가기 때문에 하수도에 빠지지 않게 잘 살펴보라는 충고였다. 하수도 뚜껑의 부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이 정상적인 상황의 부재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이 행복의 기본 조건으로 중요하다. 물론 핀란드도 부정적인 일들이 발생한다. 그중 자전거 도난이 유독 많다. 특히, Jopo (요뽀, 핀란드 자전거 브랜드)가 팔기 쉬워서 인기가 높다. 술 중독과 같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훔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전거를 지저분하도록 유지해서 도둑이 훔쳐가지 않도록 한다.


ruuhkavuosi (루우흐까부오씨, peak year)에 대해 아는가? 40대 초반을 일컫는다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부모는 늙어가고,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은 많은 시기이다. 나의 그 시절은 핀란드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여서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던 때로 내 직장인 Helsingin Sanomat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벽에 마주한 느낌처럼 지쳐있었다. 때때로 맥주 한잔과 TV를 보는 밤의 평화를 즐기면서 깔싸리깬니의 치유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성장했고, 부모가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회사도 안정을 찾아서 많은 것이 쉽게 느껴진다. 삶이 쉬워졌는데, 깔싸리깬니 덕인지 나이 덕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행복하고 운이 좋다. 핀란드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받았고 편안한 집에서 살고 있다. 사실 행복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현재 나의 상황이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현재 몸무게에서 20kg을 빼면 정말 행복해질 것 같다. 


여름에는 아들과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춥고 어두운 겨울에는 노르딕 워킹이나 스키를 즐기며, 일주일 정도는 이탈리아와 같이 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휴가를 떠나면 족하다. 비행기를 타는 게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겠지만 그 질책은 감수하겠다. 여름 별장의 전통적인 savusauna (싸부싸우나, smoke sauna, 연기 사우나)에서 앉아서 듣는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전해주는 고요와 평화를 누리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나는 헬싱키 토박이이지만, 때때로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는 자연에 머물기를 원한다. 30분간 숲을 거닐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느낌이다. 남동생과 함께 장작을 패면 운동도 되고 땀 흘린 뒤의 신선함이 좋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동경이 핀란드의 문화다. 이와는 상반되게 나는 뉴욕에서 보내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다. 해외로 휴가를 갈 때는 베를린, 런던, 부다페스트처럼 자연이 아닌 도시로 간다. 자연에 심취하는 것은 핀란드에서 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막 시작한 자신의 여름휴가 시간을 내어준 미스까가 고마웠다. 휴가기간 동안 밤을 맘껏 지새우고 늦잠을 자는 게으름을 즐길 것이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시간을 원하는 대로 제약 없이 즐기겠다는 포부로 들렸고 게으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TJi는 그의 자유가 부러웠다. 미쓰까는 해학 넘치는 재담으로 인터뷰 내내 TJi를 웃음 짓게 했을 뿐 아니라, TJi의 핀란드의 행복에 대한 책 프로젝트를 응원해주기도 했다. 자기소개를 부탁했을 때는 주민번호와 은행 비밀번호가 필요하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는데, 은행 비밀번호는 머... 좋은 아빠냐는 질문에 자신이 공부한 정치 역사를 나누려고 아이들과 헬싱키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직업 덕분에 10대가 선호하는 대중문화를 잘 이해해서 가능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한다고 대답해주었다. 자신이 좋은 아빠인지는 아내에게 물어보는 게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는 자신의 부모보다는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딸의 일화를 빌어 이야기하는 그는 아이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대화를 많이 하는 좋은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핀란드 커피, 범죄, 그리고 성평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