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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서 Jul 23. 2023

[인생의 신맛] 시, 삼킨 말들의 산화


[인생의 신맛]

시, 삼킨 말들의 산화





나는 줄이 끊긴, 소리 나지 않는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내 안은 과묵한 음표와 함께 떠내려가 깜깜해진다. 유령이 그 어둠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마당의 풀을 스치는 것 같기도, 거실을 빙글빙글 도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은, 닫힌 적 없는 피아노 뚜껑을 그대로 두는 일. 창백한 이빨들을 그늘에 일 년이고 삼 년이고 말리는 일. 



말을 삼킨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람 앞, 사랑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 앞에 서면 선을 넘지 못하는 지박령이 된다. 주장하고 싶지만 분노하고 싶지만 옷깃을 붙잡고 싶지만 수치를 주고 싶지만, 몸이 투명해지고 세계는 어두워진다. 언어는 아주 좁은 집이 된다. 집을 껴안을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문보다도 작으므로. 뻐끔뻐끔 입을 벌려도 날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말 따윈 없다. 심지어, 길바닥에 이리저리 치이는 돌을 시기 질투할 만큼 내 목소리엔 단단한 뼈가 없었다. 뼈가 없으니 살도, 눈빛도, 동작도 없다. 시들한 호박보다 처참하다. 내 혀보다 유연하거나 무거운 말을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은 나를 수줍은 아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착각은 도무지 멈추지를 않아, 나는 수줍은 척하는 음흉한 애가 됐다.



여자아이, 장녀, 누나, 딸은 나의 다른 이름이었으나 나는 그 명찰을 요청한 적이 없다. 사회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수많은 역할에 영혼이 쪼개질 준비를 하란 뜻인 것 같다. 나는 계속해서 달라진다. 윤리 교과서에서 철학 비슷무리한 걸 배우는 게 아는 철학의 전부였던 그 시절의 내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폭력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몰랐으므로, 그 말이 꼭 '네 주제를 알라'고 들렸다. 알기 전에 그냥 '되면' 안 되나. 날 알기 전에 일단 내가 되면 안 되나. 되고 나서, 날 보면 안 되나. 내가 어떤 모양인지 때가 되었을 때 알면 안 되나.  



커갈수록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의 경계선이 뚜렷해졌다. 할 수 없는 말을 뱉을 때면, 혼잣말을 할 때도 괜히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이곳을 쳐다보는 것 같고, 세상이 날 벌할 것 같았다. 내가 안전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른이 좋아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학습하는 것이었다. 고분고분하고 착하고 책임감 있는 여성의 말. 키가 조금이라도 자라면, 교복 하의가 짧아질까 봐 두려웠다. 누군가 내게 기대를 걸면, 그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나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접근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부러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애써 넘긴 순간이 사실은 내게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침이 고인다. 시큼하다. 삼킨 말들이 쌓이고 썩는다. 온몸이 염산처럼 수치로 끓는다. 내 머리카락이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면,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이 긴 머리는 붉은색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 닿은 것들이 내 정체를 알면 모조리 녹을 것 같다.



언젠가 아빠가 말했다. 젊었을 때는 닭죽을 먹으면 막판에 그릇에 담긴 죽이 걸쭉해졌다고. 그런데 지금은 몸에 염증이 많아지고 늙어서 침이 산성이 된 것인지, 조금만 지나면 먹던 죽이 물처럼 찰방거린다는 것이다. 정말이었다. 아빠가 뜬 숟가락 위 죽과 내가 뜬 죽의 점도가 달랐다. 내겐 당신의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살아내면 낼수록, 몸 안에 갇힌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부식된다고 들렸다.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살가죽도 나보다 두껍고, 뼈도 두껍고, 나보다 수십 년은 더 많은 말을 뱉은 사람이 부식되고 있다는 게 그냥 낯설었다.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영양죽을 보면서 몸보신이 뭔지 생각했다. 오래 산다는 건, 그만큼 삼킨 말이 두터워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랑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많다는 소리다. 



짜증 났다. 말을 못 해서 죽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일 것만 같았다.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갇혀서 정신을 못 차리다가 정말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주장이 서툴고, 타인을 의식하고, 체면을 중시하고, 역할을 못 벗어나고, 실수할 기회조차 만들지 않고, 부탁도 못 하고, 그래서는 나의 언어는 계속 똑같은 평수에 머물러 작은 집에 갇혀 질식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사람도 분갈이하듯 새로 태어나게 해 줄 순 없을까. 뿌리 째 들어내 흙을 탈탈 털어주기를. 스스로 누구였는지 다 잊기를.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막 태어난 애처럼 헛소리를 진심으로 해볼 수 있기를. 



그래서 시를 썼다. 내 시가 언제나 일관성 없이 불안정했던 이유는, 내가 나의 역할을 증오했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나는 산촌에 사는 늙은 할아범이었다가,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철학자였다가, 처녀였던 시절만 기억하는 할멈이었다가,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는 어린애였다가, 애를 둘이나 낳은 여고생이었다가, 휘파람 불면 나온다는 뱀이 되었다. 화자가 수도 없이 바뀌었다. 갈아치우듯이 바꿨다. 무엇이든 되어보았고, 되어보니 깨달았다. 내가 나를 벗어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민물고기가 태평양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눈이 사라지는 순간의 평화와 같다
모래에 닿는 해변의 파도와 같다
사랑과 같다
크림과 같다
사람은 죽는다
그 사람 형상이 내 안에 남아서 아름다울 때
식초와 키위, 파인애플을 밥처럼 먹는다
목과 위가 언어처럼 위태롭도록
안에서부터 벽을 녹여 장화를 신도록
우리는 함께 사랑으로 시간을 뚫었다
모루가 녹아도 그 사실은 빛날 것이다

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중 '연육'  



시를 읽고 쓴다는 건, 결국 고물이나 다름없는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내 안의 피아노를 마주하는 일이다. 깨우는 일이다. 피아노에게 '피아노야'라고 부르는 일이다. 대답 없는 피아노를 기다리는 일이다. 고명재 시인이 '남아서 아름다울' 형상을 위해 '식초와 키위와 파인애플을 밥처럼 먹'듯이, 내가 탐하는 말을 말하기 위해서는 말 못 하는 내면을 '연육'하듯이 녹여야 한다. 피아노가 산성에 젖어 부식된다. 버티던 다리가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줄이 튕기나 가는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건반이 쏟아지며 도미노 쓰러지는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그런 소리 지름. 무엇이 되겠다, 가 아니라 무엇도 되지 않겠다는 소리 지름. 



그때 목구멍은 뚫린다. 목구멍이 뚫린 여자아이는 여전히 음흉하지만, 서슴없이 음흉하다. 살금살금 걸어 다닐 바엔 남들 모르는 곳에서 춤을 추길 선택한다.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 드디어 말이 음악이 되고 찰방이는 나. 숟가락 위에서 줄줄 흘러버리고 마는 죽이 되더라도 오래 살고 싶다. 못 뱉은 말, 그 빚을 탕감하듯 오래 살아 내 언어와 함께 닮은 채로 늙고 싶다.  



산화되고 산화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고르며. 이게 시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고 시를 쓰고 싶다.



 



[인생의 신맛] 연재를 시작하며


세상엔 인생의 단맛과 쓴맛만이 넘치는 것 같다.
과연 정말 삶이 달고 쓸 뿐일까? 
신맛을 곱씹은 사람이 많아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신맛은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다. 
산미 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가 있다고 했을 때, 

누구는 그 맛을 풍부하고 향기롭다고 받아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시큼하기만 해서 커피답지 않다고 느낀다. 

신맛은 다른 미감에 비해 개인의 경험과 주관이 많이 반영되는 감각인 것이다.
쓰고 달고,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기 이전에
신맛을 음미하듯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삶을 맛보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신맛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얼굴을 좋게든 나쁘게든 찡그리게 만든다
2. 코와 혀의 감각이 놀란다
3. 관련된 향기가 이어서 떠오르는 등 상상력을 자극한다
4. 중독성이 있다
5. 싱싱한 것에서도 썩은 것에서도 신맛이 난다

_

시큼해도 상큼해도 인생은 인생. 

인생의 신맛이 지닌 스펙트럼을 드넓게 경험할수록
나는 어쩌면 축적된 편견과 단순한 호오 너머의 '나'를 발견하는 법을 깨우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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