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신맛]
J는 어딜 가면,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나를 섬기듯 말한다. 어쩌다 J의 지인을 만나면 나는 마치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어휴,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반가워요.' 하며 깍듯한 인사를 받곤 한다. 내향형 인간의 얼굴이 뜨거워진다. 도저히 눈을 마주치지 못할 것 같아 입매를 굳히며 상대방 머리통 너머 벽에 걸린 달력이나 조명으로 시선을 살짝 비튼다. 뭐 마려운 사람의 표정이 될 거란 걸 잘 알면서도. 머쓱한 걸 어떡해. 저 사람이 속으로 '뭐야, 듣던 거랑은 다른데?' 생각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무슨 얘기를 하고 다니는 거냐, J.
우리가 오랜 연인 사이라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정말로 나를 '선생님 비슷무리 한 무언가'로 여긴다. 신념으로 위장된 내 개똥철학이나 혼자 쓰는 졸시, 소수의 독자를 가진 고요한 브런치 연재물, 그저 운이 좋아 속 깊은 사람들과 함께 이어가고 있는 밑미 리추얼을 보고도 J는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몇 년 전에 널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개차반이었을 거야. 너한테 배운 것도, 너로 인해 바뀐 것도 참 많다. 다른 사람들도 네 진가를 알아야 해. 세상사람들이 널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야!"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면전에 대고 말해준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한 넘버원 신도 같은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낮은 자존감이 회복되기보다, J가 알고 있는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나'가 얼마나 같은지 심란한 심정으로 계산하기 바쁘다. 그간의 언행이 연인 한정 립서비스라면 J는 훌륭한 연극배우가 될 수 있을 테고, 진로를 반드시 틀어야 할 것이다.
의뢰한 적 없는 김해서 홍보 퍼레이드를 멍하니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네가 천진한 사람이라 참 다행이야. 날 좋아하면 그럴 수 있지. 그러나 네 홍보에 발맞춰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순 없어. 그냥 나는 알아. 나에 대한 소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초라함이 들통날 텐데.
오히려, 자신이 신뢰하고 좋아하는 모든 것을 '선생님' 격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에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의 미덕은 어제 불행했다 해서 오늘도 불행하려 하지 않는 깨끗함에 있다. 눈을 뜨고 샤워를 하고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옷과 머리를 매만지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순간 J는 '산책 좋아!'를 외치는 리트리버 모드로 전환된다. 그렇다. 이마에 내린 아침햇살을 마법의 가루라도 되는 듯 환영하며 근심걱정을 길바닥에 내던져버린다. 자기 전에 훌쩍인 울음은 그가 탐할 세상의 아름다운 구석구석을 밝히는 광채로 전환된다. 해수욕장에 가면 누군가 옷을 훔쳐갈까 싶어 엉거주춤 계속 뒤를 흘끔거리는 아이가 있고, 냅다 웃통을 까서 물에 몸을 던지는 아이도 있다. 햇살 아래서 J는 후자다. 쫑알쫑알 미래도 과거도 알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만이 자기가 아는 유일한 시간대인 아이처럼.
"어우~ 어떡해! 너무 귀엽잖아! 유모차에 있는 애기, 봤어? 봤어? 머리통 완전 동그래. 볼따구 완전 동그래. 옆에 어머님이랑 똑 닮았더라. 눈코입이 아주 그냥 판박이야. 어머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구만! 그래~ 얼마나 예쁘겠어!"
"... 그러게!"
확인 차원에서 말하지만, '그러게'를 말한 사람이 나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이미 그가 다 해버렸다. 너가 낳은 거 아니냐고는 차마 묻지 못했다. J의 호들갑은 멈추지 않는다. 애기 선생님을 지나서 시바견 선생님, 플라타너스 선생님, 새끈하게 옷을 빼입은 힙스터 선생님, 능소화 선생님, 마주 보고 앉아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 선생님들에게까지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공손한(?) 녀석. 덕분에 그와 함께 거리를 걸을 때면 혼이 쏙 빠진다. 서울이 이렇게 빽빽하고 넓었다니. 새삼스럽게 실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의 가치를 높이는 J의 시선 역시 그가 세상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선상에 놓이는 거라 생각했다. 그가 애정하는 산미 있는 커피를 마셔보기 전까지는.
말하자면, 나는 커피문외한이다. 카페인에 반응하는 몸이라 잘 마시지 못하거니와 지독한 탄내가 나지 않는 이상 웬만한 커피를 맛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주는 대로 마신다. J가 에디터로서 각종 카페를 방문하고 사장님들을 취재하는 동안 그는 '산미'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나는 이번에도 '어, 그렇구나.' 정도로 대꾸했다. 커피에서 포도맛이 나다니! 와, 이건 뱅쇼! 아니, 잔향이 진짜 청사과잖아? 신맛의 매력에 감겨드는 그의 혀는 미뢰 안에서 느낌표가 폭죽처럼 터지는 것에 취했고 제대로 커피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커피가 커피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하는 이상한 심술을 느끼며, 나는 즐기지 못하는 맛의 축복에 허우적거리는 그를 내심 아니꼽게 지켜보았던 시간이 있었다. 일부러 그가 권한 한 모금을 거절하기도 하면서.
몇 년 전 연희동 깊숙한 곳에 자리하는 한 카페에서 우리의 N번 째 기념일 오후를 보내던 때, 나는 드디어 넘어가주는 척 산미 있는 원두로 내린 라떼를 주문하였다. 여름이었으니 아이스로. 첫 모금을 들이켰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이네. 얼음과 우유가 섞였는데도 커피에서 백도의 향긋한 맛이 뚫고 올라오네. 두 번째 모금에도 마찬가지였다. 더 깊게, 진하게, 혀뿐만 아니라 콧속을 점령한다. 거의 황하처럼 굽이치며 감각을 휘감는다. 여러 가지 맛이 느껴지는데도 산뜻할 수 있구나. 이 놀라운 음료는 마치 앞으로의 내 미식 생활이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듯이 타종하듯 뇌를 흔들었다. 놀라움으로 확장된 눈빛을 캐치한 J는 '맛있지? 여기 커피 정말 맛있다니깐!' 하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날 이후로, 라떼도 원두 선택이 가능한 카페에서는 꼭 '산미'가 있는 맛으로 골랐다. 먹다 보니 몸이 카페인에 익숙해진 것인지 두근거림이나 울렁거림도 점차 가라앉았다. 물론 나는 여전히 싸구려 커피든 고소한 커피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그러나 한 번 열린 새로운 감각의 문은 아예 문짝이 나가떨어져서 통로가 되어버렸다. J가 발견하는 것들은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아기는 예뻤으며, 시바견은 다른 개에게 싹수가 없었지만 용맹했고, 플라타너스 기둥은 정말 굵었고, 힙스터 형님의 문신은 섹시했고, 능소화는 찬란했으며, 할아버지의 장기는 쟁쟁했고, 커피는 맛있었다.
나는 마치 금잔화를 믿듯 세상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걸 보니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지 않는 것이니...
세상은 생각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생각한다는 건 눈이 병든 것)
우리가 보라고 있고, 동의하라고 있는 것.
내겐 철학이 없다, 감각만 있을 뿐...
내가 자연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건, 그게 뭔지 알아서가 아니라,
그걸 사랑해서, 그래서 사랑하는 것.
왜냐하면 사랑을 하는 이는 절대 자기가 뭘 사랑하는지 모르고
왜 사랑하는지,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_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의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중 일부
나는 혀 위로 사르르 융단처럼 퍼지는 금잔화빛 산미를 받아들이며 속으로 J를 불렀다. 어쩌면 말이야. 네가 본 나도 정말 그런 것일까. 내게도 나만 모르는 '진가'라는 것이 있을까.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동의해 주는 세상을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제대로 드러나는 것일까. 네 눈에 닿는 세상처럼... 그때의 나도 빛을 품고 있을까. 모르겠는걸.
모르겠지만, 일단 나를 사랑해 주기만 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나의 진가는 내가 찾을 테니까. 언젠가 스스로 발견했을 때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지? J, 내가 드디어 모든 편견을, 심지어 내 자신에게도 갖고 있던 편견을 내려놓고 많이 기쁠 때, 지금처럼 한 치의 의심 없이 나를 섬겨 주기를. 네가 믿는 세상은 나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인생의 신맛] 연재를 시작하며
세상엔 인생의 단맛과 쓴맛만이 넘치는 것 같다.
과연 정말 삶이 달고 쓸 뿐일까?
신맛을 곱씹은 사람이 많아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신맛은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다.
산미 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가 있다고 했을 때,
누구는 그 맛을 풍부하고 향기롭다고 받아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시큼하기만 해서 커피답지 않다고 느낀다.
신맛은 다른 미감에 비해 개인의 경험과 주관이 많이 반영되는 감각인 것이다.
쓰고 달고,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기 이전에
신맛을 음미하듯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삶을 맛보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신맛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얼굴을 좋게든 나쁘게든 찡그리게 만든다
2. 코와 혀의 감각이 놀란다
3. 관련된 향기가 이어서 떠오르는 등 상상력을 자극한다
4. 중독성이 있다
5. 싱싱한 것에서도 썩은 것에서도 신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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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큼해도 상큼해도 인생은 인생.
인생의 신맛이 지닌 스펙트럼을 드넓게 경험할수록
나는 어쩌면 축적된 편견과 단순한 호오 너머의 '나'를 발견하는 법을 깨우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