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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서 Jul 17. 2023

[인생의 신맛] 접시만 한 사랑


[인생의 신맛]

접시만 한 사랑





누군가 내게 사랑은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흰 접시 위에 곱게 깎인 과일을 닮았다고.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내 혀는 불꽃축제를 통째로 삼키듯 각종 달고 신 과일을 뒤집어쓴다. 며칠에 내려가겠다고 아빠에게 연락하면, 당신은 하루 전에 마트를 돌아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박스째 사둔다. 그 과일들은 냉장고나 베란다에서 잠자코 때를 기다리다가, 곱게 깎이고 썰려 내가 뒹굴거리거나 작업을 하는 방으로 전달된다. 작은 포크와 함께. 



'손으로 집어 먹어라 해도 될 것을'이라 생각하며 나는 우물거린다. 아빠가 마트에 진열된 박스 가운데서 가장 잘 익은 놈으로 골라 온 것,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과도로 껍질을 벗긴, 그리고 손바닥만 한 접시 위에 내려놓은 그것을 잘도 삼킨다. 그리고 떠올린다. 딸에게 줄 과일을 손질하느라 젖어 있을 당신의 두툼한 손을. 보송하고 작은 내 손바닥은 마치 주는 걸 받고만 싶은 새끼새의 주둥이처럼 연약한 분홍색이다. 아직도 접시를 비울 줄만 아는 게걸스러운 분홍색. 갑자기 내 방 너머의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문을 열면, 어김없이 싱크대 앞에서 식재료를 만지느라 둥글게 굽은 당신의 등이 보인다.  



근 두 달 사이에, 아빠는 내게 '사는 동안 지금처럼 편안한 적이 없었다'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사실 화가 났다. 두 번째로 들었을 땐 슬펐고, 세 번째로 들었을 땐 나도 그냥 잔잔하게 웃었다. 



폭력적인 조직문화, 애정 가득한 가정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그 시대 남성 집단 사이에서 아빠는 항상 외톨이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까지 학원 강사로 일하고 기간제 교사직을 찾아 방방곡곡 타지를 옮겨 다니면서, 구역질 나는 개고기와 요란한 주점 조명에 젖은 술안주를 삼켜야 했던 고역의 식탁들을 거쳤다. 저마다 옆자리에 접대 여성이라도 앉히는 회식날에는 '화장실 가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허둥대며 도망치는 날이 허다했다. 그게 반복되자, 아무도 아빠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순애보'라며 뒤에서 비웃는 자들을 봐도, 아빠는 무시했다. 가족만 생각하고, 그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본분에만 집중했다. 가족의 품을 떠나 타지에서 일할 때는, 조그마한 기숙사 방에서 새벽까지 영어 교수법을 연구했다. 아내와 자식이 너무 보고 싶을 땐 고속도로를 달려 밤늦게 집에 방문했다가 새벽 동이 트자마자 일찍 떠났다. 아빠가 왔었다는 걸 어린 나는 잠결로만 느낀 날도 있었다.    



가난했고, 온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유년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좁디좁은 곰팡이로 가득한 집으로 퇴근한 아빠의 표정을. 우릴 보며 안심하는, 쉴 곳은 여기뿐이라는 그 젖은 눈빛을. 나는 그 묵직한 진심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다. 



현장 강의와 관련된 웬만한 업무를 정리하고, 재택근무로 새로운 방식의 일을 시작하고서야 아빠는 등 뒤에 들러붙던 악취가 진동하는 세상을 잘라낼 수 있었다. 마침내 아빠는 자기 자신을 대접하고 가족에게 퍼줄 수 있는 상을 차릴 수 있었다. 깨끗하고 싱싱한 과일과 잘 익은 밥과 국. 진정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편안하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모를 수 없다. 그럼에도 처음 그 말을 듣고 피가 식었던 이유는, 사는 동안 한 번도 우리에게 그 고통을 내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열심을 의심하지 않던 자식에게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도 거의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다. 사랑과 책임에 너무 충실한 사람은 행동하느라 말을 잊는 경우도 있다는 걸. 그래서 아빠의 안위를 전보다 덜 걱정하게 된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당신의 마음을 잠자코 받고 있다. 어떻게 화를 낼까. 눈을 비비며 간만에 본 아빠에게 인사했던 어느 깊은 밤, 어둑한 조명 아래서 피어나던 얼굴이 잊히지 않는데.



또 무슨 과일을 먹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다는 대답을 돌려준다. 딸기, 복숭아, 수박, 블루베리, 토마토 등 여러 선택지 가운데서 당신은 고심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고민하는 사이, 나는 눈을 감고 어느 시절의 밤으로 간다. 혼자 있는 아빠에게로. 수업 준비를 하느라 빼곡하게 어지러워진 기숙사 책상 위에 서툴게 깎은 사과 접시를 올려두러.     





[인생의 신맛] 연재를 시작하며


세상엔 인생의 단맛과 쓴맛만이 넘치는 것 같다.
과연 정말 삶이 달고 쓸 뿐일까? 
신맛을 곱씹은 사람이 많아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신맛은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다. 
산미 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가 있다고 했을 때, 

누구는 그 맛을 풍부하고 향기롭다고 받아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시큼하기만 해서 커피답지 않다고 느낀다. 

신맛은 다른 미감에 비해 개인의 경험과 주관이 많이 반영되는 감각인 것이다.
쓰고 달고,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기 이전에
신맛을 음미하듯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삶을 맛보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신맛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얼굴을 좋게든 나쁘게든 찡그리게 만든다
2. 코와 혀의 감각이 놀란다
3. 관련된 향기가 이어서 떠오르는 등 상상력을 자극한다
4. 중독성이 있다
5. 싱싱한 것에서도 썩은 것에서도 신맛이 난다

_

시큼해도 상큼해도 인생은 인생. 

인생의 신맛이 지닌 스펙트럼을 드넓게 경험할수록
나는 어쩌면 축적된 편견과 단순한 호오 너머의 '나'를 발견하는 법을 깨우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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