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02/ 흘러가자
秒秒分分
글. 김해서
글밥을 먹으며 살기 때문인지 관찰력이 좋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 편이다. 아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왕성한 호기심이 좋은 관찰력의 기본 전제라고 한다면, 오히려 나는 형편없는 쪽에 속한다. 길을 걸을 때도 앞이나 땅만 보고 걷는다. 정면을 똑바로 본다고 해서 시야 안에 드는 사람의 얼굴이나 옷차림, 근사해 보이는 가게 등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매일의 풍경은 다큐멘터리 속 타임랩스 장면처럼 빠른 배속으로 사라진다.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 상황이 아니라면 혼자 있을 땐 거의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않는다. 음악을 틀어놓지 않는 순간에도 그렇다. 까먹고 이어폰을 집에 두고 외출을 한 날이면, 책이나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읽거나 메모장에 글을 쓰면서 걸을 때도 있다. 어떤 면에선 철저하게 세상을 차단하고 외부의 자극에 나를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굉장한 것 같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정보’로 처리되는 뇌는 나를 쉽게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웬만하면 일상의 자극을 사전에 거절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도 몸에 익어, 이젠 아무런 방어템(?)이 없어도 누가 큰 소리로 날 부르는 것조차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 밖을 나감과 동시에 귀의 감각기관이 연기와 열을 감지하면 닫히는 방화셔터로 바뀌나 보다.
이런 나도, 계절의 변화에는 민감하기 때문에 자주 드나드는 골목의 나무와 하늘빛, 남의 집 앞마당 등은 열심히 보는 편이다. 그러는 사이, 분명 오토바이 탄 배달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아이들, 장보고 들어가는 아주머니 등 분명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곁을 스쳤을 텐데, 어째서인지 단 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속세 한가운데서 미혹에 빠져 사는 중생이면서, 마치 홀로 고즈넉한 한때를 보낸 같아서 기분이 묘할 때가 있다. 내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긴 한 걸까 싶으면서도, ‘뭐 어때. 이게 내 평화를 지키는 방법인데.’ 하고 합리화하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본가에 다녀오느라 백팩부터 종이백까지 양 어깨와 손에 짐을 한가득 이고 지하철을 탔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이미 몇 시간째 가동 중이다.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든 것도 있지만, 너무 많은 풍경을 보고 불특정다수 속에 오래 껴있으려니 에너지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설상가상 앉을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입술을 꾹 깨물며 사람들 틈에 파고들어 섰다. 육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앞이었다. 늘 그랬듯, 앞에 누가 있는지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앉은 채로 자꾸만 나와 내 짐들을 힐끔힐끔 살펴보기에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안에서 중년 남성에게 이런저런 불쾌한 일을 겪은 경험이 있던 터라 짜증과 불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좀 빠져나가면 다른 칸으로 옮겨 가야겠다고 마음먹을 때쯤. 갑자기 그가 내 소매 쪽을 툭툭 친다. 흠칫 놀라 이어폰을 빼며 내려다봤는데, 순식간에 내 팔을 끌어 그가 앉았던 자리에 나를 앉히는 것이다. 그리고 후다닥 자리를 벗어나더니 내리는 문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노약자석으로 가 앉는다!
어이없게 깨진 공고한 나의 평화에 당황하며 어안이 벙벙한 채 그가 앉은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깊게 감고 있다. 이제 좀 마음이 편해졌으니 건들지 말라는 듯 굳게 닫힌 눈은 다시 뜰 기미도 없었다. 고마움을 전하려면 소리를 쳐야만 하는 상황. 그래볼까, 하는 마음이 잠시 솟구쳤지만 나는 겁쟁이이므로 그러지 못했다. 이번엔 반대로 내가 멀리 있는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게 되었다.
문득, 나는 우리가 아무 표정을 짓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뭔가를 나눠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친절은 평화를 비집고 훅 끼쳐 들어온다. 아무것도 망치지 않고, 고요함을 유지한 채로.
내려야 할 곳까지 이어지는 몇십 분의 시간 동안, 누군가의 체온이 남은 따끈한 좌석이 비로소 내 세상의 자리처럼 느껴졌다. ‘어리석은 것아, 너도 이 세상 사람이야!’ 하고 말해주는 듯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온정 어린 평화를 상상한다. 아이를 안아 든 여성을 먼저 들이기 위해 문을 조금 오래 붙잡아주는 아가씨, 폐지 줍는 할머니 곁에 말없이 박스를 한 아름 쌓아두고 가는 환경미화원, 이웃의 무거운 구르마를 대신 끌어주는 청년, 굴러온 축구공을 힘껏 차주는 지나가는 러너. 나였고 우리였던 사람들의 분명한 만남들이 속수무책으로 떠올랐다. 안 보고 지나갔다 여겼던 세상이, 귀담아듣지 않았다 믿은 세상이 머리 뒤편으로 팝콘처럼 팡팡 피어났다.
이후, 나는 보고 듣는 연습을 다시 하고 있다. 당장 이어폰을 포기할 순 없지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비싸서 사진 못했지만,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다는 헤드셋을 장바구니에서 빼낸다. 새소리를 듣고, 어떤 과일이 세일하는지 듣는다. 여자가 왜 남자에게 화났는지 듣고, 견주들이 강아지들을 인사시키는 소리를 듣고, 지갑을 두고 간 손님을 향해 뛰어가는 식당 점원의 목소리를 듣는다. 단지 조금 귀를 열었을 뿐인데 거리가 한층 밝아졌다는 착각이 든다.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이 소리들 사이를 그저 흘러 다니면 되었을 것을.
秒秒分分 OST
track 02/ 권진아 - 흘러가자 (2022)
(...생략 )
흘러가자
흘러가자
이따금씩 바라봐
오늘의 하늘은 어떤지
오늘의 마음은 어떤지 괜찮은지
어김없이 위로받는 건
달빛과 노래 또 진심
달빛과 노래 또 사람 사람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