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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서 Mar 13. 2023

[초초분분] 생색과 유난

track 04/ Days and Years


앨범명: Atlantis - The 7th Album Repackage






秒秒分分

생색과 유난


글. 김해서




J와 나 사이엔 은밀한 사인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뮤직 큐. 


어느 한쪽이 ‘뮤직 큐’를 말하면, 상대는 그 암호를 철썩 같이 알아먹고 재빨리 이어폰을 찾아야 한다. 블루투스 이어폰 배터리 상태를 항상 확인하라. 5분 내에 방전될 것 같다면, 유선 이어폰이라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하여 얼른 곡을 선곡하고 음악을 감상할 것. 기왕이면 현란한 랩이나 혼을 쏙 빼놓는 댄스곡을 트는 게 좋을 거다. 음량을 적절히 높였다면, 화장실 문 앞에서 민망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자에게 응답한다. 엄지와 검지를 모아서, ‘오케이! 바로 지금이야!’ 


내 연인이 화장실에서 어떤 일을 벌이든 간에 두 귀는 아이돌 음악이나 힙합 같은 최신가요에 장악될 뿐이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낡은 빌라지만, 음악은 너무나 든든한 방호벽이 되어준다. 덕분에 우리 사이엔 생리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겸연쩍은 상황들이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상대가 마음껏 볼일을 볼 수 있게 배려하면서도, 기다리는 사람 역시 지루하지 않으니 기특하기 그지없는 룰이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 음악에 맞춰(나는 그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절도 있게 춤을 추고 있는 J의 진풍경을 볼 수도 있다.


언제부터 이런 룰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서로의 집을 왕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됐을 거고, 높은 확률로 재기 넘치는 J의 아이디어였을 거다. 물론, 나는 연인끼리 생리현상 트는 것을 나쁘게 보지도 않고 민망하게 여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체 이게 무슨 유난인가. 그러나 유난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뮤직 큐’를 공유하는 사이라는 것이, 그 말 한마디에(마치 훈련된 장병처럼) 일사불란하게 몸을 움직이는 풍경이 웃기다. 


서로가 서로의 일상에 완전히 스며들어서 물 마시고 영양제 챙겨 먹듯(한편으론 무신경해 보일 만큼) 자연스럽게 교감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이처럼 평화로운 광경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우리들의 장면을 조금 귀엽게 빗대 보자면, 단짝에게 등과 머리를 내어주며 털을 고르는 원숭이들(?)처럼 천진해 보이기도 하다. 하늘을 올려다본 자에게만 더 환한 오후의 햇살처럼, 감사해야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정치, 경제, 사회 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각종 이슈들을 볼 때마다 짜게 식어가는 나의 인류애는 하찮고 우스운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즐기는 존재들 덕분에 회복된다. 사람만한 강아지에게 끌려다니며 본의 아니게 전력을 다해 질주해야 하는 견주 아저씨, 보행로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딸아이에 맞춰 덩달아 미뉴에트를 추는 남자, 고양이들처럼 볕 드는 곳을 찾아 의자를 옮겨 수다를 떠는 동네 할머니들. 단지 나는 그 옆을 지나가는 행인 1이었음에도 상냥한 친절을 경험한 듯 마음이 간지러워 혼자 입술을 실룩인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지구라면 그래도 사랑할만하고 평화를 지키는 데 동참할 가치가 있다. 


흔히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은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며 우리 가치를 강등한다. 실제로 인간의 몸은 별의 폭발로 발생한 우주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한 명 한 명은 그저 별먼지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먼지로서’ 잘 살면 되는 것이다! 


고작 먼지인 주제에 다른 먼지를 위해 음악을 틀고, 다른 먼지와 나눠 먹을 미역국을 끓이고, 다른 먼지가 잠잘 때까지 자장가를 불러주고, 다른 먼지가 좋아하는 슈크림 붕어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먼지가 먼지를 생각하느라 먼지를 뒤집어쓰는 장면들. 사랑스럽다.


언젠가 J에게 농담 반 진담 반인 요량으로,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라고 부채질했다. 채널명은 ‘생색과 유난’으로 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물건 가지고 호들갑 떨어보라고. 춤 영상도 올리고, 시시콜콜한 썰을 풀면서 쓸데없이 화려한 언변을 자랑해 보라고.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곱씹을수록 J에겐 그만한 수식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 그냥 닉네임이 김유난 김생색이어도 괜찮을 듯’ 하고 아무 말이나 해버렸던 것 같다. 그는 조금 겁이 많긴 해도 호기심이 넘쳐서 세상에 널린 다양한 것들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그것을 조명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만사 모든 것들의 감사함과 귀여움에 대해 콘텐츠를 만들 사람이다. 


언젠가 정말 맘이 동해서 비스무리한 채널이 만들어진다면, 열혈 구독자가 되어 그에게서 배워볼 생각이다. 행복을 위한 ‘생색’과 ‘유난’은 어쩌면 정말 배울 필요가 있는 태도일 수도 있으니까. 별 걸로 착실해지고 별것도 아닌 걸로 감사할 수 있다면, 고작 연인이 화장실 간 사이에 틀어놓는 음악으로도 별난 한때를 보냈다며 기분 좋은 일기를 쓸 수 있을 테다. 


누군가가 머리를 파란색으로 염색하고 난데없이 물구나무를 서야만 발견해 줄 게 아니라, 하루에 한 번쯤은 늘 보는 풍경과 늘 곁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보자. 내가 삶과 사람을 깊이 스치고 있음을 감각하기. 다른 말로는, 신뢰하기. 


오늘 하루도 그저 휙 증발해 버릴 것이다. 불쑥 세상이 원망스러워지는 건 막을 수 없다. 삶의 '허무'는 손 닿지 않는 높이의 차양처럼 줄곧 드리워지겠지. 그러나 우리는 울면서도 낄낄댈 수 있는 고차원의 먼지들이다. 그러니 믿어보려 한다. 믿으면 믿을수록, 그래서 소중해지면 소중해질수록 삶은 우리의 것이 된다고. 





秒秒分分 OST

track 04/ SHINee(샤이니) - Days and Years


(...생략)

우리가 나눈 이 감정이

사랑이 전부는 아니겠지

그건 분명해 말로는 설명 못 해

가끔은 고집을 피우고

깨져버린 어항에 담긴 물처럼

서로를 서운하게 해 아주 잠깐

모든 그 순간이 대단하진 않아도

Days and years days and years

봐 여기 있을 거야 난 네가 여기 있는 한

그건 당연하잖아

네가 나를 지켜줬듯이 나도 지켜줄게 널

앞으로도 영원히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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