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05/ A flower is not a 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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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해서
돌은 아름답다. 특히,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돌멩이는 그 안에 작은 심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를 조심스럽게 만든다. 움켜쥘 게 아니라 고양이의 콧등을 쓸어주듯 한 손가락으로 매만져야 할 것만 같다. 돌에겐 정말로 그런 힘이 있는 것인지,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옛 학자들이나 예술인들은 돌의 여러 형식과 속성을 빌려 다양한 철학과 문학을 전개했다. 그러나 나는 돌을 직접 언급하며 묘사하는 어떤 대단한 이야기보다, 페소아가 '알바루 드 캄푸스'라는 이명으로 발표한 시 <담배 가게>의 첫 연이 '돌'을 설명하는 가장 근사한 소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영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가 되기를 원할 수조차 없다.
이걸 제외하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꿈을 품고 있다.
(이하 생략)
- 페르난두 페소아의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중 <담배 가게> 일부
이 시는 돌에 대한 시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첫 연부터 강렬하게 붙들린 채 첫 연만 무한반복해 읽으며, 아주 고집스럽게 보일 정도로 시커먼 해변의 돌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돌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흔하디 흔한 돌 따위가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는, 돌은 그저 돌이면서도 우리 곁 모든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래, 바위, 동굴, 비석, 건물 자재, 돌침대, 화분, 독무덤 등등 무궁무진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 위에 바닷물이 들이치고, 붉은 여우들이 뛰놀고, 곰이 숨고, 이끼가 자라고, 대단한 자본가들의 높은 빌딩이 쌓아 올려지고, 늙은 연인이 자고, 선인장이 크고, 뼈들이 누워 있다. 심지어 이 모든 생명과 욕망과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지구도 암석질 행성이다. 놀랍게도 돌은 우리들을 둘러싼 세계의 '전체'이자 '부분'인 것이다. 그 사실을 실감할 때마다 나는 내 손 위의 작은 돌이 지혜의 뼈처럼 보이곤 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들의 가능성인 존재.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우주의 결정!
고집스럽게 혼자만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돌이지만, 한낱 인간이 그런 존재를 닮을 수는 없겠지만, 경외감을 가지며 살다 보면 나도 나만의 작은 지혜로 삶을 드넓게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 돌멩이만큼의 꿈을 지키다 사라지는 순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돌이 돌로 태어나 돌로 죽지 않고 시멘트에 발려 집이 되거나 퇴적지가 되듯이, 나의 흐름을 잘 알고 순응하며 변화하는 것. 내 삶의 말을 잘 듣고 싶어진다.
최근, 답지 않게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이토록 '말하고 싶어지는 마음'은 흔히 찾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내 성격을 다들 알아서인지, 그들 모두가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어쩌면 그들은 살짝 김이 샜을 수도 있다. 기껏 카페에서 만나 들은 얘기가 '나 이제 나로 살아야지!'라니. 시와 에세이를 열심히 쓸 것이고, 등단을 하진 못했지만 내 시도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별소리가 아니다. 초등학생 때 꿈 얘기까지 하면서 다시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얘기도 해댔다. 고정 수입이 없어서 위태로운 나날이지만 내심 해보고 싶은 아르바이트도 있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도 뱉었던 것 같다. 뻘소리를 별소리나 되는 것처럼 떠드는 얼굴이 신기했는지, 한 친구가 그랬다. "해서 씨는 어쩐지 만날 때마다 더 씩씩해져 있네요."
조바심이 덜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가 되고자 했던 마음이 잠잠해진다. 되지 않고도 이미 나고, 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로 살고 싶으니까.
백거이의 <花非花>는 사랑시지만,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지는 삶의 허무를 표현한 시로도 알려져 있다. 인생은 봄날의 꿈처럼 내게 꽃이었던 것도 꽃 아닌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를 더 적극적으로 읽는다면, 허무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의 유한성을 깨닫고, 유한함 안에서도 가장 넓게 확장되는 불굴의 감각'을 발견하려는 건 내 욕심일까. 모든 것은 변한다. 꽃이 꽃 아닌 것이 되듯. 그리움도 그리움 아닌 혹은 그리움을 닮은 무언가가 될 것이다. 나도 나 너머의 내가 되어갈 수도 있다.
계절이 바뀌듯 주체는 흘러갈 뿐이다. 살아있다면 머물지 않는다. 있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있게 된다. 끝없는 죽음과 탄생이라는 물결과 일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그런 꿈을 꾼다. 그래서 내내 쓰고 그리고 일하고 싶다.
그리고 돌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태연하다. 움직일 수 없다는 한계가 무색하게도 모든 것을 품고 있다. 발에 치이거나 자동차 바퀴에 휩쓸려 어디론가 굴러가더라도, 그 자리에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눕는다.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이.
秒秒分分 OST
track 05/ Sakamoto Ryuichi - A flower is not a fl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