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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Oct 10. 2019

할머니의 최애 음료 코카콜라

기운 센 을지로입구 식탐러의 워크&푸드 로그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별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양친 집안 모두 장수하는 가족력 덕분에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한 번도 가족과의 이별을 겪어보지 못했던 터라 갑작스런 할머니의 죽음이 나에겐 처음이었고 그만큼 충격도 컸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를 납골당에 모신 뒤 집에 돌아온 이후 얼마간은 할머니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다. 매주 교회 예배를 마치고 들르던 친정집 어디에도 할머니가 없었고, 할머니를 보러 당번을 정해 주일마다 놀러오던 작은엄마며 고모들이 보이지 않아도, 다리가 불편해 늘 집에만 계시던 할머니의 단짝 친구 강아지 하루가 눈에 띄게 우울해 해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도무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주일 예배 후에 습관처럼 들른 친정집에서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냉장고 한 켠에 쪼르륵 놓여 있던 먹다 남은 코카콜라 세 병. 휴지 한 칸도 아껴 쓸 만큼 알뜰했던 할머니가 탄산음료는 한 번에 마셔야 한다는 엄마와 나의 잔소리에도 늘 한 컵씩만 따라 마시고 뚜껑을 꼭 잠궈 냉장고에 넣어두던, 할머니의 코카콜라가 거기 있었다.


  아아, 우리 할머니.

이제 우리 할머니를 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구나.




  할머니는 항상 부엌 식탁 의자에 거실 쪽을 바라보는 자세로 앉아 계셨다.

옆에는 늘 짚고 다니는 보행기를 세워둔 채,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웃고 떠드는 우리를 항상 물끄러미 쳐다 보셨었다. 식구들과 생활 패턴이 잘 맞지 않아 어떨 때는 그 식탁에서 혼자 식사를 하시기도 했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굳이 보행기를 짚고 본인이 드신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둔 뒤 그 자리로 돌아와 앉아 또다시 우리 쪽을 쳐다 보셨었다.


  그도 아니면 할머니는 할머니 방 침대에 누워 불을 끈 채 드라마를 보시곤 했다.

지상파 3사 방송국의 일주일 드라마 스케쥴을 꿰고 있을 만큼 할머니는 드라마의 광팬이었다. 어쩌다 텔레비전이 망가지거나 하면 세상이라도 무너진 듯 바로 작은 손녀나 큰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고쳐 달라고 얘기할 만큼.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그저 말동무가 필요했던 것 같다.

우두커니 식탁 의자에 앉아 거실 쪽을 바라보실 때도, 혼자서 식사를 하실 때도, 방에 누워 드라마를 보실 때도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를 꽤 오래도록 기다렸던 것 같다.


  일상이 바쁘고 지쳐 늘 그 자리에 있던 할머니를 잊고 지내다 가끔 짬을 내어 할머니 곁에 앉으면 할머니는 그야말로 얼굴이 활짝 피며 함박 웃음을 짓곤 했다. 평양이 고향인 할머니를 위해 내가 가끔씩 선보이던 이북 사투리 개그에는 그야말로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로 소녀만치 깔깔 웃음을 터뜨리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할머니는 그 연세에도 웃을 때 보이는 이가 옥수수알마냥 가지런하고 튼튼한 것이 참 예뻤는데.




  할머니의 이야기엔 늘 레파토리가 있었다.

소싯 적에 평양 시내에 한 번 뜨면 온 동네 남자들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평양에 보름달 떴다" 할머니의 미모를 찬양했다는 이야기부터 우리 아빠 어릴 적에 고뿌에 사이다 담아 팔던 영감님이 동네에 오면 아빠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감~~~ 사이~~~ (영감~~ 사이다~~)" 했다는 이야기, 나와 내 동생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할머니가 손을 잡고 동네를 돌아 다니며 새한병원 얘기도 해 주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이발소 사인도 보여 줬었다는 이야기까지.


  평양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딸내미로 유복하게 자라다가 전쟁통에 월남하여 갖은 고생을 겪고 할아버지를 만나 또 다시 긴긴 세월 마음 고생하며 4남매를 키워낸 할머니에게 삶의 행복했던 순간은 모두 과거에만 존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년에 넘어져 다리를 다치면서 십여 년을 아무 데도 못 가고 집 안에서 식구들만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시간 할머니에겐 힘들고 괴로운 기억일 뿐이었기 때문일지도.


  굴곡지고 긴 인생을 살면서 하도 속 답답한 일이 많았어서인지 할머니는 코카콜라를 참 좋아했었다.

언젠가 왜 콜라가 좋으냐고 묻자 마시면 속이 뻥 하니 뚫려서 시원하다고 대답하던 할머니의 약간 서글펐던 얼굴이 기억난다. 회사 다니고 친구들 만나고 연애하며 사회 생활 한답시고 할머니와 자주 시간을 보내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으로 나는 생각날 때마다 콜라를 사 들고 집에 갔었다. 할머니가 콜라 뚜껑을 탁 하고 따서 꿀꺽꿀꺽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시는 걸 보면 할머니를 하루 종일 혼자 있게 했다는 죄책감이 조금은 같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으니까.


  할머니가 내 곁을 떠난 가을날, 지나가다 편의점에 진열된 코카콜라만 봐도 이렇게 할머니가 보고 싶을 줄 알았더라면 그 때 조금 더 자주, 더 오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할머니 품에 안겨 볼 것을 그랬다. 내가 할머니의 코카콜라가 되어 드릴 걸 그랬다.


  아무리 원해도 그럴 수 없는 지금은, 그저 이 세상 사는 동안 가슴 답답한 사연과 서글픈 사건이 많았던 할머니가 천국에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만을 바랄 밖에.

보고픈 우리 할머니가 건강히 잘 지내다가 언젠가 내가 가서 할머니를 부르면 다시 그 옥수수처럼 가지런한 이를 보이며 활짝 웃어주기만을 바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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