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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Mar 30. 2020

뚱뚱한 초등학생의 떡꼬치

기운 센 을지로입구 식탐러의 워크&푸드 로그

  인간의 유형 중 내가 가장 귀여움을 느끼는 타입은 뚱뚱한 초등학생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뚱뚱하고 하얀 피부와 맨들맨들한 생머리를 가진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 아이다. 크게 상관은 없지만 안경을 낀 편을 선호한다. 아이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딩크족이 되기로 결심한 것 치곤 희한한 기호다.


  요즘 아이들이 점점 영악해 지고 있다는 걸 보고 듣고 간혹 직접 경험하기도 해서인지, 원래 애들은 애들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요새 초등학생들이 대체로 껄끄럽다. 그러나 가끔씩 또래의 때 이른 영악함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열 두살이니 열 세살짜리 아이들을 만나면, 그네들의 천진함이 내게 뜻모를 위안이 되고 거기에서 흐뭇함과 안도가 뒤섞인 감정에 무척이나 귀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뚱뚱한 초등학생들은 당연하게도 빈 손인 경우가 드물다.

그들은 늘 손에 무언가 먹을 거리를 쥐고 있다. 희한하게도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들은 내가 초등학생이던 30여년 전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각종 쫀드기며 아폴로, 혀가 파래지는 사탕 등의 달다구리, 피카츄 돈까스 그리고 떡꼬치까지.


  초등학교 앞 간식계를 평정하는 건 그 역사성으로 보나 대표성으로 미루어 볼 때 역시 떡꼬치를 따를 것이 없다. 이 떡꼬치는 조리 방식과 소스에 따라 각각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뉘는데 떡을 튀겼는지 쪄냈는지, 그리고 소스에 단맛이 첨가되었는지 아닌지가 바로 그 기준이다.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떡꼬치는 떡을 튀겨서 매콤달달한 소스를 묻힌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법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소싯적 동네에서 떡꼬치 좀 빨아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내 기준에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나는 어린 시절 깡마른 초딩이었다.

유난히도 내적 성숙이 또래에 비해 빨랐던 지라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엔 이미 같은 반 친구들과는 더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무심코 끄적여 제출했다가 덜컥 서울시의회 의장상을 수상했던 과학 상상 글쓰기에서 지금의 사물인터넷 기반의 주거 시스템과 자율 주행 기능을 갖춘 자동차들이 활보하는 교통 체계를 묘사해 낸 것을 보면 과연 천재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당시 매일 일기를 써서 제출했어야 했는데, 친구들이 일기 쓰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던 것과 달리 나에게 일기란 사춘기의 복잡한 감정을 오롯이 분출할 수 있는 비상구였을 뿐더러 가족 외에 유일하게 말이 통하던 외부 집단 사람 - 선생님과의 소중한 소통의 장이었다. 내 일기장에는 학교 운동장을 거닐며 문득 느꼈던 고독이란 감정에의 고찰과 더 날아갈 수 있는데 새장 속에 갇힌 새 마냥 학교에서 주변의 평균에 나를 맞춰야 하는 답답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존재와 사회,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서슬 퍼런 감성을 지닌 어린 시인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어린이다웠던 때는 피아노학원에 가는 길에 지나치는 가게에서 떡꼬치를 사먹을 때 뿐이었다.

그 가게에서는 잘 쪄낸 쌀떡과 어묵을 번갈아 꽂은 꼬치에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 매콤하게 만든 소스를 발라서 시원한 우유 소프트아이스크림과 함께 팔았다. 오백원이면 떡꼬치 두 개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을 수 있어 나는 늘 오백원짜리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신나게 가게로 향하곤 했다. 또래보다 심하게 조숙한 딸이 늘 걱정이었던 엄마는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양 손에 떡꼬치와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신나게 뛰어오는 나를 보며 한시름 놓으셨다고 한다. 그제서야 내가 '보통'의 초등학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누구나 과거의 언젠가 자신만의 찬란한 전성기가 있었듯이 나의 천재성도 시간이 지나며 빛이 바랬다.

중학생이 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홀로 데미안을 읽으며 존재의 무게에 괴로워하는 외로운 어린이가 되기보다는 주변에 나를 맞추고 또래 집단 사이로 스며들어 교제하고 교류하는 편을 택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모를 법한 어려운 단어는 일부러 사용을 자제했고 아는 얘기가 나와도 다른 아이에게 아는 척 할 기회를 양보했으며 사색의 시간보다는 친구들과 PC통신이나 문자를 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워 갔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그렇게 나도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떡꼬치를 먹고 있는 뚱뚱한 초등학생들을 귀여워하는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 눈부셨고 찬란했던, 그러나 괴팍하고 독특했던 어린 내가 그립고 가엾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소중하고 특별했던 아이를 결국엔 잃어버린 자책감 때문일지도 혹은 그 때의 내가 영영 가질 수 없었던 저 뚱뚱한 초등학생들의 천진하고 해맑은 어린 시절에의 닿지 않을 그리움 때문일지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번엔 그 소중한 아이를 잃지 않고 지켜낼까 아니면 오히려 더 빨리 그 손을 놔 버리고 아이다운 웃음으로 어린 시절을 채워갈까. 그것은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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