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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Sep 20. 2020

내 소박한 인생의 육개장 사발면

기운 센 을지로입구 식탐러의 워크&푸드 로그

  우리가 사랑하는 인스턴트 식품 라면은 쉬이 어떤 라면이 최고 존엄이라 꼽기가 어렵다.

매콤한 라면 본연의 맛을 즐기고플 때는 신라면, 떡을 넣어 끓여야 할 때는 안성탕면, 계란을 푼 국물이 땡길 때는 진라면, 밥을 말아 먹고 싶다면 너구리 등 상황에 따라 각기 제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컵라면 중 무엇이 제일이냐 묻는다면 단연 으뜸은 육개장 사발면이다. (큰 것 말고 작은 것!)


  물론 컵라면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다양한 맛과 나름의 풍미를 갖추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컵라면은 육개장 사발면이다. 어릴 적 피겨스케이트를 배우러 다니면서 새벽 레슨 이후에 끓여 먹던 컵라면도,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갔을 때 실컷 물놀이를 마친 후 약속한 듯 꺼내던 컵라면도,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프던 고등학생 시절 야자 끝나고 집에 가던 길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함께 먹던 컵라면도 나는 늘 육개장 사발면이었다.


  육개장 사발면을 먹을 때는 마치 의식처럼 반드시 동그란 뚜껑을 반절씩 두 번 접어 작은 컵을 만든다.

정량보다 조금 적게 물을 붓고 역시 조리법에 적힌 시간보다 조금 빨리 뚜껑을 열어 아직은 살짝 꼬들한 면발을 한껏 덜어 내어 뚜껑으로 만든 컵에 듬뿍 담는다. 육개장 사발면 특유의 가느다란 면발에 국물이 잘 배어 있어 중간에 끊지 않고 후루룩 흡입하는 그 첫 맛이 나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만든다. 면을 먹고 나면 컵 바닥에 살짝 고인 국물을 바로 마셔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두 번째 젓가락 부터는 별미인 계란볼과 회오리 어묵을 면 위에 얹는다. 노란 계란볼에는 국물이 더 깊이 더 많이 배어 있어 고소하다. 역시 뚜껑으로 만든 컵에 면을 담고 이번에는 용기를 기울여 국물을 조금 더 컵에 따른다. 그새 첫 젓가락보다 조금 더 익은 면발에 자작한 국물이 또 새롭고 맛있다. 그 다음부터는 뚜껑컵을 버리고 두어 번 더 젓가락질을 하고 나면 어느새 육개장 사발면은 바닥을 드러낸다.




  어릴 적 나는 스무 살이 되면 다 큰 어른이 되어 대학에서 엄청난 학문을 익히면서 젊은이 다운 패기로 뭔가 혁신적이고 대단한 일들을 이뤄낼 거라고 생각했다. 매체를 통해 혹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십대 후반에서 스무 살 즈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고 하니, 나도 당연히 성공할 사람이고 그러면 스무 살 정도에는 이미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룬 인생이리라 생각했다.


  흡사 군대 가기 직전 학기 남자애 같은 학점 탓에 남들 4년 다니는 대학교를 5년이나 꼬박 다니고서야 나는 겨우 졸업을 했고, 돌이켜 보면 대학 생활 내내 내가 했던 거라곤 그 때 당시에는 참으로 찬란했던 연애가 다였다. 흔한 아르바이트며 학회 활동 한 번 하지 않고 5년을 줄기차게 잘 놀다가 졸업할 때가 되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남들은 이미 다 취업했을 즈음에 허겁지겁 아직 문이 닫히지 않은 회사들 중 하나를 골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입사를 하는 것으로 나의 찬란한 이십대가 거진 끝나 버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나는 그 때에도 여전히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이십대 때의 나는 팔랑팔랑 회사를 다니며 막연히 생각했다. 삼십대의 나는 카리스마 있는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모두가 붙잡고 만류하는데도 멋지게 사표를 내고 퇴사해서 어떤 다른 기발한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며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그게 어떤 일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뭔가 사회적으로 성공이라 불리울 수 있을 만한 성과를 거둔 멋진 삼십대가 되어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잠깐 사람 공부 하는 셈 치고 다니려던 회사를 십삼 년째 줄곧 다니면서 회사 일 외의 다른 시도는 저질 체력 탓에 꿈도 꾸지 못하며 늙고 지친 몸뚱이를 질질 끌고 오로지 주말만 바라보며 겨우 주5일을 버텨내는 그저 그런 회사원이다. 처음에는 기대했던 대로 성장하지 못한 지금의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고, 너무나도 당연히 성공을 꿈꿨던 어린 날의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고작 이런 어른이 되려고 살아가다니 스스로가 한심했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눈질하며 혼자서 초조해 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미안해졌다.

실체도 없는 성공의 허상에 사로잡혀 후회와 불만으로 하루 하루를 흘려 보내는 것이 아까워졌다.

매일 아침 성실히 일어나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해 나가는 스스로가 조금쯤은 기특해졌다.


  생각이 바뀌자 그저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던 회사 업무에도 재미가 붙었고 일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료들과의 시간 역시 소중해졌고 집에 오는 길에 구경하는 풍경도,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도, 나의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사랑스러웠다. 그간 끊임 없이 나를 속박해 오던 '성공한 삶' 에 대한 강박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종용하는 '생산적인 삶' 에의 강요를 끊어 내자 나는 비로소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모든 순간들이 내게는 하나같이 성공이며 누군가는 생산적인 삶을 살 때 나는 그저 소모적으로 살기로 하였다. 그것이 과연 내게 행복이기 때문에.


  때로는 거창하게 차려진 진수성찬보다 뜨거운 물을 끓여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육개장 사발면이 훨씬 맛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진리다. 나는 오늘 쨍한 가을 볕이 좋았고 코끝을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에 행복했으며 모처럼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점심이 만족스러웠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매일의 순간이, 이 소박한 인생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애틋하며 소중하다.


  나는 비로소 꿈꿨던 대로 성공한 삼십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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