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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Feb 24. 2021

불순분자의 영이네 꽁치김치찌개

기운 센 을지로입구 식탐러의 워크&푸드 로그

  요즘은 이태원도 예전같지 않다지만 라떼는 그래도 그 동네가 서울에서 제일 핫한 거리 중 하나였다. 메인 스트릿인 해밀턴 호텔 뒷골목부터 이태원 찜질방을 지나 언덕 길로 이어지는 구석 구석마다 라운지바며 클럽, 각종 술집이 즐비했고 동네 특성 때문인지 유난히 외국인과 교포 비중이 높아 독특한 이태원만의 바이브가 있었다.


  그 하고 많은 가게들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곳은 당시에는 아마도 이태원 유일의 소주 포차였을 영이네였다. 허름한 외관에 반전 없는 인테리어, 맵고 짜고 술을 부르는 스팸구이며 찌개류 등의 안주를 곁들여 소주나 온종일 홀짝대는 흔하디 흔한 소주집 영이네가 그 때는 뭐가 그리 좋았던지 이태원 어디에서 술을 마시든 n차 술자리의 마무리는 꼭 영이네였다.


  영이네의 시그니처 안주는 꽁치김치찌개다.

도저히 밥 없이는 못 먹을 것처럼 짜디짠 스팸계란후라이 한 접시에 꽁치김치찌개를 시켜 놓고 이미 얼큰하게 취한 채로 몇 병째인지도 모를 소주 뚜껑을 까드득 따서 잔을 부딪히는 그 순간이 그저 너무도 특별하고 유쾌하고 짜릿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심지어 나는 평소 특유의 비린맛 때문에 꽁치김치찌개엔 손도 못 대는 사람인데 왜 그 수많은 이태원의 밤들을 굳이 영이네 꽁치김치찌개와 함께 보냈었던 걸까.




  사실 영이네는 그냥 쓰레빠 끌고 집 앞에 나가면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아재 감성의 술집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태원에 도저히 있을법 하지 않은 곳이다. 나는 바로 이 포인트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잔뜩 차려입은 시대의 멋쟁이들이 핫하다고 소문난 이태원의 스팟들을 돌아다니며 한 잔에 3만원이 넘는 칵테일이며 위스키 보틀 따위를 마셔대고 음악에 심취한 듯 그루브를 타고 그러면서 은근슬쩍 노린듯 노리지 않은 듯 여자들과 스킨십에 성공하고 나아가서는 하룻밤 여흥을 즐기는 꼴을, 이태원이라는 동네에서 유난히 이질적이었던 영이네 2층 창가에서 내려다 보며 비웃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귀엽고 비뚤어진 마음인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늘 얼마쯤 뒤틀린 시선과 배배 꼬인 심사로 표리부동하게 세상을 살아왔다.

초등학생 때는 나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미성숙한 동급생들을 무시하며 나 홀로 고고하게 잘난 맛에 고독을 즐기는 어린이로 포장했으나 사실상 반 친구들 전체를 초대하여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연다거나 같은 반 남자아이를 좋아하여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 바구니를 선물하는 등 친구들 무리를 기웃대며 어울릴 기회를 찾는 그야말로 동료집단과의 교류에 목마른 초딩이었다. 중학생 때는 괜한 반항심에 학원을 가는 대신 인터넷 동호회 활동을 하고 술을 마시거나 남자친구를 사귀는 등 일부러 일탈을 시도했지만 그래봤자 3년 내내 전교 1등에 학생회 임원을 도맡아 하며 매 전교 조회때마다 앞에 나가서 애국가며 교가 따위에 맞춰 지휘를 해야 하는 모범생일 뿐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굳이 외고에 진학해 놓고는 여긴 범생이들만 모인 재미없는 곳이라며 몇 달째 0교시를 째거나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를 불러 오토바이를 타고 하교하거나 야자 시간에 남자친구와 학교 창고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지만 누가 봐도 나는 외고생이었고 결국 외고생답게 수능 잘 보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으로 학창시절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남들과 똑같은 건 죽어도 싫고 남들이 하는 건 하나같이 하찮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길을 걸을 능력이나 배포는 부족하고 실제로도 딱히 크게 엇나가거나 비뚤어질 기회조차 없었던 가련한 불순분자 인생. 거창한 외도를 하진 못하지만 늘 아주 조금씩 현실을 비틀어 놓고는 그 한정된 범위 안에서의 일탈과 냉소를 즐기는 소심한 불순분자가 타고난 나의 성향이자 기질인 것. 매일같이 이태원 소방서 앞에서 만취 상태로 지인에게 발견되 문타로의 종업원과는 누나 동생 하는 사이로 지내던 주제에, 늘 마지막엔 굳이 잘 걷지도 못하는 취한 발걸음으로 가파른 2층 계단을 올라 영이네의 문을 열던 이유도 이 불순분자적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았을까.




  혹자는 나를 무조건 비판부터 앞서는 불평꾼이라 할 지도, 냉소적 염세주의자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먹지도 못하는 꽁치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소주를 홀짝이며 이태원 밤거리를 관망하는 비뚤어진 마음의 귀여운 불순분자가 오늘도 못내 사랑스럽다. 남한테 크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허세는 팍팍한 삶에 뿌리는 최소한의 양념 정도로 썩 괜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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