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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Jan 15. 2019

금요일 밤의 힐링푸드 김치삼겹살

기운 센 을지로입구 식탐러의 워크&푸드 로그

  원래는 회사에서 먹는 점심을 기록하기로 하고 시작한 브런치이지만 오늘은 도저히 금요일 밤을 만족스럽게 채워 준 김치삼겹살에 대해 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겠다.


  예로부터 한국인의 인기 저녁 외식 메뉴 TOP 5 안에는 무조건 들던 삼겹살, 어느 순간부터 삼겹살도 고급화와 다양화 추세에 발맞추어 오겹살이니 제주흑돈이니 볏짚삼겹살, 대패삼겹살, 떡삼겹살까지 정말 많은 종류로 variation되며 컨셉 있는 독특한 삼겹살 전문 식당들 역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물론 나도 핫하다는 삼겹살집에 가서 보암직도 먹음직도 한 고기를 즐기며 힙한 테이블 세팅을 인스타에 찍어 올려대는 재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가끔은 그 과도한 트렌디함이 삼겹살 본연의 매력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씩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베이직에 충실한 기본 삼겹살이 사무치게 땡기는 것은 당연 지사. 오돌뼈가 콕콕 박힌 너무 얇지도 너무 두껍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에 두부 한 조각, 팽이 버섯 한 줌, 싸구려 분홍햄 슬라이스 네 개 정도가 함께 제공되는 보통의 삼겹살은 잘 익은 김장 김치와 같이 돌판에 굽는다.


  첫 고기는 역시 상추쌈이다.

삼겹살 기름에 국산 마늘을 노릇하게 굽고 거의 웰던 느낌으로 익혀 낸 삼겹살 두 점을 상추에 올려 파채를 듬뿍 얹은 뒤 구운 마늘에 쌈장을 크게 찍어 곁들여 한 입 가득 쑤셔 넣으면 싱그러운 쌈채소와 매콤새콤한 파채, 짭쪼름한 쌈장 사이로 육즙 가득한 삼겹살과 부드러우면서 톡 쏘는 향긋한 마늘의 식감이 어우러져 절로 눈을 감고 음미하게 된다.


  상추쌈의 매력은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고기를 무한대로 먹어도 질리지 않게 해서 식욕의 연속성을 유지케 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삼겹살 즐기기 방법이자 기본 삼겹살의 백미는 역시 김치를 곁들이는 것. 돌판에 삼겹살을 올리면서부터 김치도 미리 함께 굽기 시작하는 것이 포인트로, 삼겹살에서 나온 고소한 기름이 김치에 잘 배어들어 마치 튀기듯 익혀진 김치는 짭쪼름하면서도 고소한 풍미를 가지게 된다. 삼겹살을 김치에 싸먹을 때에는 다른 어떤 것도 곁들이지 않고 오로지 고기와 김치만 즐겨야 본연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이 다음부터는 상추쌈과 김치쌈의 절대 질리지 않는 무한 루프다. 익힌 고기와 김치가 동나기 전에 다음 고기와 김치를 주문하는 것 또한 잊어서는 될 진리.




  지난 금요일은 회사의 정기 인사 발령이 있던 날이었다.

부서 이동이든 TFT 겸직 발령이든 거의 매해 발령지에 이름이 올랐던 나로서는 올해만큼은 좀 조용히 넘어가리라 믿고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올해도 나는 내 이름이 선명히 인쇄된 발령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심지어 기존에 맡고 있던 부서에 새로운 부서 2개가 흡수되어 업무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졌고, 기존에 이끌던 조직과 업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우리 회사의 업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업태의 신사업 - 정관까지 변경하는 - 을 런칭해야 하는 큰 과제를 맡게 되었다.


  물론 거의 창업 수준에 가까운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배울 것도 많고 스스로 발전하고 도약하는 기회라 여기고 감사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있기는 개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인지 나는 회사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일복 많고 관운 없는 스스로를 가장 많이 원망하며 멘붕에 빠져 하루를 보냈다. 심지어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리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 머리가 아프다가 마음이 쿵 하고 내려 앉으며 한없는 우울감에 빠져 들기에 심각한 건강 염려증을 앓고 있는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 증세가 공황 장애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이런 나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김치삼겹살이었다.

남들은 불금이다 주말 만세다 신나게 퇴근하는 퇴근길,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새끼  아니 송아지마냥  쳐진 어깨로 회사를 나섰다.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우울감과 무력감이 나를 지배한 찰나, 친구가 저녁을  먹겠냐고 카톡을 보내 왔다.  순간  하필 김치삼겹살이 생각났을까? 여하튼   처음으로 나는 삶의 의욕이라는 것을 잠깐 되찾고는 '김치삼겹살, 다른 비싼 고기 말고 왕십리 59똥돼지에서 김치삼겹살이 먹고싶어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필요없어' 라고 빠른 답장을 보냈다.


  그 다음은 예상하는 대로다.

허름하고 오래된 59똥돼지 식당에 철퍼덕 자리 잡고 주저 앉아 상추쌈-김치쌈의 무한 루프를 리듬 타듯 즐기며 나는 마치 마법처럼 공황 장애를 이겨냈다. 놀랍게도 새로운 업무에 대한 기대감이 샘솟듯 솟아 났고 잘할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무한대로 뻗어 나갔다. 스스로와 팀원들에 대한 믿음이 꽃피웠고 옆에 앉은 친구는 잘생겼으며 인생은 아름답고 김치삼겹살은 맛있었다.


  때로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나는 노여워 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주저 없이 김치삽결살을 먹을 것다. 금요일 밤의 진정한 힐링 푸드. 마법처럼 나의 영혼을 치유한 보통의 김치삼겹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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