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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Apr 16. 2022

인생 첫 성형 수술

마흔 앞두고 얼굴이 부서진 이야기

언젠가 성형 수술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앞트임이나 쌍꺼풀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눈이 작은 편은 아니지만 눈두덩이에 살이 많고 미간이 살짝 넓어 앞트임, 쌍꺼풀로 왠지 엄청난 미용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텔레비전에 나오는 큰 눈을 가진 예쁜 연예인들을 동경하기도 했고.


설마 인생 첫 성형 수술을 전신 마취로 대학 병원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안면부 광대 부위를 말이다.


1. 진단명 : 좌측 안와 하부, 상악, 그리고 절골(광대) 골절

한 마디로 얼굴 뼈가 박살이 난 거다.

원래부터 균형 감각이 좋지 않았던 지라 툭 하면 왼쪽으로 넘어지곤 했는데 희한하게도 넘어질 때마다 얼굴을 다쳤다.

그래도 명색이 여자앤데 차라리 팔이나 다리가 다치면 좀 좋아?

왜 매번 넘어질 때마다 얼굴부터 갖다 대는지, 안 그래도 손볼 곳 많은 얼굴에 바람 잘 날 없이 흉이 지고 멍이 드니 정말 속상하기 이를 데가 없다.

대학생 때는 아스팔트 바닥에 얼굴을 긁어 아직까지 코 밑에 켈로이드성 흉터가 남았고 작년엔 킥보드 사고로 왼쪽 얼굴 전체를 심하게 다쳐 한동안 피부과에 월급을 갖다 바치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간 요행히 뼈나 신경은 무사했었는데 이번엔 결국 운이 다했는지 뼈가 아예 부서져 버린 것.


2. 사고 경위

'부산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실족하여 넘어졌다' 가 사건의 공식 입장이지만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부산에서 넘어진 것인지 서울에 와서 넘어진 것인지 혹은 집 안에서 넘어진 것인지 말이다.

피투성이가 된, 그리고 구매 후 한 번 밖에 입지 못한 소중한 막스마라 코트가 거실에 널부러져 있었고 쓰고 나갔던 마스크 안쪽은 말라붙은 피딱지가 엉켜 검게 굳어 있었다.

코트 주머니에서 찾은 21:30 부산역 출발의 KTX 서울행 열차표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서울에 도착해서 서울역 계단에서 굴렀거나 혹은 노숙자와 시비가 붙어 얼굴을 한 대 맞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도 아니라면 집에까지 잘 와서 부츠를 벗다가 앞으로 고꾸라져 현관 앞 대리석에 얼굴을 갖다 박은 것일지도.

여전히 사고 경위는 오리무중이다.


3. 증상과 처치

아침에 눈을 뜨니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고 밤새 흘린 코피로 침대 시트가 젖어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어디에도 상처가 없는데 코피가 나고 멍이 들고 붓기가 심하니 덜컥 겁이 났다.

답답해 코를 풀자 핏덩이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면부 골절이 의심될 때는 절대로 코를 풀면 안 된다. 안압이 높아져 안구 함몰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괜스레 속도 메슥거리는 것 같고 갑자기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고 두통이 심해져 왔다.

혼자서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자니 잔소리가 두려웠다.

결국 119를 눌러 증상을 설명했고 15분만에 구급대원들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얼굴을 다쳤을 뿐 사지가 멀쩡했던 나는 왠지 내 발로 걸어가 구급차를 타는 것이 눈치가 보여 괜스레 아프지도 않은 다리를 절며 휠체어에 올라 탔다.

그러나 베테랑 구급대원 분들의 눈은 정확했고 내게 조용히 속삭이셨다.


"걸으실 수 있으면 차에 직접 타실게요."


흔들리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는데 난데 없이 구토 증세와 어지럼증이 심해져 왔다.

아무래도 멀미인 듯 했다.

내가 괴로워하자 구급대원은 코피가 멈췄으니 지금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집 근처 성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이 나을 거라는 의견을 전했다.

나는 죽을만큼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멀미가 가라앉을 때까지 한 시간 가량 안정을 취한 후 안과, 정형외과, 신경외과를 차례로 방문했다.

다행히 가장 걱정했던 안구는 정상, 팔이며 다리도 다친 데 없고 신경외과에서 CT를 찍어 보니 머리도 이상이 없었다.

치아 교정 중이라 교정 장치가 완충제 역할을 하여 천운으로 이도 상한 데가 없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신경외과 원장님은 꼰대라 해도 좋다며 잔소리를 늘어 놓으셨다.

본인이 이제껏 900명 가까이 머리를 열어 보았는데 얼굴을 이 정도 다쳤으면 머리도 원래 다치는 게 정상이라며, 넘어져서 머리 상해 죽는 사람이 한 둘인 줄 아냐며,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 다신 못 보고 끝인 거라며 조심하라고 당부에 또 당부를 하셨다.

예전 같으면 오지랖이라 생각해 기분 나빴을 법한 말들이 지금의 나에겐 위로가 되고 감사했다.

그간 마음 기댈 곳 없이 외롭고 지쳤던 내게 타인의 참견과 걱정이 간절했던 걸까?

정에 굶주린 스스로가 조금 딱해 피식 웃음이 났다.


4. 입원 : 중앙대학교병원 성형외과

골절 정도가 심해 3차 병원, 즉 대학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신경외과 원장님이 소견서를 써 주셨고 나는 주변의 가능한 모든 대학병원 성형외과에 진료 예약을 잡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런 종류의 골절은 사실 꽤 흔하다.

운동을 하거나 일상 생활을 하던 도중 부주의로 다치거나 상해 폭행, 또는 교통사고 등으로 안면부에 손상이 가는 일이 잦다고 한다.

인터넷에 '안면 골절' 또는 '안와 골절' 로 검색하면 꽤 많은 양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 의외로 수술 후기가 많지는 않고 대부분이 수술 예후에 관한 논문 위주라 공개된 논문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① 안면부 골절은 생각보다 흔하며 수술 케이스도 많아 집도의의 미세한 실력 차이를 따질 필요가 없다.

② 이 수술은 오히려 시기가 중요한데 다친 지 1주일 후~2주일 전 사이에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③ 안면부 골절 수술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 짓는 것은 수술 전의 상태로 얼마나 근접하여 회복시킬 수 있는지를 뜻하는 정복 정도다.

④ 수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회복 시 얼마나 관리를 잘 하느냐에 따라 예후가 달라진다. - 술, 담배, 격한 운동은 절대 금물이다.


나는 예약했던 병원들을 모두 취소하고 적시에 의료진 전체의 극진한 케어를 받으며 수술 및 회복을 진행할 수 있는 중앙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꽤 높은 분과 친분이 있는 터라 그 어렵다는 당일 외래도 잡을 수 있었고 바로 수술 날짜가 잡혀 입원실이 배정되었다.

수술 전 검사로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등을 차례로 마치고 입원 절차를 밟았다.

병원으로 오기 전 집에서 씻고 나오긴 했지만 정맥 주사 바늘을 꽂고 링거를 연결하기 전 양 손이 자유로울 때 다시 한 번 샤워하고 머리도 감아 두었다.

수술하고 나면 꽤 오래 씻지 못할 것 같아서였는데 결과적으로 굉장히 잘 한 선택이었다.

절약한답시고 호기롭게 6인실을 선택했던 나는 첫 날 밤 옆 침대 아주머니의 기운찬 코골이에 굴복하여 다음날 새벽 2인실로 병실을 옮겼다.


입원을 위한 준비물로 내가 챙겨 가 유용하게 사용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의류]

팬티 2장 : 어차피 수술 당일엔 아래 위 노브라에 노팬티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하루 이틀 정도는 팬티를 챙겨 입을 정신이 없으니 여벌 팬티는 2장 정도면 충분하고 브라는 필요 없다.

반팔티 1장 : 입고 갔던 옷 그대로 퇴원할 때 입으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옷은 필요 없고 혹여나 환자복 안에 뭔가를 받쳐 입고 싶다면 반팔티 하나 정도 챙기자.

가디건 : 병원 안 편의점을 갈 때나 잠시 바깥에 나갈 때 환자복 위에 걸칠 용도.

슬리퍼 : 정말 필수품이다. 쪼리나 뮬은 안되고 삼선 슬리퍼 정도면 충분하다. 혹시 못 챙겼더라도 병원 안 편의점에서 무조건 판매하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


[미용 도구]

물티슈 : 정말 유용하다. 수술 후 세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 내야 하고 그 외에도 주변부를 닦는 등 여기 저기 쓰일 일이 많아 꼭 챙겨야 한다.

세럼 미스트 : 어차피 세수를 할 수 없으니 물티슈로 닦아낸 후 미스트 한 번 뿌리면 그걸로 피부관리는 끝이다.

면봉 : 코피나 콧물이 날 때 콧구멍 속을 정리하기 용이하고 눈가에 뭔가가 묻었을 때도 면봉을 이용해 살살 닦아내면 편리하다.

수건 : 일반 타월 2장, 작은 페이스타월 2장 정도 있으면 충분하다.

세면도구 : 비누와 치약, 칫솔.

머리띠 : 3일 이상 감지 못해 떡진 머리를 조금이라도 커버하려면 머리띠가 필요하다. 어설프게 드라이 샴푸 따위를 썼다간 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볼캡 모자 : 같은 이유다. 떡진 머리로 병실 밖 출입을 하려거든 최소한의 예의로 모자를 착용해야 한다.


[기타 잡화]

2m 충전기 : 필수품이다. 병실에 있으면 정말 할 게 없다. 짧은 줄은 안되고 꼭 2m짜리여야 한다.

종이컵 : 수술 후 화장실까지 가지 않고 가글액을 뱉어 내거나 물을 마실 때 필요하다. 물론 병원 안 편의점에서 판매하지만 심부름을 해 줄 보호자가 따로 없다면 애초에 미리 챙겨가는 편이 현명하다.

쿠션 또는 베개 : 병원 침대는 불편하다. 수술 후에 침대를 세워서 앉은 자세로 자야 하는데 그 때 허리나 목 뒤에 받칠 쿠션 또는 베개가 있으면 한결 편하다. 발을 올려 놓을 쿠션을 추가로 가져가면 극락이다. 대충 가져간 수건을 말아서 사용해도 무방하긴 하다.


5. 수술 : 2시간짜리 수술이 5시간으로!

나의 경우 CT상으로 절골(광대), 상악 부분이 골절되었고 눈 아래 부분도 살짝 틀어져 있다고 했다.

흔한 케이스기도 하고 보통 2시간 정도 걸리는 수술이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소변줄까지 꽂고 5시간짜리 대수술을 하게 되었다.

바퀴 달린 베드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할 때까지는 별 생각 없이 드라마를 찍는 기분이었다.

약간의 대기 시간이 지난 후 수술실 침대로 옮겨졌고 마취 가스가 들어간다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이다.


회복실에서 눈을 뜬 뒤는 생지옥이었다.

단언컨대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고통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을 때는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 마취를 위한 삽관 때문에 발생하는 인후통이 고통스럽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는 수술 부위인 얼굴 전체에 무시무시한 고통이 느껴져 목구멍 따위 아플 새도 없었다.

타는 듯한 통증과 찌르는 듯한 격통에 딱 까무러치고만 싶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났다.

침대에 누워 엉엉 울었더니 사담을 나누고 있던 회복실 간호사 두 명 중 한 명이 굉장히 건성으로 "환자분, 우시면 안돼요~" 라고 말하곤 계속해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중앙대 병원에서의 모든 순간이 감사했지만 이 회복실 간호사들만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환자는 옆에서 아파서 죽어가는데 적어도 잡담을 하지는 않는 것이 바람직한 의료인의 자세 아닐까?


병실로 이동 후 집도의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이 오셔서 수술 경과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막상 얼굴을 열어 보니 생각보다 골절 정도가 심해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오버되었고, 얼굴을 열어 놓은 시간이 길어 부기가 오래 갈 거라고도 했다.

가능하면 입 안 절개로만 수술하고자 했으나 골절 부위가 넓어 눈 밑 절개를 병행했고, 이 부위는 미용 성형 시 주로 절개하는 부위라 아물면 크게 티가 나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골절 정복 시에는 최대한 녹는 뼈로만 고정을 하려고 했지만 안와 하부의 골절 정도가 너무 심해 어쩔 수 없이 티타늄 핀을 삽입했다는 설명도 들었다.

이 티타늄 핀은 특별히 염증이 생기거나 하지 않는 한 앞으로 평생 내 얼굴뼈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나이 마흔에 얼굴에 티타늄을 박다니, 내가 프랑켄슈타인도 아니고 정말 기가 막혔다.


6. 수술 후 관리와 퇴원 : 길고 긴 재활의 시작

수술 직후에는 세안도 불가하고 샤워나 머리 감기도 당연히 금지다.

나는 그야말로 거지꼴로 약 1주일 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수술 직후보다 그 다음날이 되자 얼굴이 더 많이, 더 흉하게 부어 올랐고 잘 때 수술 부위로 돌아 눕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컵을 얼굴에 붙이고 있었는데 평생을 살며 보아 온 나의 모든 모습 중 이 때가 가장 못생겼다.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거울을 보며 절망했다.

원래도 그닥 예쁜 얼굴은 아니었는데 정말 이대로 얼굴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같았다.


외과 수술을 하고 나면 당분간은 말 그대로 항생제에 절여진다고 보면 된다.

병실에 누워 있는 시간이 지루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견딜만 한 이유는 바로 낮잠이다.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나를 항생제로 절이기 위해 간호사가 방문하기 때문이다.

정맥 주사를 통해 들어오는 마취제와 항생제, 각종 수액들로 왼팔이 바빴고 베테랑 간호사님이 주사를 놔 줄 때는 너무나 편안하지만 어쩌다 실습 중인 간호과 학생이나 신입으로 보이는 분이 바늘을 잘못 찌르면 주사 부위가 붓고 멍이 들고 뻐근하니 아프다.


식사는 병원식을 묽은 미음류로 주문해 먹었는데, 동치미 국물에 미음과 호박죽이 번갈아 가며 나오고 부족한 영양소는 에너지 드링크로 보충했다.

사실 나는 조금 기대했었다.

수술 후에 어차피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으니 이번에 살이 좀 빠져서 예쁜 몸매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나의 식탐을 간과한 오판이었다.

우리 나라 편의점에는 씹지 않아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종류의 빵들이 많았다.

나는 우유를 잔뜩 사서 부드럽고 달콤한 빵을 적셔 꿀꺽 꿀꺽 넘겼고, 야무지게 사과를 갈아 먹거나 꿀을 잔뜩 탄 미숫가루를 마시며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키워 갔다.


일주일 후 퇴원을 했고 출근 역시 정상적으로 가능했다.

마스크 시대라 다행히 부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얼굴은 부어 있고 멍이 들어 있었다.

노랗고 푸르스름한 멍이 빠지는 데는 약 2주가 걸렸고, 얼굴 부기가 그래도 봐줄 만큼 빠지는 데는 한 달 이상이 걸렸다.

부기가 완전히 빠지는 데는 족히 반 년은 걸린다고 했고, 이 기간 동안 절대 금주 및 금연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얼굴에 혈류가 몰려 혈종이 생기지 않도록 무리한 운동은 피해야 하며 가능한 첫 한달 정도는 유동식을 권장한다고 했다.

나는 죽과 스프, 빵을 번갈아 먹으며 간식으로 오예스와 카스타드를 삼켜 댔고 의사 선생님의 지침에 따라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근 3년 중 최고의 몸무게를 기록했다.


수술 3주 후에는 외래 진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일반식이 가능하다고 했다.

여전히 얼굴에 찌르는 듯한 격통이 있고 수술 부위에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두개골 전체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또 수술한 쪽의 눈이 자주 시리고 건조하고 쉽게 피로해 지기도 했다.

교수님은 여기까지는 안면 골절 수술 이후 있을 법한 증상들이며 아직 수술 후 시간이 충분히 지나지 않았으므로 천천히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고 다음 외래는 3개월 후로 잡혔다.


지금까지도 얼굴에 간헐적인 통증이 있고 감각은 예전에 비해 약 60% 정도만 회복된 상태다.

부기 역시 여전히 남아 있어 마치 보톡스를 맞은 듯한 모양새다.

왼쪽으로는 누워 잘 수 없고 활짝 웃거나 입을 크게 벌리기가 어렵고 딱딱한 것은 당연히 씹지 못한다.

식사도 오른쪽으로만 하고 있어서 오른쪽 치아가 닳고 턱근육에 무리가 가는 듯한 것은 기분 탓이겠지.

하지만 수술 이후 내가 가장 힘든 건 하루 하루 나의 못생김과 싸우는 것이다.

일단 얼굴의 생김새가 수술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왼쪽 얼굴이 무너져 흘러 내리는 듯 보이고 눈 밑 절개 흉터도 생각보다 티가 많이 난다.

신경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감각이 둔한 왼쪽으로는 입꼬리도 잘 올라가지 않아 웃으면 무조건 썩소가 되는 것은 물론 얼굴의 비대칭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수술 이후 움직임 없이 식욕만 증가해서 몸이 날로 뚱뚱해진 탓에 옷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그 날 넘어져 죽지 않은 것,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도 안구와 턱과 치아가 멀쩡한 것, 좋은 의료진을 만나 제 때에 수술을 할 수 있었던 것, 평소 보험을 잘 들어둔 덕에 수술비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것까지 모두 감사할 일이다.

이번 기회에 나에게 문제만 가져다 주었던 술을 끊을 수 있게 된 것 역시 감사하다.

아니,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는 사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작년, 심한 정신적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수 차례 있었고 무시무시한 일을 당해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어쩌면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제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하루 하루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으며 행복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상황에 감사하다.

나는 더 이상 내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 어떤 일도 내가 겪어내야 했던 지난 1년의 고통보다 더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그 무섭고 끔찍한 상황과 사람에게서도 결국 벗어나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면 골절이라는 어찌 보면 큰 사고도 그 별의 별 일들을 겪어 낸 나에겐 그저 해프닝일 뿐이다.

이제 내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나는 지난 고통의 기억을 딛고 일어나 의연하게 이겨내고 회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결국 나의 기나 긴 재활의 여정이며 너무 많이 다친 내가 천천히 회복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감사로 채우기로 했다.

못생김과 싸우다 지치면 그 때 가서 진짜로 성형이라도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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