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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Nov 28. 2021

삶이 버거울 때는 코인으로 가라

가상화폐를 얘기하는  아니다.

가뜩이나 삶이 버거운데 코인까지 하다가는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레버리지로 코인을 하는 우를 범했다가는 하루하루 불안증이 도져 일상 생활이 불가한 수준에 이르기 쉽다.

내 이야기는 아니다.


코인으로 많은 이들이 차디찬 한강물에 뛰어 들었다지만 그들이 단지 돈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돈이 아니어도 삶이 피폐하고 버거울 이유는 너무 많은데 거기에 재산의 탕진 또는 부채의 증식이라는 불운이 더해져 자살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리라.


사실 인생 역경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

내가 겪고 있는 불행이 남들의 그것보다 크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함의 발현이며 같은 이치로 남의 불운이 나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 폄훼하는 것도 무지와 몰이해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간사하고 얄팍하다.

혼자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나의 불안을 남에게 털어놓으면 위로 또는 평가를 받게 되는데 진심이든 아니든 위로는 휘발성이며 평가는 건방지다.

최악의 경우 위로의 가면 뒤에 값싼 동정과 위선적 자위가 숨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네들을 원망할 이유는 없다.

위로든 평가든 필요한 사람이 먼저 손 내민 것이니 그야말로 mea culpa.

그 누구를 탓하리오.


그래서 삶이 버거울 때는 그저 조용히 지갑이나 챙겨들고 코인으로 가면 된다.

코인은 을지로입구역에 있는 오래된 커피숍이다.

카페라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카페라는 단어가 품기엔 이 공간이 갖는 의미가 너무 크고 깊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만 같은 외관과 인테리어지만 가구며 바닥 등의 유지 관리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

장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신중히 음료를 만드는 주방 직원도 그렇고 요즘 카페들과 달리 테이블로 서빙하고 후불로 결제를 받는 방식에 유니폼을 입고 필요 이상으로 정중하지만 필요한 대화 외엔 하지 않는 서비스 마인드까지, 여튼 코인은 특별하다.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비즈니스 구역인 을지로는 마치 딴 세상인 양 오후의 햇살이 통창을 통해 가만히 들어오는 코인은 정적이고 평화롭다.

잘 관리된 꽃무늬 패브릭 소파에 몸을 파묻고 빛에 비쳐 공중을 떠다니는 먼지를 관찰하거나 깨끗하지만 간혹 삐걱대는 나무 바닥 소리에 귀 기울이자면 내가 지금 힘들어하는 문제가 과연 인생에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느긋한 생각이 든다.

쫓기든 불안하게 입구를 열고 계단을 오르던 때와 달리 한껏 태연해진 마음으로 아이스 커피나 달디 단 파르페를 즐긴다.

2층 한 켠에 마련된 흡연실에서 라이터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성냥으로 불을 당겨 담배 한 개비까지 맛있게 피우고 나면 당최 좀 전에 무슨 고민을 했었는지조차 잊기도 한다.


그러니 괜히 엄동설한에 한강에 뛰어드는 것보다야 코인으로 가는 것이 옳다.

그 평화로운 이세계에서 잠시나마 신선놀음을 하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가라앉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가만히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위로받는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 내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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