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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버리지 못 하는 것들을 비우며

by 흔한사람

밝은 해가 내려다 보는 동안엔

나는 내가 보이지 않아요.

모든 숨결들이 밝게 빛나 보이는데

나만은 해가 내려봐 주지 않아요.


어두운 밤이 가만히 내려와

제각기 제 색과 제 모습, 제 자리를 찾아가면

텅빈 조용한 내 방안에

우두커니 숨 쉬고 있는 내가 느껴져요.

내 색은 무엇이며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이고,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밤 또한 나를 가려주지 않아요.

내가 삼켜지는 걸 조용히 기다릴 뿐.


차라리 이런 내가 어디에도 없었다면,

그렇게 된다면 괜찮을까요.


안녕-

안녕-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꼭 내일 또 볼 것처럼

아무렇지않게 조용히 사라지고 싶어요.


안녕, 잘있어-


불쑥 말해봐요.

아, 오늘도 어제와 같이 사라지지 못 했어요.


내일은 그럴 수 있을까요.


안녕, 잘 있어-


혹시 다음이 있다면

누군가 날 마중나와 내게도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별일 아닌듯 수고했다며 안아줄까요.

안길 수 있을까요.


안녕, 어서와-


이제 괜찮아.

정말 괜찮아.


혼자서 되뇌었던 괜찮단 말 조각이 아니라

정말 난 괜찮아 질 수 있을까요.


내가 기억하던 그 따뜻한 눈빛과 힘으로 안아줄까요.

그리웠다고 고생했다고 괜찮다고 다독이며 재워줄까요.

마음껏 온 힘을 다해 응석부리며 긴 잠 청할 수 있을까요.


깨어있을 때도

꿈에서 조차도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자리와 때를 찾고 있어요.

발이 없는 꿈에서조차 방황하고

나 외엔 없는 꿈에서조차 스스로 상처를 만드는 걸 되풀이하고 있어요.


너무 망가져 버려서

이젠 정말 긴 휴가가 필요해요.

가는 길만 알면 되는 그런 여행이 필요해요.


미안해요.

힘내지 못 해서,

결국 이렇게 다 무너질 거면서

할 수 있는 척 해와서 미안해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사라질 수만 있다면,

나 같은 것 때문에 상처받을

나와 크게 다를 것 없이 가여운 내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상처하나 주지 않고 조용히 떠날 수 있다면.


그냥 날 내버려 둬줘요.

그냥 날 버리고 떠나줘요.

난 버려져도 괜찮아요.

나말고 다른 사람으로 괜찮아져도 난 괜찮아요.


이젠 정말 벅차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숨는 것 뿐이에요.


겁쟁이가 되어버려서 미안해요.

약속하지 못 해서, 무례해서 미안해요.


이 인사가 끝이 되길 바라며,

내일 또 인사할께요.



안녕,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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