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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사람 Jun 09. 2017

지워주세요.

2050년 보통의 질병






2050년

더이상 육체의 질병이나 고통따위는 무서울 것이 없는 완전한 인류가 된 지금,

가장 무섭고 고통스러운 질병은 마음과 기억에 남는 상처가 된다.


빨리 지워주세요.
선생님, 깨끗하게 부탁드립니다.
저기 다음 약속이 있는데, 지우는데 얼마나 걸리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간 연인과의

깊게 각인된 연애시절과 후유증을 통째로 말끔히 지워버리고
없었던 일로 만들기 위해, 새로 시작하기 위해 오는 병원.


내원하는 환자중에 가장 절망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가장 소극적인 처방을 원하는 한 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일부분의 기억, 사소한 기분들을 지워달라고 종종 방문하는 환자였다.

궁금해 할 필요도 간섭할 필요도 없는 보통의 처방이면 그만이지만,

유독 자주 방문하여 작은 기억들을 한두개씩 지워달라고 하는 그녀가 이상해서 의사는 물었다.


왜 모두 지우지 않고, 번거롭게 하나씩 지우러 오시나요?


그녀는 질문이란걸 하는 의사에게 놀란듯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가,

이내 가늘어진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그를 지우고 싶은 게 아니에요. 계속 그를 처음과 같이 사랑하고 싶어요.
우리둘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쌓여가는 나쁜 기억들만 지워내면,
어떻게든 계속 그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로 내원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퇴원한다.


의사는 매일 수십번씩 반복되는 보통의 진료도,
처절하다 못 해 미련한 그녀도,

기계처럼 무뎌진 자신의 모습까지도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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