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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사람 Oct 16. 2019

'니가 차라리 못 돼 처먹었으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인 건 알아, 미안해.




내가 좀 가까워진 사람이랑 대화를 하게 되면서

같은 레파토리의 고통들을 읊조리다 또 같은 지점쯤에서 결국 혼자 숨이 멎을 것 처럼 힘들어하거나

얼굴이 떨리거나, 입이 안 움직여져 발음이 부정확해지고 말을 더듬는 동안

들었던 말이 있다.


'어우! 니가 차라리 못 돼 처먹었으면

덜 힘들텐데, 진짜...'


크고 작은 못 돼 처먹은 이기심과 비뚤어진 욕망, 폭력에 놀아나

법적 가해자 없는 밤이 계속되어도 혼자 상처투성이를 벗어나지 못 하는 내가 답답할테지.


누구 하나 또렷이 악당이면서 법으로 죄를 물을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들의 사회적 힘과 돈과 뻔뻔하고 당당한 행동에 전적으로 불리하니까.

증거를 찾아 증명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증거는 여기 숨쉬고 있는 나인데, 나는 증거가 아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07583.html




내가 휘둘릴때마다 덜 아프고 덜 힘드려면,

그들보다 돈많고 힘있고 뻔뻔한 악당이 되어야 하는데..

애초에 그런 것들이 부족해서 가만히 당하고 숨죽일 수 밖에 없던 내게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을 담아

'니가 더'라고 말을 할 때면 분에 못 이겨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어쩐지 내게도 상처가 된다.


마치 내가 나약하고 피해자되기 딱 좋고 한심한 상태라고 책임을 묻는 것 같아서.

그런 의도가 아닌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고 가까운 지인을 미워하거나 슬퍼하거나 섭섭해하지도 않지만,

이런 사소한 대화와 위로속에서도 가해자없는 피해자 역할을 찾아가는 것 같아 스스로가 혐오스럽다.

나란 앤 내 주변인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 한심한 주변인인가..

주변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난 있는 그대로 맞이할 수 없는 오물이 되었다.

내 자신이 이미 정화가 불가능한 폐기물 오염수이고 핀이 뽑힌 수류탄인데

감히 어떻게 제 발로 자처한 그런 환상속의 유니콘같은 그들을 내 곁에 둘 수 있을까.





내가 못 돼 처먹었으면

맞아. 사내스토킹 불륜권유 당하는 김에 나한테 권유하던

당치도 않는 책임직 냅다 받고, 돈도 냅다 받고, 사주려는 것 냅다 받고,

그렇게 당하지만 사회적 쓰레기 썅년이 되면 그만이었을 일이다.

누군가는 신나게 욕하지만,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당하는 거 역이용이라도 하지.


내가 못 돼 처먹었으면

가난한 장학생이라는 신분의 13살인 나를 단장실로 연습이 끝날때마다 불러

그 책상에 앉히고는 컴퓨터 게임을 시키고 내 맨발을 핥아 대며

'이게 다 아름이가 몸이 약하니까, 선생님이 건강하게 해주려고 마사지 해주는 거야'

라는 그 끈적하고 더러운 혀가 나온 입을 그대로 발로 걷어차고

어른들에게 알리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합창단 따위 그만둬버렸으면 됐을텐데.

가정폭력으로 매일 시끄럽던 집과 따돌림을 당하느라 몸도 마음도 쉴 곳 없던 내가 그 더러운 혀를 6개월이 넘도록 버티진 않았을텐데.


내가 못 돼 처먹었으면

내가 입사 면접을 보러갔다는 이유로 당시 동종업계에서 자명하던 커뮤니티에 

내 신상과 사진과 실명을 가지고 1년 가까이 조롱하고 희롱하며 좋아하던 사람들을 다 신고했을텐데.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음에 내가 직접 나서서 덤덤한 척 글쓰지 않았을텐데.

그들의 가해를 정당화시키는 빌미를 주지 않았을텐데. 

그랬으면 새로운 사람과 일할때마다, 혹시 이 사람도 거기에 있었을까 겁먹고 망상하지 않았을텐데.


내가 못 돼 처먹었으면

부모님도 없이 한달에 생활비 30만원 내외로 살던 우리 삼남매의 후원금과 받을 수 있는지도 몰랐던 아버지 연금을 6년 가까이 횡령하며 친딸처럼 예뻐한다고 강조하고 날 계속 쉬지않고 일하게 하던 고모부에게 욕 한마디라도 했을텐데. 횡령당한 1억이 넘는 돈을 악착같이 소송에 재소송을 걸어 다 받아내거나 사회적 죗값이라도 물게 했을텐데.





내가 못 돼 처먹었으면

아득바득 이를 갈며 어떻게든 좀 더 사람처럼 살려고 했을텐데.

그 시절의 나 같은 믿고 밥 한끼 편하게 먹여줄 어른 하나 없는 여자아이들의 대모가 되고싶다는 허망한 꿈을

내 방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꿈뻑이다 자책하고 울며 지치진 않을텐데.


내가 못 돼 처먹었으면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결혼했던 그가 날 배신하고 슬프게 만들었을때도

생판 모르는 내 백수남편의 내연녀, 썸녀에게 욕한바가지라도 하고 회사에라도 쫓아가 망신이라도 줬을텐데.

하다못해 그런 남편도 유일한 내 거지같은 일생의 남편이라고 소송따윈 생각도 못 하고

투잡까지 뛰며 벌었던 내가 물심양면 뒷바라지 하느라 돈 한 푼 없는 거지가 되어 혼자가 되진 않았을텐데.

그래도 끝에 끝자락까지 사랑만이라도 늘 곁에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

세상에 행운과 행복따위는 없고 불행과 폭력만 가득할지라도,

내가 내 없는 가난함까지 다 쏟아내어 사랑하면 어딘가에서 돌아올 줄 알았어.

어느 때엔가, 누군가, 어디선가 어여삐 여겨주며 내게 꽃 한송이라도 건네주지 않을까, 내심 꿈꿨어.

서른 두살이 되도록 치한과 스토커와 직장 상사의 조롱과 희롱만 받으며

꽃 한송이마저도 처와 딸이 있는 열 살은 연상인 상사라는 사람에게 받을 줄 몰랐어.


내가

못 돼 처먹었으면-

지금 이렇게 고작 이런 글자들로 그 어떤 가해자도 선명히 지칭하지 못 하고

내 스스로를 좀먹으며 고장나지도 않았을텐데.


이렇게 멍청한 내가

사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못 돼 처먹은게 아닐까.

스스로는 물론 주변까지 오염시킬 뿐이잖아.


그럴 것이,

잘 지내더라고 그들 모두.

내연녀는 어여쁜 아이 하나 더 낳고 이혼도 안 당하고 잘 살아,

부당권유에 불륜권유하던 상사는 대기업 핵심팀 리더라고 미디어를 여러번 장식하더라.

고모부는 대기업 정년퇴임에 딸들 대기업에 공공 세무팀으로 잘 보냈고 시집도 경찰한테 보내서

왜 우리는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바들바들 떨고 안면이 마비되가는 나를 여동생이 격려해주며 법원에 들어섰었는데, 그들은 우리집 현관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사위가 경찰이라며 으름장을 놓았잖아.

내 허리와 엄마의 젊음과 가족은 아빠가 죽기전에 고장내놨고,

그런 아빠는 엄마가 죽였고, 엄마는 경찰과 사회가 당연히 데려갔고, 

집도 금융권 부채도 기자에 경찰들도 미성년만 있던 우리집을 시도때도 없이 두들기고 전화를 걸며

바꿔줄 어른도 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나같은 건 길바닥에 나앉아봐야 된다고 했잖아.

아마 여전히 은행원으로 천천히 승진해서 잘 살겠지, 그 언니는.

나는 그 뒤로 정말 오갈 곳 없어서 동생들과 고아원가는구나, 삐뚤어진 흉한 허리로 몸이라도 팔며

머물 곳과 끼니를 동냥해야할까 당시엔 울 겨를도 없이 진지했거든.


내가

그냥 안 태어났다면

어쩌면 이 모든 불행과 가해들도 다 없던 일이 되지 않을까.


내가 절망에 허덕이고 응시할 곳을 잃어가고 목소리를 잃어가면서도

계속해서 다시 살려고 또 노력할때마다 얼마나 재밌었을까.


이 잠자리,

날개를 하나씩 천천히 떼어가며 구경하는 느낌일까.


그 많던 적을 수 없이 많은 당신들은 나를 기억하기라도 할까.

무슨 생각을 할까, 자책은 할까, 오히려 욕할까, 재밌던 시절일까.




Photo by Sasha Freemin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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