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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사람 Nov 25. 2019

Dear 나의 작은 소녀

혼자라고 느끼고 있을 모든 곳의 모든 소녀들에게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외모콤플렉스를 동반한 폭력, 그 외의 폭력(스토킹 등) 생존자들의 모임에 갔었고, 용기내어 한 발 내딛고 자리를 채웠던 곳에서 소소한 이벤트가 있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 외에 비슷한 문제로 지금 고통받고 있는 10대 소녀들을 위한 편지를 써주면, 주최자분께서 익명으로 소녀들에게 전달해 준다기에 부끄럽고 망설여지던 마음으로 오랜만에 펜을 쥐고 못난 글씨로 써내려갔던 편지가 아래였다.


이쯤엔 복합 신경계 지병인 섬유근통증후군때문에 원래도 엉망인 글자가 더 끔찍해져서 내 편지를 받을 소녀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자신이 썼던 편지를 기억해주면 좋겠다하여 저장했었다.


그리고 제각기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거쳤거나 여전히 갇혀서 혼란스러워하는 법적 어른임에도 편지를 읽을 10대의 어떤 소녀를 위해 어느새 집중하고 조심스런 응원과 진심어린 기도를 담아내려가는 사각사각 소리만 가득하다 꽤 시간이 흐른 후 멎어갔다.


모두가 앞으로 더 먼 길을 살아가야할 10대 소녀에게 과연 나 같은 것이 좋은 말과 격려를 했을 것인지,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걱정과 묘한 설렘으로 주최자를 바라볼 때 그녀가 말했다.


사실 이 편지들은 여기 오신 분들에게 섞어서 돌아갈 편지에요.


모두는 깜짝 놀랐고, 누군가 부끄러워할까 분명 낯설터인데 애틋하고 꿈같은 만남이 끝난 후 제각기의 삶으로 돌아가 저마다 편지들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우연히 불안가득한 걱정과 묘한 기대감을 안고 주저하며 이뤄진 초면 가득한 만남에서 모두는 서로를 알고 있는 옆집의 작은 소녀들이었다.


조심스레 만남의 장소에 문을 열었던 다 큰 성인 여성들안에 저마다 혼자서 열심히 지켜온 작은 소녀들을 품고 있었고, 우리는 스스로조차 안아주기 어려웠음에도 서로를 안는 법을 알 수 있었다.


모든 크고 작은 소녀들이

오래오래 적당한 자연의 바람에만 흔들리며

더 화려하고 튼튼하고 영롱하고 우직하게 그 자리에서 빛날 수 있기를 그저 소원하고 바라며.


고마워요 모두,

여기 살아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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