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 속에 쓰러지지 않는 유연함을 위해
“기질”은 타고난 것이며
“성격”은 변화나 발전/퇴화가 가능한 것이다.
기질은 선천적으로 내 안에 쥐고 절대 놓지 않을 성분인 것이고, 성격이란 건 본인의 기질 위의 노력과 주변의 환경, 과정과 결과가 작용하여 완성된다.
대부분의 결과들은 절대평가가 존재하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내 기질과 성격이 잘 연결된 삶에 놓였거나 만들어진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으니까.
절대평가라는 딱 떨어지는 쾌감 나도 좋아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결과를 정의해 버리면 통제할 수 없는 작은 세상에 갇힌 이들에겐 너무 야속하잖아.
0은 시작하기 좋은 백지도 되고 점 하나 찍기조차 두려운 고독도 된다.
1 또한 +1의 채움과 -1의 비움에 다 같은 양의 연료와 시간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과 과학, 시대가 만든 전자제품조차도 품목과 크기 브랜드 시기별로 다른데 사람은 어떻겠는가.
악조건이 많은 상황이라면 그 과정과 결과에 맞는 성격이 자리 잡게 되지만
어떠한 기질과 성격을 가졌든 간에 냉정하게 살펴보아도 분명 좋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본인에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또한 자신을 향한 사랑이고 다정함이다.
누구에게나 본인을 지필 따뜻한 열정이 필요한 이유는
평생 악조건 속에만 놓일리는 없는데
지난 일이나 기질 때문에 악수를 두거나 소극적인 게 고착화되면 좋은 기회가 드물게 가까워져도 학습의 결과로 흘러 지나가게 만들어버린다. 본인에게 최고여야 할 사람이 본인에게조차 별로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타고난 가족운이 객관적으로 약했던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더욱 기적을 갈망하면서도 기회를 놓치기 쉬운 어른이 된다. 내가 가족운이 약했다면 잊지 말아야 할 것, 나 자신 역시 나의 평생 가족이다.
배는 작고 낡았으며 풍향이 별로에 파도와 암초가 넘쳤다 한들 내 배의 항해사는 늘 본인이다.
별로였던 적이 있다 해도 이미 지난 일은 지난 일
평생 만날 크고 작은 실패들에 대비해 배움을 기억하고 다음을 격려해야 한다. 내 마음이 얼마나 많이 다쳤겠는가.
때로 흥미로울 여생이 없다 여겨져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세상 유일한 불변의 정답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내린 그 결론에 다시 토를 단다.
그렇게 열심히 생각한다는 건 그만큼 이상이 높은 것이기에 타이밍과 도달하는 시간이 다를 뿐이라고.
결국엔 도달하거나 근처에 다다를 것이다. 물론 전원이 있다면 전원을 켜고, 페달이 없으면 달아서라도 밟아야겠고, 그도 안 되면 한 발 한 발이 시작이겠지?
그 반복되는 시간과 일상 속에
사금처럼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다.
쉬어가는 날엔 잘 쉬게 해 주고
바삐 뭐든 한 날엔 스스로의 궁둥이 잘 두들겨주기
과거보다 나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착각하고 사는 게 낫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오늘의 배를 띄우기조차 어려우니까.
글자는 분명 절대적인 형태와 법칙 읽는 법등이 정해진 공통 안인데
자신에게 주는 말과 글은 의도와 마음이라는 마법이 깃들어 있다.
+ 아주 가까운 사람끼리도 상호작용 또는 단방향 작용을 한다.
기왕이면 다정하고 효과적인 마법을 걸어본다.
내가 나한테만 괜찮아도 내 주변에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애초에 이런 걸 고민하는 당신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되었더라도 분명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우선 스스로에게 더 좋은 사람, 가족, 친구, 연인이기를.
너무 오랜만에 와서 딱딱한 혼잣말만 하고 발행 버튼을 누른 것 같아서 소소하게 안부를 더해봅니다.
제가 고르는 단어나 하는 말과 생각이 다소 뻣뻣하더라도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괜찮은 마법이 깃들길 바라고 있어요. 아, 객관적으로 저는 요즘 꽤 잘 지냅니다.
3~5시간의 긴 산책을 정말 좋아해요.
산책때마다 맘에 드는 어떤 것들, 시력이 올라갔는지 선명하게 담기는 풍경을 볼때마다 꼭 어디 올리기를 위해서라기보단 저장하는 행위로써 내 기분의 만족을 한 번 더 곱씹으며 즐겨요.
행복을 느끼는 비용이 물질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적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는 꽤 잘 지내거든요.
하지만 때가 되면 여러모로 큰 비용을 들여서라도
더 화려하게 행복할 줄 아는 사람도 되어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