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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존재 Mar 03. 2016

아무나 만나지 않았다

독신주의자 결혼하다

나는 남편과 2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가까운 친구들은 많이 놀라워했다.

홀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거라는 생각이 확고했고 떠벌리고 다녔다. 

절친들만 아는 내가 자기 삶에 들어오는 사람을 얼마나 예민하고 깐깐하게 따져 보는지 알기에

당연히 혼자 살거라 생각했다.


또 부모님의 불행한 생활과 그에 따른 삶의 우울이 무엇인지 너무 일찍 알게 되어 

내가 지속적으로 친구들의 결혼상담이건 내 연애사에서 결혼에 대해 쏟아 놓은 부정적인 멘트 역시 수도 없었다.


헐,  왜?


결혼 소식을 들은 오랜 친구들의 단골 질문이었다.


딱 하나를 꼬집긴 어렵지만 여러 요소를 종합해 보니, 

이 사람과 함께라면 결혼 전보다 더욱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행복해 질 것 같았다.


소탈한가?

처음 만난 건 외국어 스터디에서였다. 나이가 비슷했고 직장인이고, 대학원 다니면서 고생 좀 해본 적이 있는 공통분모가 있어 말을 텄다. 지금의 남편은 내게 솔직하게, 연애 경험이 없고 내성적이며 좋아하는 것도 잘 하는 것도 아직 찾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찾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늘 자신을 120% 어필하는 남자들만 봐 온 내게 그의 솔직함은 싱그러웠다.


검소한가?

연애를 하는 동안 계산이 정확하고 허세가 없었다. 밥을 사면 내가 커피를 사고, 내가 밥을 사면 그가 커피를 샀다. 누가 돈을 쓰던 과소비를 매우 싫어 했다. 가까운 거리는 운동도 할 겸 걸어다니고 싶어 했고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교보문고에서  다 읽고 나왔다. 당시 나는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별로 안 드는 연애라 부담이 적어 지속가능했다. 그가 그렇게 철저하게 돈을 아낀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소비를 최소한으로 하고 여행 등 자신이 좋아하고 필요한 곳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스타일이었다.


정성의 가치를 아는가?

100일 때는 그는 내게 나를 만날 때마다 쓴 일기를 건냈고, 프로포즈를 할 때는 내 얼굴을 그려 주었다. 선물은 무릇 정성스러워야 한다는 그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 그는 글을 참 잘 썼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피아노와 비올라도 잘 다뤘다. 그가 종종 드러내는 정성을 통해 클래식을 좋아하고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예술계열을 전공한 나와 그가 좋아하는 연결고를 점점 더 많이 찾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와 공유하는 것이 즐거웠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만나는 동안 내가 아는 한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모아둔 돈이 없어 결혼을 망설일 때, 부모님이 딱 한번만 선을 보라고 애걸복걸 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 자리에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말까지 했다. 당시에는 매우 섭섭했지만 그런 꾸밈과 거짓 없음이 2년이라는 만남 동안 깊은 신뢰감이 형성되었다.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가?

감정기복이 있던 나와 달리 돌부처 같았다. 내가 짜증을 내도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끝까지 들어 주고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전달했다. 화가 난 나를 이토록 차분히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세히 알고 보니 그는 늘 참고 누군가를 이해시키면서 모나지 않는 성품으로 주변에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그런 절제된 삶으로 어느정도 지쳐있기도 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바로는 다혈질에 직설적인 내 성품을 가라앉히는 상황이 가끔 피곤했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속시원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 좋았다고 했다.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서로 부족한 면을 갖고 있어 꿍짝이 잘 맞는 편이었다.


물질적으로 상대방에게 바라지 않는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몇 차례 큰 위기가 있었다. 결혼 준비과정에서 생각보다 친정과 시댁의 격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집은 간소하게 내가 모을 수 있는 자금 안에서 결혼하길 원했던 것에 반해 시댁은 최대한 좋은 것으로 준비해서 결혼하고 싶어했다. 그 사이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남편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시부모님을 잘 설득했다. 물질적으로 상대방의 역량에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성향은 결혼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기 철학이나 신념이 있는가?

연애를 할때부터 결혼 후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결혼을 통해 자식의 행보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닌 부부의 삶이 가장 중요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신념에 따라, 나는 결혼 후  좀 더 안정적으로 나에 대해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급함이 줄어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



첫 만남에 종소리가 들렸다, 처음부터 이사람이다 싶어서 결혼했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처음 밥 먹기로 한 날도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다 카톡으로 다퉜고, 이 만남이 마지막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유종의 미를 찐하게 남기기 위해 대낮에 전통주점에 들어가 5,000원짜리 청국장을 먹기도 했다.


연애를 하는 내내 그와의 만남으로 나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인지, 나라는 존재가 상대방의 행복지수를 높힐수 있을 것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만났다. 결혼을 고민하며 내게 속마음을 털어 놓는 지인들에게 나는 이사람과 있으면 내가 더 행복할 것인지,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인지, 나의 행복과 자기애가 증가될 수록 그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관계인지 물어본다.


이와 함께, 연애 시 남자친구의 습관 태도 행동 가치관에 따라 그려지는 미래를 상상해 보길 권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는지, 나의 행복이 그의 행복과도 맞 닿아 있다면 결혼을 생각해도 좋은 사람이다.


외로워서 또는 경험을 쌓기 위해 다양하게 만나 보라는 조언,

쉽게 덜컥 만남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 나로써는 권하지 않고 싶다.

 

연애나 결혼이건 내 인생이라는 한 편에 속하는 일부의 에피소드이고 이벤트다. 

러닝타임을 가늠할 수 없는 소중한 내 삶의 시간을 함부로 쓰고 싶지 않다. 

깐깐하게 따져보고 두드려 보며 관계를 맺고 함께 하고 싶다.


앞으로도 

내 행복과 상대방의 행복이 부합하는지 깐깐하게 스스로 묻고 따져가며 

한 인연 한 인연을 만나다 보면 더 많이 행복하고 더 좋은 사람과 함께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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