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존재 Feb 19. 2016

맞벌이 부부의 경제권 쟁탈전 ing

1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깊은 빡침

우리 부부는 1년에 한번 꼴로 경제권에 대한 다툼이 있다. 내 전적은 1무 3패.

우리 부부의 경제권 상황을 요약하면, 남편과 나는 맞벌이를 하고 돈 관리는 각자, 아파트 관리비는 남편이 나머지 생활비는 내가 부담한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고 나는 중소기업을 다니며, 나는 남편의 급여를 정확히 모르고, 궁금할 때는 신문이나 인터넷으로 짐작한다.

현재 진행 중인 4년 차 어느 부부의 경제권 쟁탈전에 대한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깊은 빡침


 

#0 라운드 

여기 좀 비싼 것 같아.. 건너편 지하 대형 마트로 가자.

연애 초, 처음 남이섬으로 놀러 가기 직전 주전부리를 하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콜라를 집는 나를 뒤 따라와서 콜라 가격을 확인하더니, 합리적이지 않다며 콜라를 넌지시 가져가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하 대형 마트로 향했다. X마트에서도 콜라와 과자 한봉지를 집는 나에게 더 사는 건 과욕이라며 계산대로 직진하던 남편.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으나 그간 친정아버지의 무분별한 소비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자랐던 터라 경제관념이 있는  보려고 노력했다.


이후에도 짜장면 짬뽕에 절대 탕수육 금지, 현장 진행되는 각종 이벤트 참석, 1만원 짜리 이상 밥을 먹는 건 사치, 세 정거장 미만 거리는 걸어가기, 50%이상 쿠폰 없이 문화생활 금지, 매주 읽은 이코노미스트 요점 리스닝, 각종 글로벌 경제 현황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과 토론 등 다양한 에피소드와 훈련을 받고 결혼을 준비했다.


상당히 피곤했지만 배울 점은 있고 사람이 착하니까, 결혼하면 경제적어려움으로 힘들게는 안 하겠지 위안하며 1패. 첫번째 게임에서 나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을까..?


#1 라운드  

내가 실물경제를 잘 아니까 내가 할게.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남편은 경제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대권에라도 출마한 것처럼 스무살부터 혼자서 학비 대고 월세 내고 나 먹여 살리느라 돈 무서운 줄 좀 알고.. 알뜰하지만 의식주에 대해 적당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미래 청사진을 그렸으나, 남편은 절래절래. 치열한 토론 끝, 어버버하고 기억력 안 좋은 나 같은 인물은 경제 논객 남편 앞에서 너덜너덜. 역시나, KO패로 쓰러지기 일보직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자린고비 남편 수중에 전 재산이 들어가면 과자 한 봉지 마음대로 못 먹는 삶이 이어질 것 같은 악몽.

감정적 폭발과 조용한 눈물을 반복하는 신들린 메소드 연기로 순도 200% 논리로 무장한 남편의 멘탈을 잠시 흔든 뒤, 겨우 내 통장 스스로 지키기에 성공! 우리는 남편이 관리비를 내고 내가 생활비를 내는 것으로 조율하며 무승부. 한동안 잠잠했다.


#2 라운드  

연말이 되자 또래의 친구 또는 동료 아줌마들과의 모임에서 반복해서 나온 부부의 상여금 또는 보너스에 대한 이야기들. 남편 월급을 모르는 나는 벙어리로 있다 돌아오기 일쑤였다. 남편 급여가 궁금해졌다. 월급이랑 상여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꽤 긴 침묵 끝에  

나는 당신 월급이 궁금하지 않아.

충격에 실언증 환자처럼 열흘 정도 지내다, 불편한 상황을 싫어하고 수다스럽고 인내심이 부족한 내가 다시금 포기하고 잊어버리며 2패.


 #3 라운드 

남자 돈 타쓰기 어디 쉬운 줄 아니? 

이사를 앞두고 이것저것 사라며 매주 나를 압박하던 시어머니에게 남편이 살림 사는 데 목 돈 쓰는 거 안좋아한다고 둘러댔더니 돌아온 어머니의 답변에 부글부글. 그간 직장 다니며 아등바등 사는 내 모습을 어머니 관점에서는 좀 한심스럽게 보아오던 차였다. 남편 흉보는 것 같고 되로 주고 말로 받을까봐, 월급도 모르고 생활비도 제가 내는 형편이라 못 사겠다고 말은 마음의 소리로만 남고, 결국 독박으로 이사 살림을 준비했다. 아! ㅠㅠ


이사 때 앙금이 채 가시기도 전 명절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풍문들로 나의 빡침은 다시 부활했다.

주부인 형님과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투잡까지 뛴 다는 우리와 또래가 비슷한 시댁 사촌형 내외, 명절 상여가 없거나 적어 와이프에게 미안하다는 사회 친구 동료들. 결혼한 친구, 동료 모두 맞벌이 하는 친구 하나 없는 주변도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면서 점점 더 회사에서 힘들어지는 상황과 겹쳐지면서...

 

2시간여의 반복된 남편과의 썰전. 급여 수준으로 자신을 평가 받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논리 앞에 할말을 잠시 잃었지만, 급여수준으로 평가받지 않는 대신 급여도 안 가르쳐 주는 치사한 사람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우리 부부는 삼일째 묵언수행 중이다. 8대 2로 거의 전담하던 집안일과 대화도 최소화 하며 세월이 흘러도 식지 않는 나의 마음을 돌아 보고 있다.




나는 왜 남편의 월급이 궁금할까? 왜 알려주지 않는 월급에 대해 굳이 알고 싶을까?

4년 동안 한결 같이 같은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때마다 자주 반복해서 내게 묻고 답을 찾아려

책도 찾아 보고 인터넷으로 찾아도 보고 온라인으로 고민도 상담해 보며 노력했다.


아직도 정확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남편에게는 말 못한 몇 가지 나에 대한 심리는 크게 다음과 같다. 남편이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에 대한 속상함이 가장 크고, 내 마음 은연중에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서 생활하며 힘들 때는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써도 살아 보고 싶은 기대심리도 있으며,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 타인과의 대화 속에 당당하게 합류하고 싶은 과시욕 등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내 안에 들어 있는 집안일과 생활비까지 다 내며 사서 식모 살이 한다는 삐뚤어진 손해 심리, 결혼 후 가사 일이나 집안일에 신경쓰는 비중이 늘고 연차가 쌓이면서 점점 안이하고 사회에서 도태되어 가고 있다는 스스로의 자격지심들이 결합된 것 같다.


나는 또 어느 순간 마음이 풀어졌다가 또 어느 순간 깊은 빡침을 느끼고 침묵하는 시간이 다시금 반복될 수 있겠지만, 내가 지금 당장할 수 있는 건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덜수 있도록 다시 나를 좀 더 단단히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나의 생활에 집중하고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앞으로의 시간들을 고민한다. 남편의 봉급 따위 완전히 잊고 스스로에게 온전히 더욱 집중하기 위해 좀 더 고삐를 조일 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