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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냄새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14

by 노루

집에서 한참 빵을 구웠던 적이 있다. 집에 있는 견과류를 모두 넣은 고소한 쿠키일 때도 있었고, 바나나를 해치우기 위한 브레드푸딩일 때도 있었다. 직접 반죽을 발효한 소시지빵일 때도 있었고, 크럼블을 올린 소보로빵이기도 했다. 카스타드크림을 넣었던 에그타르트일 때도, 애플파이일 때도 있었다. 집 냉장고에 있는 재료에 따라, 빵은 매번 달라졌고 나는 이런저런 빵을 구워 우유와 커피와 밥 대신 먹었다.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집에는 나밖에 없던 때였다. 엄마 아빠에게 구운 빵을 선보이고 같이 먹었다. 빵 냄새는 참 기가 막히게도 고소하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이상하게도 식빵이었다. 반죽에 품이 많이 들고, 툭하면 손목이 아파지는 식빵. 소금, 설탕, 이스트와 밀가루, 버터 조금으로 만들어지는 식빵. 왜 식빵이 가장 좋았느냐면 그 냄새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빵이었는데 희한하게 냄새는 제일 좋았다. 오븐이 돌아가는 동안 주방에서는 한없이 고소하고 담백한 냄새가 났다.


집 안이 포근한 밀가루와 버터 냄새로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한없이 들뜨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으며 주방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봉긋 올라온 식빵 반죽 덩어리를 오븐 유리 너머로 지켜보며, 반질반질해지는 식빵을 보고 있자면 온 마음이 가득 찼다. 나는 그럴 때 충만해졌다.


엄마가 베이킹을 배웠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나는 엄마가 베이킹 수업을 들을 동안 주민센터 근처에서 혼자 놀았다. 자주색 벽돌로 지어졌던 동네 센터에 쪼그려 앉아있다 보면 엄마가 금세 나왔다. 엄마는 집에서 곧잘 파운드케이크를 구웠다. 그럼 나는 주말에 엄마와 빵 부스러기를 챙겨 동네 공원으로 나갔다. 비둘기에게 밥을 주었고, 내 주변으로 새들이 날아들던 그날들이 기억난다. 버터향 가득했던 그 빵 부스러기를.


결혼하고 나서 혼자 집에 있는 재료들을 섞어 대강 빵을 만들면서 나는 그때를 기억한다. 작은 집에 빵냄새가 가득하던 그 어릴 적을 기억한다. 엄마는 건강한 빵을 만들어 주겠다고 설탕도 절반만 넣고 기름도 덜 넣었다. 밋밋하고 삼삼한 밀가루맛이라도 마냥 맛있었던 때가 있었다. 나도 엄마를 닮아 달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빵들만 만든다. 지금도 엄마 집에는 베이킹 도구가 남아있다. 나는 그 밋밋한 식빵을 굽는 냄새가, 그 식빵이 품은 보드라움이 그냥 엄마와 함께 덮었던 이불 같아서 좋다. 그래서 식빵 굽는 냄새만 나면 그렇게 마음이 포근하다. 그 포실포실한 결을 찢어 믹스커피를 찍어먹던, 정성 가득하던 그날들이 참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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