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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토스트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15

by 노루

계란빵이다. 우리 집에서 이 음식의 이름은 계란빵이었다. 엄마는 주로 주말 낮에 식빵을 계란에 적셔 기름 두른 팬에 부쳐 황설탕을 뿌려주었다. 내가 어릴 적 먹었던 프렌치토스트는 이랬다. 우리 집은 어쩐지 좀 더 건강(?)하려고 황설탕을 백설탕 대신 먹었다. 그 덕에 토스트를 먹으면 꽤 거칠고 굵직한 설탕 알갱이가 자각자각 씹혔다. 우리 집 프렌치토스트의 계란물에는 우유 없이 계란으로만 만들어져 가끔은 부침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 다소 거친 토스트를 먹으며 자라왔다.


이 계란에 적셔 구운 식빵의 이름이 프렌치토스트라는 것도, 계란물엔 생크림이나 우유를 섞어 부드럽게 한다는 것도 한참이나 커서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실과 교과서에 프렌치토스트의 조리법이 적혀있어서였다. 처음으로 혼자 만들어본 프렌치토스트는 엉망진창이었다. 슈퍼에서 사온 두툼한 식빵은 계란물에 젖어 흐물거렸고, 속까지 익지 않아 가운데가 축축했다. 성질 급하게 키워둔 불과 부족한 기름 때문이었다.


서른한 살이 된 지금의 나는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조금이나마 응용할 줄 아는 정도의 요리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계란물에 우유를 푸는 정도는 기본으로 하고 달달한 음식이 당길 때에는 계란물 자체에 설탕이나 알룰로스, 바닐라 익스트랙을 쪼록 넣는 편이다. 짭짤한 맛이 필요할 땐 소금으로만 간하고 바싹 구운 후 후추를 뿌려 맥주와 먹는다.


속까지 잘 익은 프렌치토스트는 익은 계란을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부드럽고 푹신한 빵을 먹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빵은 케이크시트 같기도 하고 일본식 계란찜 같기도 하다. 이가 닿는 대로 아무 저항 없이 무너지는 부드러움과 그 속에 가득 찬 계란의 맛. 그리고 주공아파트 4층 우리 집의 맛. 엄마의 맛. 내 입안을 채우고 배를 채우고 살을 찌웠던 그 맛.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떠올리자면 지금의 나는 그런 음식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로 부드러운 식감의 음식들을 좋아해 왔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다. 까칠하고 바삭하고 질긴 음식 대신 폭신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음식들을 좋아했다.

입안에 그대로 감싸지는 음식을 이와 혀로 뭉그러뜨리면 느껴지던 그 맛과 풍미를 좋아했다. 내 몸이 오롯이 그 맛으로 푸근하게 절여지는 그 감촉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렇게 성격도 무르고 줏대가 없나. 부들부들, 흐물흐물 그렇게.


오늘은 짭짤한 프렌치토스트가 당겨 냉동실에 있던 바게트를 우유 섞은 계란물에 한참 담갔다가 약한 불에 부쳐냈다. 계란인지 빵인지 모를 노란 것들을 다 먹어치우고 나니 더없이 만족스럽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요 며칠 날 서있던 마음이 다시 부들부들, 흐물흐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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