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13
나는 오이비누와 살구비누가 단종되면 정말 슬플 것이다. 그 어떤 비싸고 좋은 향수 냄새보다 오이비누 살구비누 냄새만 맡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부푼다. 그렇게 싱그럽고 풋풋한 냄새가 있을까, 그렇게나 첫사랑 같은 냄새가 있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오이비누 향이 나는 향수나 제품을 찾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오이비누와 살구비누는 아주 단단하고 거품도 없지만 그냥 그 냄새 하나로 다 용서가 되는 존재다. 나는 그 비누들을 비누의 역할이 아닌, 향을 내는 역할로 본다. 이상하게 그 비누들을 물묻힌 손에 쥐고 주무르고 있으면, 시골 볕 좋은 날이 떠오른다. 더운 여름이지만 흙과 나무로 지어져 어딘가 시원한 기운이 감도는 옛날 집이다. 햇빛이 잘 들어와 낮엔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집이다. 외출이 끝나면 그 집에 돌아와 손발을 씻고 누워 선풍기를 틀어놓고 낮잠에 빠진다. 매미 우는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이 풍경은 내 시골의 외갓집과 닮아있다.
오이비누가 더없이 싱그럽고 풋풋한 향이라면 살구비누는 좀 더 수줍지만 차마 숨기지 못하는 달큰한 마음 같은 향이다. 나는 오이비누의 향을 조금 더 좋아하지만, 살구비누 향을 맡을 때마다 반갑고 정겨워지는 마음을 막을 수 없다.
오이비누와 살구비누 같은 마음이 내 안 어딘가에 있다. 어리고 연약하고, 깨끗하고 맑은. 시간이 지나 내가 세상에 아주 찌든 어른이 되더라도 절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세상엔 이미 너무나 좋은 비누가 많고 많지만, 결국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 있다면 나는 그곳이 바로 오이비누와 살구비누인 것이다. 그냥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 한 켠의 오이비누 살구비누의 자리는 남겨두고 싶다. 좀 많이 힘든 날에는 한 번씩 찾아가 손이나 씻으며 그 향기에 슥 위로받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