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39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공통점이 있다. 결국 끝엔 마음이 헛헛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영화들은 내가 마냥 기쁘게 좋아하는 영화가 아닌, 기억에 오래오래 남게 되어 그 쓸쓸함을 자꾸 돌이켜보았던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그런 영화의 제목을 말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는 아주 선명하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떠났다가 위기와 조력자를 번갈아 만난다. 그리고 결국 해결해 다들 기분 좋게 끝나는 영화다. 그 주제에는 각종 범죄와 정치, 사회적 윤리적 문제가 얽히고설켜있다.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뭔가 흐릿하고 살짝 채도가 낮은 느낌이다. 지극히 한 개인의 이야기로 출발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사사로운 감정이 물결처럼 출렁인다. 처음과 끝을 두고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결국 혼자 시작해서 마지막에도 혼자 덩그러니 서있든, 혹은 둘이 시작해 혼자가 되었든, 그것도 아니면 똑같이 둘인데 뭔가 미묘하게 달라졌든 하는 그런 영화들.
<중경삼림>에서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통조림을 찾아다니는 주인공이나 <파이란>에서 옥상에 하얗게 흩날리는 빨래 같은 것. <무지개 여신>의 물웅덩이에 비친 이상한 무지개 같은 것. <아는 여자>의 여주인공이 좋아하는 남자의 집까지 한 발 한 발 헤아렸을 발걸음 같은 것. <헤어질 결심>에서 초밥을 함께 먹고 뒷정리하던 장난스러운 손짓 같은 것.
이상하게 짠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그런 장면들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 그렇게 갈 곳 없는 마음들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있는데 닿을 곳은 없는, 허공을 떠돌고 주위를 맴돌다 결국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쩌지 못하고 흩어지는 그 마음들은 어디로 흘러가 어디에서 달래질런지. 그래서 먹먹하고 쓸쓸하다. 나는 그런 영화를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나라도 그 갈 곳 없는 마음들을 기억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