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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공기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40

by 노루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뭐야? 누가 물으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답한다. 겨울. 겨울이라고.


생일이 겨울이다. 12월에 태어난 내가 가장 먼저 맞이한 계절은 겨울이었을 거다. 나는 30년을 살아온 지금까지도 나를 맞아준 계절을 아주 좋아한다. 차갑고 시리고, 그래서 따뜻함이 유난히 드러나는 계절이다.


요즘 슬슬 공기가 차가워지고 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할 때 겨울이 다가옴을 느낀다. 초겨울의 이 습도 없는 사늘함도 좋고 한겨울 영하 몇 도를 찍어서 한파가 왔다는 예보가 들릴 쯤의 콧속이 바싹 얼어붙는 느낌도 좋다. 차가운 머리카락이 뺨에 닿는 느낌도, 발끝이 얼어 감각이 둔해지는 느낌도 좋다. 나는 찬바람에 눈물이 잘 난다. 눈물을 닦으면서 뺨이나 콧등이 더 차게 식는 것도 좋다. 내 손에 닿는 내 얼굴이 차고 그 손도 차고, 그 손으로 만지는 남편 손은 한없이 따뜻해서 아늑하다.


겨울엔 만두가게의 무럭무럭 피어나는 김에도 유난히 눈이 간다. 어묵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노곤하게 몸이 풀어진다. 버스정류장의 온열벤치에 앉으면 그게 뭐라고 금세 몸이 녹아내린다. 퇴근하고 돌아온 우리 집은 유난히 따뜻하고, 몸에 닿는 보드라운 수면잠옷의 감촉은 아늑하다. 아침마다 발바닥에 닿는 카펫은 바닥의 찬기를 막아주고 항상 나보다 높은 남편의 체온에 손을 녹이는 일이 즐겁다. 조금만 숨을 들이마시면 군고구마와 호떡, 붕어빵과 계란빵의 달큼한 냄새가 가득이다.


가게에 들어설 때 순식간에 몸을 녹이는 히터의 따뜻함을 좋아한다. 보일러가 유난히 잘 드는 부엌과 거실 사이의 지점을 알게 된다. 묵직한 이불과 겉옷 주머니의 부드러운 안감을 좋아한다. 추울수록 남편을 더 자주 안고 집안을 걸을 때 폭신한 슬리퍼를 꼭 챙겨 신게 된다. 따뜻한 커피와 차가 적당히 식도록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손이 먼저 녹도록 한참 잔을 만져야 한다. 갓 구운 뜨겁고 고소한 빵냄새가 맡고 싶어서 괜히 식빵 같은 걸 굽는다. 겨울은 그래서 좋다. 평범한 것도 따뜻해지는 계절, 사람의 온기가 소중한 계절. 서로 한 이불을 덮고, 같은 담요를 나누고 손을 잡아 체온을 나누는 계절. 변기 시트에 남은 누군가의 온기마저 고마운 계절. 사소한 발라드와 느리고 느긋한 노래들이 포근한 계절. 한 줌짜리 햇살과 언 눈의 반짝임이 유난히 따뜻하고 소중한 계절. 추워서 더 따뜻한 이 계절을 조금 설레발치며 먼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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