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톱을 짧게 깎는 것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41

by 노루

나는 손톱을 정리할 때 다듬기보다는 제거한다. 손톱의 흰 부분이 1픽셀 정도의 선으로 보일 때까지 깎는다. 손톱깎이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바짝 깎는다.


손톱의 흰 부분이 선이 아니라 면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 나는 틈만 나면 '손톱 깎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손톱이 1mm 정도 되었을 때부터 2mm쯤이 될 때까지 내내 깨닫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손톱을 깎았을 때, 그 작은 손톱 조각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어쩜 그리 개운한지 모르겠다.


어릴 때 나는 엄마의 한마디에 울고 웃는 아이였다. 내가 손톱을 바싹 깎으면 엄마는 내가 손톱을 너무 짧게 깎았다며 다음번 손톱은 엄마가 깎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 내 손톱을 깎아줬다. 나는 그래서 자꾸만 스스로 손톱을 깎을 때면 흰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손톱을 깎고 또 깎았다. 엄마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 그 자란 손톱을 다시 깎을 때도 꼭 그렇게 보란 듯이 바싹 깎았다. 혼자서도 충분히 손톱을 덜 깎고 더 깎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의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른 살이 되어도 여전히 그래야 속이 시원하다.


손톱을 잘라낼 때, 타각타각 깎이는 손톱을 보면 어떤 찌꺼기나 분비물을 잘라내는 것처럼 개운하다. 싫은 것, 거슬리는 것, 못난 것을 바싹 없애버리는. 그리고 그 과정을 아주 집중해서 지켜보는 데서 오는 통쾌함. 나는 거기서라도 내가 싫은 것을 칼같이 끊어내고 떨어뜨리고 없었던 것처럼 개운하게 산다. 손톱 위에서라도 그렇게 산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0화겨울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