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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그냥 구경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38

by 노루

새벽까지 잠이 안 오는 날이 있다. 그럴 때 창문 가에 있다면 나는 슬쩍 커튼을 걷고 밤이 내린 그곳을 구경한다. 사방이 빽빽한 어둠으로 가득한 그 풍경과 텅 비어버린 길과 고요한 공기, 풀벌레 소리만 남은 그곳에는 간간히 바람이 지나고 작은 동물들이 흔적을 남긴다.


밤은 꼭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덩그러니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은 어떤 한때의 복작거리던 이야기를 간직하는 자리 같다. 그렇게 활기 있고 따뜻하던 낮의 기운을 잘 모아 다시 보고 또 보며 그 기억으로 밤을 나고 새벽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혼자를 견디는 것처럼.


쥐를 쫓는 고양이로, 인적이 드문 틈을 타 길을 건너는 개구리로, 남들의 밤에 활동을 시작하는 부지런한 자전거로 밤은 움직이기도 한다. 그런 이들을 위해 불빛은 언제나 켜져 있고 작은 움직임도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이한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빛나는 순간인 것이다. 그렇게 캄캄한데도.


이런 작고 짧은 움직임을 위해 깊은 밤 내내 켜진 은은한 불빛들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 의미는 누군가 나타날 때가 되어서야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문득 떠오르면 밤을 구경할 것이다. 밤과 밤을 비추는 가로등을 조용히 바라볼 것이다. 그런 밤은 낮보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렇게 하염없이 턱을 괴고 밤을 구경하다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볼까 생각하게 되고, 정말 펜을 들게 되는 날이면 나는 꼭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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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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