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59

by 노루

나는 결혼 전 미리 집을 구해 식전 몇 달을 남편과 같이 지냈다.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택배를 정리하고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박스를 풀어 집안 적당한 곳에 배치했다. 제일 처음 온 가구는 티비장과 침대프레임이었다. 프레임은 있는데 매트리스가 오지 않아 처음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 우리의 첫 집에서 처음 함께 나란히 누운 밤, 남편이 나를 토닥이며 말했다. 잘 자.


우리는 그 후로 매일 잠들 때마다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잘 잤는지 꼭꼭 확인했다. 엄마 아빠와 지낼 때는 없던 간지러운 일이라 생소했다. 누가 나한테 잘 자라고 말해주고 잘 잤느냐 물어봐 주는 일.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일곱 시간가량의 안부를 챙겨주는 일. 앞으로 매일 밤을 같이 하게 될 사람과 나누기에 너무나 적절하고 따뜻한 인사였다.


잘 자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포근하고 아늑했다. 누군가 내가 잘 자기를 바란다는 사실 하나로 어떤 돌봄을 받는 것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곧잘 잘 자라는 말을 하며 남편이 정말로 잘 자기를 마음 깊이 바라게 되었다. 밤은 다음날을 만들고, 좋은 잠은 좋은 하루를 만드니까.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잘 잤어? 물었을 때 상쾌한 대답이 돌아오거나, 아니 자주 깼어. 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 상대의 잘 잠을 신경 쓰고 있다는 나 스스로의 보람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부터 밤마다 잘 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 너의 밤과 잠을 챙긴다고. 잘 자기를 정말 바란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좋은 밤과 편안한 밤을 지나 곧 파란 아침이 찾아오면 다시 만나자는 짧은 인사에 사랑을 듬뿍 담아주고 싶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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