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있는 집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56

by 노루

나이가 드니 아기 있는 집에 놀러 갈 일이 생긴다. 친구들이 하나 둘 아이를 낳고 있어서 아이 구경 겸, 친구 안부 확인 겸 친구 집에 가보면 하나같이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가득한 아기의 집이 펼쳐진다. 아이보리와 베이지가 가득한 곳. 손 닿는 곳마다 폭신한 패브릭이 닿는 곳. 모든 모서리가 동글동글하고 말랑한 것들이 부쩍 많아진 곳. 고소하고 콤콤한 아기냄새가 곳곳에 배인 아늑한 집이다.


친구들이 아기를 재우는 동안 할 일이 없어진 나는 곧잘 집안을 둘러본다. 꽤 오래 손 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센스. 현관문 선반에서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누군가의 전자담배 액상. 꽤 난도 높은 보드게임과 술안주용 먹거리 같은 게 보일 때면 괜히 기분이 짠하다. 둘만이었을 세상에서 새 가족이 생긴 요즘, 여유롭던 취미생활과 작은 즐거움들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세상엔 아이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작은 움직임에 최선을 다하는 서툰 부부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의 웃음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밝아지는 친구의 지친 얼굴과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로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다정한 목소리를 한참 구경하고 나면 너는 벌써 엄마구나, 이상한 마음이 든다. 교복을 입었을 때 우리는 다들 깔깔 웃고 까랑까랑하게 말했는데, 어느새 친구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럽고 낮아져 있었다. 한밤중에 조용히 혼자 아기를 재우고 토닥일 목소리다. 그치지 않는 울음에 한숨도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쉬었을 깊고 긴 호흡이다.


어릴 때 우리 엄마가 그랬듯, 아이의 작은 옷가지를 익숙하게 접어내는 손. 아이의 가슴을 천천히 두드리는 그 손을 보고 있으면 아기 있는 집에서는 꼭 내가 다 잠이 쏟아지곤 한다.


아기를 낳으러 가던 날, 친구가 얼마나 걱정하고 무서워했는지 우린 모른다. 생애 첫 출산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혼자 감당해야 했던 공포와 두려움이 안타까워서 오늘은 부디 아기가 쉬이 잠들기를 바라며 그 집을 나선다. 작은 손바닥을 쥐어보며 엄마 말 잘 들어, 괜히 부탁해 보면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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