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55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누는 MBTI에 따르면, 나는 INFJ 유형이다. 내향과 직관, 감정과 판단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런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나는 외출에 아주 신중한데, 당분간의 바깥 볼일을 모두 모아 동선에 따라 나누고 하루를 정해 비슷한 동선에 걸친 모든 일을 해치우고 돌아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면, 순댓국 뚝배기 하나를 깔끔히 해치운 것 같은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
남편이랑 외출을 하게 되면 엄청난 효율파인 남편의 지휘에 따라 불필요한 것을 모두 없앤 간략한 일정이 된다. 하지만 혼자일 땐 그냥 오랜만인 바깥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이게 나가기 전에는 그렇게 싫어도 막상 요즘처럼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걷다 보면 참 좋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 걷기도 하고, 마트에서 사지 않을 것들을 한참이나 구경하기도 한다. 고양이를 만나면 한참 쪼그려 앉아 구경할 수도 있고 계획에 없던 카페 정도는 추가해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이런 외출이 자주 있는 건 아니라 일정이 생기면 괜히 잘 입지 않던 코트를 꺼내 입거나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는다. 엘리베이터 거울로 매무새를 살피고 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좋아하는 겉옷을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내 시간을 하염없이 편안하게 흘려보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햇볕을 쬐며 벤치에 멍하니 앉아 물결이나 풀밭 같은 걸 보고. 머리가 가볍고 눈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소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선다.
와, 집이 최고야. 나에게 제일 익숙하고 아늑한 냄새가 나는 곳에 드디어 다다라 신경 써서 골랐던 옷가지를 하나하나 벗어 걸고 잠옷바람으로 돌아온다. 미루고 미룬 볼일을 아주 오래 걸려 해결한 날. 오랜만에 혼자 외출을 마친 나는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괜히 남편한테 붙어 냄새를 맡고 얼굴을 만지다 다디단 초저녁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