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54

by 노루

나는 면요리를 좋아한다. 후루룩 넘기기 좋은 소면도, 탄력 있는 중화면도 좋아하지만 마음이 헛헛하고 몸이 시릴 때 먹고 싶은 건 왠지 우동 쪽이다. 면을 집어 입에 넣을 때 그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유난히 좋은, 그래서 많이씩 먹지 않아도 충만함이 느껴지는 통통한 면. 국물에 담긴 시간이 길수록 더 부드러워지고, 국물을 쏙 빨아들여 녹진해진 그런 면요리가 필요한 날이 있다.


쫄깃하게 살아있는 우동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부드럽게 풀어진 우동도 있다. 라면은 꼬들한 게 좋지만 우동은 풀어진 쪽이 좋다. 달큰 짭짤한 국물이 충분히 배고, 유부나 튀김 고명이라도 올라가 있다면 그 기름기마저 고소하게 묻어있는 면발. 양이 많지도 않아서 아쉬울 때 적당히 면을 다 건져먹을 수 있고, 남은 아쉬움은 국물 몇 술로 달랠 수 있는 메뉴다.


풀어진 우동은 한국식 우동이 강자다. 포차나 휴게소에서 파는, 고춧가루와 김, 쑥갓이 잔뜩 올라간 우동은 일본식 우동을 먹을 때는 나지 않는 크어- 소리가 절로 난다. 나는 좀 아저씨같이 밥을 먹어서 좋은 국물을 마시면 그런 소리를 낸다. 기분 좋음이 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소리다. 좋은 국물은 사람의 뱃속을 아주 만족스럽게 채워준다.


맵거나 짜지 않고 순한 우동은 묘하게 사람을 달래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정갈한 일본식 우동 한 그릇이든, 푸짐하게 퍼진 한국식 우동 한 그릇이든 마찬가지다. 담백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 입술을 타고 넘어오는 동안의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 저항 없이 입안에서 쫀득하게 으스러지고 부드럽게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그러는 동안 헛헛했던 배는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빈틈없이 따뜻해진다. 그게 우동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 어느 이야기에서도 보았던 우동 한 그릇의 온기는 작은 식당 한 칸의 불빛처럼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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