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발가락의 모서리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53

by 노루

어렸을 때, 아빠의 발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새끼발가락을 만져보았다. 내 새끼발가락은 포도알처럼 동그란데 아빠의 새끼발가락은 땅에 닿는 부분과 닿지 않는 부분의 경계에 분명한 모서리가 생겨있었다. 날 서버린 새끼발가락. 그 모서리를 한참 문지르던 나는 자라서 남편의 새끼발가락에 생긴 모서리를 똑같이 만져본다.


우리는 보통 소파 양 옆에 머리를 두고 눕는다. 그럼 내 눈앞에 남편의 말랑한 발바닥이 있고, 거기 올망졸망 포도알처럼 달린 다섯 개의 동그란 발가락은 참 귀엽다. 우리도 어릴 땐 이 새끼발가락에 모서리가 없었을 텐데. 남편 발가락의 보드랍고 말랑한, 하지만 또렷한 모서리를 만지다 보면 아주 말랑하고 동그랬던 새끼발가락이 땅을 딛고 또 딛고 항상 같은 모양의 걸음을 만들었을 그 세월이 그려진다. 발 디딜 때마다 변함없이 눌렸던 발가락의 아랫부분과, 변함없이 동그랗게 모양을 지켰을 윗부분. 태어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바닥과 바닥이 아닌 부분을 분간할 수 있게 되어버린 새끼발가락.


나는 모서리를 만지는 걸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친척집처럼 낯선 곳에서는 베개의 끝을 접어 모서리를 만들고 한참을 만지작거려야 잠들 수 있었고, 책을 읽을 때면 습관적으로 책장의 모서리를 지문으로 문지르며 읽었다. 그 서늘한 모서리가 손에 닿으면, 아프고 시원한 그 사이의 감각이 어떨 땐 나를 깨우고, 어떨 땐 나를 안정시켰다. 그에 비해 발가락의 모서리는 참 안전하고 부드러운 모서리였다. 괜히 미안하고 안쓰러운 모서리였다. 내가 자꾸 만지면 다시 없어질 것만 같은 모서리였다. 없애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모서리였다. 주름처럼, 나이테처럼 그간의 고단함이 박혀있는 것 같은 모서리였다.


우리 아빠의 발가락이 그랬듯, 우리의 발가락에도 언젠가는 열 곳 모두에 모서리가 생기고 굳은살이 박히겠지. 더 나이 들고 나면, 마음의 짐과 몸의 무게로 더 큰 중력을 견뎌야 하겠지. 딱딱해진 발바닥은 자주 아프고 힘들어도 또 일어나 걸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도 나는 지금처럼 남편의 발가락을 만져줘야겠다. 꼭 내가 만져주면 풀어지는 모서리인 것처럼 그렇게 어루만져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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