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52
말을 천천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격이 급한 나는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잘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한 리액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며 괜히 후회하는 많은 일들 중 다급하고 경솔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장 컸다. 말에는 별 자신이 없고, 말재주도 없으나 다른 사람들이 나의 무지와 부족을 아는 게 부끄러웠다. 그런 나에게 할 수 있는 건 빠르고 적당하고 무난한 맞장구나 리액션 정도였는데, 이게 참 급했다.
가끔 말을 잔잔하고 느리게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편하게 기다려주고, 자신의 생각도 느리지만 단정히 정리해서 말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작아지고 부끄럽다. 그래서 내 새해 계획에는 천천히 말하기가 빠지지 않는다.
말은 사람을 그대로 비추는 것만 같아서 조급하고 앞서가는 내 말투는 꼭 나인 것 같다. 서툰 임기응변과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것들. 몸이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마음이 편한. 가뜩이나 남의 눈치를 많이 보던 내 스스로에게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던, 결국 부족하고 못 미치던 것들이 모여 만든 내 부끄러움이었다.
천천히 말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든다.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평화가 그 대화에 들어있다. 달변가처럼 말을 잘하지 않아도, 그 느릿한 말 속에는 나를 언제나 기다려 줄 것만 같은 위로가 들어있고 음절 사이사이의 공백에는 골똘한 생각이 들어있는 것 같다. 상처받는 사람도, 부끄러운 사람도 없는 조심스럽고 따뜻한 대화와 관계가 탄생한다. 나이가 들수록 천천히 말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닮고 싶어진다.
말의 양과 질을 측정할 수 있다면, 해마다의 나는 조금씩 적게 말하고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소설을 쓸 땐 필요 없는 문장을 없애고 지우는 연습을 참 많이 했었다. 하지만 말은 이미 입 밖에 뱉어버리면 어쩔 수 없어서 뒤늦게 지우고 하지 않은 척할 수 없어 난감했다. 올해도 말하기 전에는 숨을 한 번 깊게 쉬고 말을 고르는 연습을 해보겠노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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