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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Jan 24. 2022

#1 발병

암환자가 되었다.

2년 전,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암환자다. 통증도 없고 몸 상태도 나쁘진 않지만, 아직 몸에 암세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암세포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폭력적인 치료행위를 계속할지, 꾸준히 관리를 하면서 자연 치유를 할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동안의 일들을 차분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병을 앓고, 치료를 하면서 들었던 수많은 생각들. 나라고 뭐 대단히 통찰력 있고 깊은 감정을 느꼈을 리는 없지만, 병을 앓다 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느끼게 되는 그 보편적인 감정을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발병

때는 바야흐로 2020년 1월.

고향 친구들과 '놀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회비를 걷기 시작한 게 20년이 넘어가다 보니 통장에 2천만 원이 넘게 쌓였다. 초등학교 때 성당 친구들끼리 만든 모임이 어느새 부부동반 모임이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고, 이제 좀 회비 좀 써보자라는 생각에 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보니 장소와 시간을 결정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 놈들이야 별 문제가 없었는데, 그들의 와이프님들이 워낙 까다로우셔서 장소 결정하는데 몇 주, 코스 선택하는 데 몇 주가 걸리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여행사 끼고 3박 5일로 태국으로 가기로 최종 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한 폐렴이라는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지 않은가. 와이프님들과 내 여자 친구는 겁을 내기 시작했고, 여행사에 알아보니 환불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회비를 지원한다고는 했지만 절반 정도의 비용이었고 자식이 있는 사람과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내 여자 친구는 통으로 회비를 더 내야 했기 때문에 쉽게 취소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정 잡는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곧 있으면 해외여행을 간다는 기대감에 아주 신이 나있었는데, 그러는 와중에 점점 허리가 아파왔다.


평소에  테니스를 주 2~3회씩 꾸준히 쳐왔기 때문에 허리에 자잘한 통증은 항상 안고 살았었다. 허리 디스크로 2번 정도 병원 치료를 했었고, 이번에도 같은 증상이었다. 6개월 정도 전부터 통증은 점점 심해졌는데, 이번에 해외여행 갔다 오면 병원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통증이었다. 그러던 차에 신종 전염병의 상황이 심각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행사에서 전액 환불 조치가 내려졌고 결국 태국 여행은 취소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해외여행을 갔어야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코로나가 난리를 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쨌든 갑작스러운 여행 계획 취소에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병원에 가는 거였다. 통증 때문에 테니스 실력이 계속 줄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테니스 동호회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 참에 치료를 제대로 해서 다시는 허리가 아프지 않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집 앞 병원에서 증상을 얘기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의사 상담은 그 이후였다. 엑스레이를 본 의사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야기했다.

"이거는 엠알아이를 찍어봐야 될 것 같은데요"


MRI 비용이 꽤 비싸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 아니면 찍을 일이 없었다. 의사가 단호하게 찍어야 된다고 말을 하니 디스크가 제대로 터졌나 보다 싶었다. 처음으로 MRI 통 속에 들어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몇십 분을 버텼다.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MRI를 찍고 다시 만난 의사가 이번에는 망설였다.

"음... 이건 좀 다른 의사들과 상의를 해봐야 될 것 같은데요. 내일 다시 오세요"

 

뭐지? 뼈가 부러지기라도 했나? 하지만 그때만 해도 별 걱정은 없었다. 디스크 치료를 해본 경험이 있었고,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경험을 몇 번 해보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찾아간 병원. 의사는 결론을 내렸는지 망설임 없이 이야기했다.

"척추에 종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종양이요?"

"이건 큰 병원 가서 치료를 해야 됩니다. 진료의뢰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 가서 검사해보세요"


동네 병원 의사는 별 거 아닐 거라며 진료의뢰서에 '혈관종'이라고 써주었다.

하지만 의사는 표정으로 그 종양은 별거일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척추 종양'을 검색했다. 연관 검색어로 '전이성 척추 종양'이 떴고 검색 결과는 어마 무시했다. 

척추에만 종양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고, 다른 암에서 전이된 케이스가 대부분.


암? 암이라고? 검색 결과에 따르면 내 척추에 있는 종양은 다른 암에서 전이된 거였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척추에만 종양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도 양성과 악성이 있고 악성이면 그것도 굉장히 심각한 경우였다.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가 내 척추에만 종양이 있고 양성인 경우였다. 확률로 따지면 2~3%?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안 마시고, 테니스도 열심히 치는데... 내가 왜? 말이 되나? 가족들 전부 건강한데 내가 왜? 하지만 아직 모른다. 일단은 병원부터 예약하기로 하고 3차 병원에 일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유명한 의사는 대부분 예약이 꽉 차 있었고, 진료를 보려면 반년을 기다려야 되는 경우도 많았다. 예약이 되는 곳으로 가기로 하고 서울아산병원을 예약했다.


아산병원의 의사는 엑스레이와 엠알아이 사진을 대충 보더니 

"조영제 넣고 엠알아이는 아직 안 찍었죠? 그거부터 찍고 나서 봅시다"

"혈관종이라는데 맞나요?"

"그거야 그냥 혈관종이라고 쓴 거고... 엠알아이 결과 나오고 나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상급종합병원 의사 특유의 불친절함을 처음 경험했다. 하기야 이 의사는 허구한 날 보는 게 이런 환자일 테니. 저런 특유의 무신경함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당사자인 나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MRI를 예약하는 것도 문제였다. 가장 빠른 예약이 한 달 뒤였다. 한 달 뒤에 MRI를 찍고 그 뒤에 의사를 다시 만나는 일정이었다. 맘이 급한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다.


다시 예약이 되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서울대병원 예약이 가능했다.

"최근에 살이 좀 빠졌나요?"

"아니요"

"가족 중에 암환자가 있나요?"

"아니요"

"그럼 몇 가지 검사를 더 해보고 나서 봅시다"

"무슨 병인데 그러죠?"

"일단 검사 결과 보고 나서 이야기하죠"


하여간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의사들이 없었다. 그래도 아산병원과는 다르게 바로 당일 검사 일정이 잡혔다. 조영제 MRI와 PET CT 였다. 펫시티? 이건 무슨 검사인지 또 폭풍 검색을 했다. 몸에 소량의 방사성 물질을 집어놓고 CT를 찍어서 암세포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는 검사였다. 아... 진짜 암이 맞나 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멍하니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데, TV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오랫동안 준비를 해오다가 아직 성공하지 못 한 나로서는 너무나도 부러운 소식이었다.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상까지... 어마어마하구나. 대단한 사람이다. 꿈같은 일이었다.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 일. 그리고 지금 내가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이 지금 모든 상황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지친 마음으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 아버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 받았던데... 아들 시나리오는 잘 돼가?"

아들이 영화감독되기만을 바라며 물심양면 지원을 해주던 아버지가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을 듣고 아들이 떠올라 전화를 거신 거였다. 대충 잘 쓰고 있다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차마 병원 갔다 오는 길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의 격려와 열심히 하겠다는 거짓 다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호가 걸린 사거리에 멈춰 선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뭐가 그렇게 서럽던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몸이라도 건강해야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테고, 아카데미고 나발이고... 입봉이란 걸 해볼 수 있을 텐데. 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검사 결과는 2주일 뒤였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막막함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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