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등을 굽혀 털을 바짝 세운 짱이는 어슬렁어슬렁 걸음으로 볕이 잘 드는 마당 잔디밭 위로 돌아가 벌러덩 누웠다.
'경쟁자가 늘었어. 큰일이네... 앞으로 먹을 걸 더 잘 챙겨야겠어.'
영미는 새 가족이 된 숏을 살폈다. 녀석은 짧은 다리와는 대조적으로 보일 정도로 기다란 꼬리를 죽기 살기로 흔들었다. 사랑이 담긴 엄마의 시선을 한껏 독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영미는 동그란 눈을 꿈뻑이며 숏의 짧은 다리 길이를 재어 보았다. 앞으로 대체 어떻게 견제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다리는 짧지만 은근히 매력적인 녀석인 건 사실이다. 게다가 숲에서 굴러먹다 들어와서 그런지 짱이에게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늑대에게서나 보인다던 외로움 같은 게 몸에 배어 있어 보였다. 숏과 달리 짱이는 녀석을 그다지 경쟁 상대로 느끼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마른 체구를 지킬 생각인지 전혀 식탐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 언제라도 탈출을 감행할 수 있도록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사라진 후 세 녀석은 각자의 삶으로 빠져 들었다. 이미 짱이는 제 원래 색깔대로 넓은 잔디밭 위를 제 세상으로 삼고 있었고,영미는 언제나처럼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벌써 곯아떨어져 버렸다. 아직 제 자리를 삼은 곳이 없는 숏은 데크 위 테이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딱딱한 나무가 그다지 맘에 들진 않었지만 여차 하면 엄마가 던져주는 간식을 가장 먼저 차지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게다가 운만 좋으면 영미나 짱이보다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운이 따라준다면 먹는데 정신이 팔린 녀석이 흘린 걸 빼앗을 수도 있다. 영미는 뭔가를 먹을 땐 주변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걸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들개 무리와 어울려 다닐 때 몸에 익힌 습관이었다. 대장 들개도 영미와 비슷한 성향이었는데 자칫 실수해서 물려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숏 역시 음식에 상당한 집요함이 생긴 것이다. 그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미와는 철저히 다른 경우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숏과 영미는 음식을 가리는 법이 없다.
테이블 아래를 기웃거리던 숏은 한참을 고민하다 테이블 상판 위로 뛰어올랐다. 다행히 의자가 있어 도약하는 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리가 짧은 게 평생의 한이 됐었는데 여기선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숏은 테이블 위에 바짝 엎드려 잔디 위를 살폈다. 두 녀석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일종의 감시초소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곳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잔디 위를 살피는 숏의 귀는 여전히 엄마의 동태에 집중해 있었다. 어쩌면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진귀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던 녀석은 스르르르 눈을 감았다.
푸다다닥! 어푸푸푸! 와그적와그적!
어수선한 소리에 눈을 번쩍 뜬 숏이 소리가 나는 데크 쪽을 보았을 땐 데크 위에 두 녀석의 이빨이 날카롭게 빛나는 착각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토록 엄마의 움직임을 감시했건만 얼마나 잠이 깊게 든 것인지 두 녀석이 음식을 물고 뜯는 것도 몰랐을까? 숏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 민감하던 코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영미는 돼지다리뼈 하나를 물고 돌담 쪽으로 달려갔다. 짱이는 긴 꼬리를 바짝 세우며 느긋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벌써 살코기는 사라지고 없겠지?'
숏은 이제야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닐장갑을 낀 손엔 큼지막한 뼈 하나가 들려 있었다. 뼈에는 엄청난 양의 고기가 달라붙어 있었다. 숏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에 통증이 느껴졌다. 혀에선 침이 폭포처럼 흘렀다.
'체면을 지켜야지. 거지 같은 들개로 살았던 과거를 지워야만 해. 이젠 여기서 살아야 하니 일반 집개처럼 예의범절을 지켜야 하지 않겠어?'
숏은 스스로를 나무랐다. 엄마의 눈 밖에 나 집에서 쫓겨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이거 먹고 병원 갈 데가 있어. 새 식구가 된 기념으로 숏 너에게 고기가 제일 많이 붙은 걸 골랐어. 어때? 맘에 들어?"
엄마는 데크 위에 쪼그리고 앉아 숏이 테이블 위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숏이 다가오자 엄마는 뼈다귀를 숏 앞에 내려놓았다. 다가오던 속도는 왠지 경계심에 느려져 있었다.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엄마의 표정도 전과 같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하지만 뼈다귀와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내뿜는 마력에 녀석은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고깃덩어리에 가까워올수록 숏의 정신은 흐릿해져 갔고 동공의 초점은 윤기 좌르르 흐르는 살코기의 매끈한 살결에 꽂혀 들었다. 코는 무의식적으로 벌름거렸고 침은 길게 늘어져 데크를 적시고 있었다.
엄마의 묘정은 왠지 모를 무시무시한 느낌을 자아냈지만 그런 건 이제 개의치 않았다. 숏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고깃덩어리를 향해 돌진했다. 고기에 코를 박아 넣자 향긋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향이 뇌를 마비시켰다. 세상에 더없는 천국을 맞이한 것만 같았다.
우걱우걱! 후루릅! 쩝쩝! 우두득! 빠스슥!
숏은 정신없이 뼈를 뜯고 빨고 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는데 집중한 뒤, 녀석은 목에 평소와는 다른 갑갑함이 느껴졌다. 보이진 않아서 뭔진 알 수 없었지만 이내 그게 영미의 목에 걸린 것과 비숫한 목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숏은 엉덩이를 바닥에 눌러 넣고 앞발로 목을 긁었다. 역시 목에 묵직한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언제 들어갔는지 알 수도 없던 엄마는 긴 줄 하나를 들고 나타나 숏의 목에 걸었다.
"다 먹었지? 이제 가자!"
숏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자니? 대체 어딜?'
깨갱! 깨개앵~ 으헝~ 힝힝~
숏은 울고 싶었다. 녀석은 엉덩이를 깔고 발톱을 세워 앉았다. 엄마가 줄을 잡아끌자 몸이 휘청거렸다. 숏은 어떻게든 버틸 심산으로 바닥에 있는 힘껏 바짝 엎드렸다. 하짐만 가냘픈 엄마는 보기보다 힘이 셋다.
숏은 엄마의 힘에 의해 조금씩 끌려갔다.
"병원 가봐야 해. 건강해야 우리 식구가 될 수 있어!"
병원이 뭔지 모르는 숏은 그저 겁먹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 모습을 태연하고 무심하데 쳐다만 보는 두 녀석이 있었다. 눈빛엔 그저 하나같은 생각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