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만들어낸 문명 속이 이렇게 깊숙이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숏은 문득 드넓은 대지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지난 시간이 기억났다. 딱히 행복했다는 기억은 없었지만 이질적인 환경이 만들어낸 두려움 따윈 없었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 의한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인간의 것은 좀 다른 이야기라도 할 수 있었다. 차가운 벽 안에 꽉꽉 채운 물건들이 시선을 어지럽혔다. 다양한 사람들의 냄새도 머리를 어지럽게 했지만 이상하게 코를 괴롭히는 냄새는 기분마저 나쁘게 했다. 결코 상쾌하다 할 수 없는 냄새 속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숏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도 인간이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환경에 잘 어울려 보였다. 집에서 보았던 엄마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흰 옷을 입은 아저씨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숏은 두려움을 제법 극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란색 손이 자신을 덮쳐오자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몸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그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눈동자뿐이었다. 목 뒤로 뭔가 막이 둘러쳐지는가 싶더니 눈동자를 아무리 돌려보아도 뒤쪽으로 보이는 건 흰 뱍 뿐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숏은 숨어있던 용기 한 가닥을 발굴해 몸을 움직이려 했다.
"안 돼! 움직이지 마!"
아저씨는 눈썹에 힘을 주며 말했다. 왠지 이겨낼 수 없는 중압감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숏의 몸은 아저씨의 손길에 완전히 내맡겨진 상태였다. 숲에서 잘못 먹었던 독버섯 때문에 환각 상태를 느낀 적이 있긴 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엉덩이에 뭔가 따끔한 느낌이 들었고 잠시 후 불에 덴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무섭지만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었던 건 조그만 창 너머로 보이는 엄마의 얼굴 때문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참아낼 수 없었다. 엄마의 모습도 흐려져 갔다. 숏은 처음으로 죽음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음 후엔 무엇이 있는 걸까, 고민하다 의식은 사라지고 말았다.
*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가 아파오는 게 느껴질 즈음되자 숏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은 넘 너무 하얬다. 그저 하얀빛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걸을 순 있을까? 네 다리 줄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동자를 굴려도 역시 하얀빛뿐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귀를 통해 들려오는 익숙함에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엄마의 목소리였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역시 예상하셨던 대로 심장사상충이 있네요. 많이 심각해요. 건강 상태도 좋지 않고, 벼룩 하고 진드기가 많네요. 피부병도 좀 심한 편이고요. 관리 좀 해주셔야겠어요. 그런데 지금 키우는 영미도 그렇게 데려오시고선 또 키우세요? 덩치가 큰 녀석들이라 쉽지 않으실 텐데..."
"숏은 집이 어딘지도 몰라요. 그냥 내보내면 어디서 어떻게 다니다 죽게 될지 모르잖아요. 숏도 저희 집이 좋은지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나간다면야 보내주겠지만 일단은 데리고 있을 생각이에요."
"그러다 또 정이 들면..."
"예쁘잖아요. 씻겨 놓으니 이렇게 잘 생겼는데요. 짱이하고 영미가 좋아할 거예요."
*
엄마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숏의 모습에 영미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예상보다 늠름한 모습에 반한 거다. 다만 다리가 많이 짧아 많이 아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