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목동이 나타났다. 이렇게 무지막지할 수가 있나? 세 녀석들은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만 같았다. 이렇게 즐거운 나날이 계속 이어져 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엄마의 동생은 집에 도착한 첫날부터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했다.
"뭐야? 이 자식들 냄새가... 니들 똥개냐?"
이 말이 터져 나온 후로 짱이, 숏, 영미 순으로 목욕을 당해야만 했다. 영미는 어떻게든 도망을 다녔지만 돌담 모서리 끝에 몰려서야 어쩔 수 없이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아 버티는 걸로 마무리됐다. 동생은 무거운 영미를 번쩍 들어 올렸고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한 공중부양에 눈을 댕그랗게 뜨고 발을 동동 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짱이와 숏은 데크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야!"
동생의 목소리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숏은 잘한다고 칭찬하는 줄 알고 잔디밭까지 내려가 마구 굴렀다. 기껏 하얀 털의 멋진 개가 됐던 것도 기껏 오 분을 넘기지 못했다. 짱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짱이는 제가 파 놓은 흙구덩이에 배를 깔고 옆으로 누워 기껏 씻겨놓은 털에 온통 흙이 묻어 버렸다.
"어휴!"
벌써 한 시간 넘게 녀석들과 씨름을 하던 동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엄마의 표정엔 웃음만 가득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인 것이다.
"누나! 얘들 왜 이래?"
"그야 알 수 없지! 걔들 맘 내키는 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
"그럴 수야 없지, 이렇게 냄새나는 놈들을 어떻게 데리고 살았어? 더럽고 말이야."
동생은 연거푸 투덜댔다. 하지만 엄마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 말썽꾸러기들에게 지칠 날이 오겠지 싶었던 것이다.
간신히 사로잡은 영미는 기둥에 목줄을 묶인 채 물총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좋은 것을~'
영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도망갈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더워서 죽을 판인데 아무려면 어떤가 싶었다. 동생의 투덜대는 소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깔끔하게 씻겨진 영미 역시 녀석들과 한패가 되어 잔디밭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녹초가 된 동생은 몽땅 팽개치곤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몇 시간이고 킥킥댔다.
*
다음날 아침 동생은 드디어 목동이 되기로 작정했는지 작업복까지 챙겨 입고 마당에 나타났다. 동생은 녀석들의 목에 굵은 줄을 하나씩 맬 작정이었는지 세 개나 들고 나왔다. 짱이는 그런 모습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영미와 숏은 뭐가 좋은지 벌써부터 꼬리를 흔들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동생의 모든 신경은 짱이에게 집중해 있었다. 엄마 외엔 누구에게도 가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눈치 빠른 짱이는 동생이 다가서면 피하고 뛰어오면 뛰어서 달아났다. 기둥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피하는 건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누나! 짱이 좀 잡아줘 봐."
하다 못한 동생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엄마는 묵묵부답이었다. 짱이가 작정하면 답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엄마는 부엌에서 간식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거 줘봐. 이건~"
엄마가 한눈을 판 사이 간식은 벌써 영미의 입에 물려 있었고 불과 일 초도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진공청소기 수준이네."
동생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영미가 니 손가락도 먹어치울지 모르니까!"
엄마가 엄포를 놨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미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 그것도 의심해 볼만 했다. 옆에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마구 꼬리를 흔드는 숏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생은 엄마가 건네준 간식을 들고 짱이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역시 효과가 있는지 짱이는 빠르게 도망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짱이 역시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쫓고 쫓기는 추격전 아닌 추격전 끝에 동생은 짱이의 목줄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동생은 진정한 목동이 되었다.
목동은 세 개자식들을 끌었다. 사실 누가 끌고 누가 끌려가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집을 나서자 골목 구석구석에서 다른 개자식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귀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짱이가 작정하고 으르렁거리자 깨갱 하는 소리와 함께 골목은 순식간에 고요를 찾았다. 마을 어귀를 벗어날 때까지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고 너른 들판이 나오자 짱이가 마구 달리려 했다. 그러자 영미, 숏 역시 뛰려 했다. 한쪽 손에 쥔 짱이의 목줄이야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덩치 큰 영미와 다리 짧은 숏을 우습게 본 게 낭패였다. 몇 번을 넘어질 뻔한 위험을 겪은 목동은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뒤에서 뒷짐을 진 채 동네 돌담 사이에 핀 들꽃 감상에 여념이 없던 엄마는 못 이기는 척하며 짱이의 목줄을 넘겨받았다. 짱이 하나만 해도 사실 감당하기 힘든 엄마였는데 눈치 빠른 짱이는 엄마의 보폭에 맞추기 시작했다.
"니들도 생각 좀 하지!"
짱이의 한마디에 영미와 숏 역시 얌전을 찾았다. 별 일이었다. 짱이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 두 녀석을 쪽도 못 쓰고 기가 죽은 것이다. 집 안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었다. 짱이는 집 밖의 모든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에게 놀라 푸드덕 거리며 도망가는 산비둘기, 꿔궈궝 소리를 내며 도약하는 장끼, 짝짓기에 여념이 없는 사마귀, 돌 틈 사이에서 기어 나오다 짱이 녀석들을 발견하고 재빨리 도망쳐버리는 도마뱀. 집 밖의 모든 녀석들이 짱이들의 산책길에서 길을 트고 있었다.
"누나, 짱이가 대장은 대장인가 봐! 어쩜 이렇게 늠름하지? 여자애가 말이야."
목동이 신기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 짱이가 너하고 어울려보려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쟤는 나도 힘들어. 지가 고양인 줄 아는 건지 어쩜 집 밖으로 나돌 궁리만 하는지 몰라. 어쨌든 너 덕분에 얘들 산책도 나와 본다. 짱이만 데리고 나가려 하면 영미하고 숏이 얼마나 애처롭게 쳐다보는지, 나갈 수가 없더라고."
목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짱이를 보았다. 긴 꼬리를 바짝 세운 녀석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야성이 느껴졌다. 영미는? 글쎄... 돼지 한 마리? 숏은 또 다른 돼지 한 마리? 아무리 봐도 들개 출신은 아닌 것 같긴 해 보였다. 영미는 아무리 봐도 개돼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