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2와 함께 했던 오랜 시간도 이젠 오랜 추억이 되어 기억 구석진 곳에 파묻혀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기억 속의 몇 장면을 끄집어 올렸다.
잘 찍지는 못하지만 그저 사진이 좋아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에 모델명도 기억나지 않는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그 비싼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래저래 용감무쌍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카메라에 사진 한 장 담는 것도 쉽지 않았다. 24컷, 36컷짜리 칼라필름을 구입하는 것도 고민스러웠고 한정된 필름에 한 컷을 담아내는 행위는 엄청난 고민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했다.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절하는 것도 감각에 의지해야 했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담아낸 사진을 현상하기까지 애를 태우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현상하는 비용은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인화까지 가기엔 어린 시절 주머니 사정으론 녹록지 않아서 형광등에 필름을 비춰 잘 촬영된 사진을 고르고 골라 인화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형광등은 라이트박스로 바뀌었고, 디지털카메라가 개발되기 전엔 충무로에도 몇 곳 없는 드럼 스캔 전문점에서 필름을 스캔해서 대형 출력을 했던 기억도 있었다.
똑딱이 디카를 만지작거리던 시절 마미야 디지털 팩이 설치된 스튜디오를 기웃거리던 기억도 난다.
바디만 1,400만 원이나 되는 인류 최초의 디지털 SLR인 NIKON D1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새로운 문명을 만난 기분이었다.
요즘엔 기관총 쏘듯 셔터를 난사해도 비용이 들지 않아 예전처럼 숙고의 과정을 거쳐 한 컷을 얻어낼 이유가 없어졌다. 장점도 많아졌지만 사진 한 장을 내놓기까지 고민이나 노력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고상한 척했던 취미도 그저 그냥 일상의 무던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이젠 어디서도 구입할 수 없을 신상 NIKON F2를 여기서 만났다. 나의 애장품 FM2 두 대는 삶이 꼬질꼬질할 때 모두 처분되어 누군가의 손에서 곱게 곱게 보관되어 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설악산의 혹한에도 불구하고 작동되던 FM2 그 녀석은 필름이 얼어붙어 깨져 나가도 멀쩡히 성능을 뽐냈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몇년 전 모델인 삼성 노트8로 촬영한 이 사진들만 해도 최초의 디지털 SLR인 NIKON D1이나 두 번째출시된 FUJIFILM S1PRO보다 해상도가 높다.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경험 아래 눌려진 세월 지긋한 추억을 소환해 보았다.
이 고풍스러운 ETSUMI 카메라 가방 속엔 F2 카메라 부품 풀세트가 포장도 뜯지도 않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할 이 신상 카메라를 만져볼 수 영광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만 해도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스틸 바디의 어색한 느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초감성을 이끌어 냈다. 이제 나머지는 나의 모든 설명이 필요 없다. 사진 몇 컷으로 설명을 대체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