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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Dec 30. 2020

30년 맛집, 3탄-양재동 양재생태동태탕

이게 진짜 동태탕이다

따끈한 국물이 생각날 땐 역시 동태탕 만한 것도 없다. 소문난 맛집이라 해도 보통 한 가지 맛만 강렬하면 후한 점수를 줄 텐데 양재생태동태탕의 동태탕엔 무려 세 가지나 되는 뛰어난 맛이 있다.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시원한 칼칼함,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쭉 빨려 들어가는 담백함, 이게 과연 동태가 맞는 것인지 의심을 품게 하는 싱싱한 고소함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동태와 함께 투척된 꽤 많은 양의 곤이, 명태알이 이 메뉴의 정체가 동태탕이 맞는 것인지 반문하게 만든다. 보통 음식이라 하면 엄마 손맛을 많이 따지게 되는데 사실은 세상 어떤 엄마도 이런 맛을 내긴 어렵다. 업무 때문에 경기도 지역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선배님의 뇌리를 스치는 오랜 기억 속 맛집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중국에서 십수 년, 제주에서의 십 년이라는 오랜 유랑생활로 인해 까마득한 추억이 되어버린 식당 하나가 오랜 유물이었던 것처럼 발굴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대로변 뒤 이면도로를 타고 골목길을 누비며 기억을 더듬더듬 찾아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던 그 식당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이십오 년 전 모습으로 선배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까마득히 잊었던 추억 속 보물을 찾은 듯한 표정에서 나는 인생 맛집 하나가 추가될 것이란 걸 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히는 것이 내가 최애 하는 짬뽕 맛집인 현경이 바로 옆집이란 걸 알고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다니던 곳은 본점이었지만 본점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간 후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몰랐던 것이다. 내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식당과 선배님이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식당이 서로 이웃하는 그 뒷골목의 풍경이란...



긴 세월을 가늠하게 만드는 허름한 인테리어는 예사 맛집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맛집이라고 소문난 그 흔한 맛집들의 벽을 장식하는 방송 출연 사진 같은 게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이 맞다면 아직까지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시크릿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분명할 것이다.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블로거란 개념이 생기기도 수년 전부터 파워블로거 급 맛집 리뷰어나 마찬가지였던 나조차 최애 맛집만큼은 꽁꽁 숨겨두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 식당 역시 로컬 맛집으로 지역에선 정평이 나 있을 곳이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며칠 전 정릉에서도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국숫집 하나를 우연히 발견한 것만 해도 같은 생리가 아닐까 싶다.



식당과 함께 나이가 들었을 듯한 할머니 한 분. 그분이 식당 주인이셨다. 선배님은 그분을 알아보았지만 몸매는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없던 주름도 생긴 선배님을 할머니는 알아보지 못하셨다. 물론 어떤 식당에 가면 알아보는 분들도 있곤 했다.

자리에 앉아 동태전골을 주문하니 얼마 안 되어 네 가지 찬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직접 담근 김치부터 그날그날 바뀔 것이란 게 분명해 보이는 계절 반찬들이 벌써부터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할머니 손맛이 담긴 반찬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집어 들고 반찬을 입에 넣었다. 역시 비주얼 못지않은 맛이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역시 손맛이다. 그것도 수십 년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만 파는 지존급 솜씨가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음에도 나는 공깃밥 반 그릇을 비워버리고 말았다. 물론 반찬은 벌써 추가 주문이 들어간 상태. 할머니는 그런 나의 모습이 당연한 것이란 표정이었고 잠시 후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동태탕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양은으로 된 코팅이 다 벗겨지고 찌그러진 냄비만 해도 벌써 기대심을 모락모락 피워냈다. 냄비에 담긴 동태탕은 둘이 먹기엔 다소 과하다 싶은 정도였고 맨 위에 올려진 싱싱한 생물 민물새우는 맛의 비밀 하나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미나리 아래 깔린 두부가 제일 먼저, 다음은 곤이, 그다음은 알, 마지막으로 동태다. 이 순서로 먹는 게 이 집의 정석 코스다.



놓치고 갈 뻔했다. 동태탕의 핵심은 국물인데 그 어떤 식당에 가도 이 식당의 국물 맛은 맛볼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보통 동태탕 맛집에 흔히 제공되는 냉이 고추간장 같은 건 이 집에선 제공되지 않는다. 아주 딱 적절한 맛의 국물은 소주를 부르게 되는데 도저히 참아내기 힘들게 한다. 그래서 난 드디어 얼마 전 미션을 수행하고 말았다. 소주를 곁들인 동태탕(혹은 동태탕에 곁들인 소주)은 인생 맛집 하나를 기억 속에 아주 강렬하게 박아 넣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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