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주 주문해다 먹는 족발집에서 배달받은 봉투 안에서 발견된 쪽지다. 수기로 작성된 쪽지는 작은 감동의 물결로 심장을 주물러 댔다. 기저엔 성업을 목적으로 했다 하더라도 코로나 위기에 감동 마케팅을 실현한 업주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영국의 부흥은 산업혁명에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수십 세기 동안 겪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의 속도를 감당해야만 했다. 농사가 주력이었던 인류는 삶을 책임질 새로운 일자리를 발굴해 냈고 예전엔 없던 적응하기 힘든 직업들이 생겨났다.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기계는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급기야 삶을 책임질 거라 생각했던 일자리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거라는 위협을 느끼던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직업을 찾아 나섰다. 요즘 매일처럼 터져 나오는 창업에 대한 고민은 이미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것이다.
슈퍼컴퓨터의 소형화, 딥러닝, 머신러닝,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새로 부각되기 시작한 5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AI가 가져올 혁신에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우려 속 방황이 시작됐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는 기계와 로봇이 공장 인력을 대체할 거라며 인류는 서비스업으로 옮겨갈 것이고 3차 산업의 부흥으로 좀 더 윤택한 삶을 살아갈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요즘 인류는 AI와 로봇에 의해 서비스업마저 위협받고 있다. 요즘 교과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발전 속도는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사고 역시 빠르고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 역시 빠르다. 팬데믹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단어가 일상이 되어버린 이 세상도 지옥의 아가리 속에 있는 듯하지만 역시 인류는 이 위기 또한 버티고, 이겨내고, 적응하는 중인 거다. 국민들은 이번 위기 속에서도 팬데믹에 적응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냈고 상상도 못 했던 돌파구를 창조해 냈다. IMF 위기, 리먼 금융 위기 그리고 이번 코로나 위기(예전 오일 위기, 달러 위기 등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창의적인 발상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는 거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게 마련이다. 이미 IMF 때 우린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국가 존립 자체를 뒤흔들었던 국가적 금융 위기를 리먼 사태를 통해 또 겪으며 대한민국 국민은 적응하며 버텨 내었다. 두 번 다 정부의 기능 덕분에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국민 개개인의 자구적 노력과 삶의 의지를 놓지 않으려는 의지의 끈이 서로 이어져 상상하지도 못했던 돌파구(예를 들면 금 모으기 같은, 외국에서 우리 사례를 흉내 냈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다)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COVID-19라는 코드명 코로나 19 팬데믹의 종점을 향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그 어떤 국가의 국민보다 스스로 노력하고 판단하여 이 자리에 이르렀다. 웃기지만 이런 상황에 오기까지 정부가 한 일은 없다. 요즘 흔히 말하는 것처럼 코로나를 권력을 도모하는 등 정치에 이용할 생각만 있을 뿐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은 없었던 것 같다. 국수적 판단이 아니다. 이번 위기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 가진 특수한 국민성이 만들어낸 성과인 거다. 코로나 위기 초반의 국가적 대처는 우리보다 빡빡한 삶을 사는 태국보다 나은 것이 하나 없었던 것만 비교해 봐도 그렇다.
잘하지 못하면 막지나 말지, 온갖 규제로 빨리 가도 모자랄 길을 막아서는 정부라면 없느니만 못 하지 않나 싶다.